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참사' 두 갈래 시각...인사청문회 변화 난항 예고
[the300 런치리포트-인사청문회 논란(종합)
청와대가 국무총리로 안대희·문창극 두 후보자를 지명했지만 두 사람 모두 인사청문회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낙마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인사 참사가 발생했다. 그리고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의 재가까지 받았던 정홍원 현 국무총리가 우여곡절 끝에 유임됐다.
이 같은 대형인사 참사를 놓고 두 갈래의 시각이 나온다. 청와대의 부실한 사전 검증시스템이 원인이라는 시각과 그 누구도 통과하기 어려운 '인사청문회 검증시스템'이 결과적으로 연이은 인사참사를 불렀다는 시각이다. 이는 여야 정치권의 엇갈린 시각으로도 곧바로 투영된다.
문창극 전 후보자가 바통을 이었지만 역사인식 논란이 불거지며 역시 인사청문회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탈락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임명된 김용준 전 후보자도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못하고 중도탈락했다.
대통령이 지명한 고위공직자의 업무능력과 자질을 검증하기 위해 2000년 2월 도입된 국회 인사청문회는 지금까지 6차례 법 개정을 통해 청문 대상을 확대해왔다. 제도개선 논의는 이제야 걸음마를 떼는 단계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박근혜정부 들어 인사참사가 계속되자 그 원인으로 인사청문회를 지목하고 있다. 야당의 자극적인 신상털기로 공직후보자의 업무능력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청와대의 부실 인사검증시스템이 인사참사의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부적절 인사 논란으로 청와대조차 인사청문요청안을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사청문회를 문제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지적이다.
하지만 여야 모두 인사청문제도 개선에 대해선 공감하는 눈치다. 여야는 19대 국회 들어서만 31건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인사청문제도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법안들은 현재 국회운영제도개선소위에서 '패키지'로 논의되고 있는 상태다.
여야는 우선 후보자의 정책적 견해나 업무 적격성보다는 도덕성 검증 위주로 흐르는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낸다. 정권이 바뀌면 여야가 공수만 바꿔가며 인사청문회를 '신상털기식'으로 진행해온 데 대한 반성이다.
2006년 참여정부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 새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응할 수 없다며 한 달 가까이 국회 출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인사청문회를 △1차 도덕성 및 윤리성 검증 △2차 업무능력 검증으로 분리해 실시하자는 내용이다. 새누리당 권성동·강은희 의원이 각각 발의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같은 당 윤명희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개정안은 도덕성 검증을 위한 '인사청문소위원회'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앞서 발의된 두 개정안과 취지가 같다.
문제는 도덕성 검증을 하는 1차단계의 공개 여부다. 새누리당은 이를 비공개로 진행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당연히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선 국회 관계자도 "윤리성 검증을 위한 인사청문회의 비공개 실시 여부는 공직자의 윤리성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와 공직후보자의 사생활 보호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사청문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법에 규정된 총 20일간의 인사청문기간으로는 충분한 인사검증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사청문기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여야 모두 동의한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과 새정치연합 심재권·강동원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개정안은 인사청문기간을 현행 20일에서 30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공직후보자의 자료제출 및 허위진술 등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현행 제도에선 후보자의 부실한 자료제출과 허위진술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수단이 없어 매번 자료제출 및 허위진술 논란으로 인사청문회가 파행을 겪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강동원 의원은 후보자의 선서문에 진술이나 서면답변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허위진술을 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았다. 같은 당 배기운 의원은 개정안에서 허위진술을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자료제출과 관련해선,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은 임명동의안 제출 시 공직후보자의 최근 10년간의 소득세·재산세·종합토지세의 납부 및 체납 실적에 관한 증빙서류, 출입국 신고 및 관세 신고 내역과 공직후보자 본인과 배우자 및 본인의 직계존비속의 최근 10년간의 재산변동사항 및 부동산 거래사항에 관한 증빙서류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편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과 별개로 청와대의 철저한 사전 인사검증 및 야당 등 외부와의 소통을 통한 인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과 같은 '깜깜이' 인사가 계속되는 한 인사청문회가 도덕성 검증으로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의견이다.
