美 "화웨이 전쟁에 동참하라"…'사드 악몽' 난감한 정부(상보)

[the300] 美. '화웨이 거래제한' 동참 요구…외교부 "지속 협의 중, 내용은 밝힐 수 없어"

오상헌 기자, 최태범 기자 l 2019.05.23 16:22
【베이징=AP/뉴시스】16일 중국 베이징의 화웨이 매장 앞을 한 남성이 지나고 있다. 2019.05.20.

미국이 중국 최대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화웨이에 대한 '거래제한' 조치에 한국 정부와 기업의 동참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난감해 처지에 몰렸다. 

미중 무역전쟁의 일환으로 화웨이와 전쟁에 나선 미국과 같은 편에 서 달라는 요청이지만 중국의 경제보복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부는 화웨이와 관련한 한미간 협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당시 중국의 전방위적 경제보복 재연 가능성을 가장 크게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3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부 등 여러 경로와 채널을 통해 화웨이 거래 제한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미국이 그런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도 미국이 문제삼고 있는 중국 화웨이 5G 장비의 보안 문제와 관련해 "미측은 5G 장비 보안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으며 우리도 이러한 입장을 알고 있다"며 "한미 양국이 이 이슈에 관해 지속적으로 협의해 오고 있다"고 확인했다. 외교부는 다만 "구체적인 협의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미 국무부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국내 통신회사인 LG유플러스를 지목해 "한국 내 민감한 지역에서 서비스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최종적으로 한국에서 화웨이를 완전히 아웃시켜야 한다"고 외교부에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상무부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기업의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후 지난 16일(현지시간)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렸다. 이들 기업이 미국 기업과 거래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국이 겉으로는 안보위협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5G 기술을 선도하는 화웨이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게 통신업계의 분석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협력하는 일본과 호주 등도 반(反) 화웨이 전선에 동참했다. 일본 이동통신사들이 화웨이 스마트폰 발매를 무기한 연기한 데 이어 전자제품 제조회사인 파나소닉도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우리 정부에 대한 동참 요청도 '반중 전선' 확대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한국 이통사인 KT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화웨이 스마트폰 재고 소진시 판매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KT는 이를 부인했다.

정부는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미국의 요구에 응할 경우 중국 정부의 경제보복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드 사태처럼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간기업의 거래에 정부가 개입하는 데 대해서도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달 말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동참을 요청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굳건한 한미동맹과 공조로 북미 협상을 추동해 비핵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정부로선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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