이와 관련,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한 라디오방송에서 "(인사청문회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꾸든 뭘 하든지 간에 '깜짝인사'에서는 항상 이런(도덕성) 부분이 언론의 검증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인사청문회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16대 국회 때인 지난 2000년 6월 국회가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하면서 처음 도입됐다. 그리고 지난 2005년 7월 모든 국무위원을 대상으로 인사청문회가 확대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인사청문회 대상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국무위원(장관), 방송통신위원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이다. 4대 권력기관 수장인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후보자도 2003년부터 인사청문회 대상이 됐고, 현역 군인 중 최고위직인 합동참모의장도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다.
KBS 사장도 지난달 2일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인사청문회 대상이 됐지만 오늘 8월 5일부터 법안이 발효될 예정이다.
인사청문회 대상자로 결정되면 후보자는 국회에 △직업·학력·경력사항 △본인과 본인의 18세 이상인 직계비속의 병역사항 △본인과 배우자·자녀 등의 재산사항 △최근 5년간 소득세·재산세·종합토지세의 납부 및 체납 실적 사항 △범죄경력사항과 관련된 증빙서류 등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인사청문요청서에 첨부된 자료를 바탕으로 국회와 언론 등이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 국민들과 정부를 공유하고 있어 국민의 눈 높이에 맞지 않는 후보자들이 청문회 검증의 벽을 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권이 안대희·문창극 전 총리후보자의 잇단 낙마 이후 공직자 인사청문제도 개선을 공론화하면서 미국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26일 국회와 새누리당에 따르면 미국은 연방대법원 대법관, 행정부 장차관과 차관보 이상, 정보기관장, 각국 대사와 연방선거위원 등은 대통령이 상원 인준을 얻어 임명토록 한다. 해당 직위 1217개 가운데 실제로 인준청문회를 실시하는 대상은 절반인 600여개다. 이 같은 인준필수직은 상원 인준동의(임명동의)가 없으면 임명할 수 없다.
장관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되, 여야가 청문보고서에 합의하지 못해도 임명을 강행할 수 있는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식 인사검증의 핵심은 청문회 이전 단계, 현미경 들이대듯 꼼꼼히 따지는 사전검증이다.
후임자를 찾아야 하는 경우 백악관 인사실이 가장 먼저 움직인다. 이력서, 추천서는 물론 해당자의 주변을 통한 평판도 입수한다. 이후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후보군을 압축, 단 1명의 후보를 신중히 골라낸다. 이 예비검증이 한달은 걸린다.
백악관 법률고문실이 본격적인 사전검증에 나선다. 후보자는 우리나라의 인사검증동의서와 같은 개인자료진술서를 내야 한다. 백악관은 재산, 납세, 전과내역 등을 샅샅이 뒤진다.
이 단계를 통과하면 개인진술서보다 더 상세한 '국가안보직위진술서'를 연방수사국(FBI)에 보내야 한다. 재산상황진술서도 제출한다. 행정부의 윤리처, 임용 예정부처의 윤리담당부서, 의회에선 상원의 소관 상임위가 달라붙어 재산 등을 다시 점검한다.
후보자가 허위사실을 알린 것으로 밝혀지면 징역 등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이중삼중의 검증 테스트를 통과한 다음에야 합격자 파일은 법률고문실, 인사실을 거쳐 대통령에게 전달된다. 대통령은 의회와 협의를 거쳐 지명자를 최종 발표한다.
미국 장차관이 청문회에서 인준을 거부당한 일은 극히 드물다. 이는 대통령 인사권을 존중했기 때문이지만, 그 배경엔 이처럼 엄격한 사전검증이 있다.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국무장관에 각각 거론됐으나 사전검증 문턱을 넘지 못했다.
남미 대통령제 국가들도 인사청문회 제도가 있지만 주로 외교관이나 대법관 등에 한정되고 장관은 해당하지 않는다. 필리핀도 미국식 대통령제를 도입했단 점에서 인사청문회 역시 미국 모델로 간주된다.
단 내각제 대표국가인 영국은 일부 공직자에 대해 사전 청문회를 실시, 눈길을 끈다. 장관이 임명하는 공직자에 한해 16개 부처 60개 직위가 청문회 대상이다. 국민생활에 영향이 큰 순으로 선정된 대상이다. 2007년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가 내각개혁의 하나로 제안하고 그 이듬해 시행됐다. 단 영국의 인사청문회는 임명에 구속력은 없다.
국회입법조사처 전진영 박사(정치학)는 보고서에서 "영국의 경우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을 기준으로 의회과 내각이 협의해 청문대상 공직을 정하며, 청문회도 후보자의 업무 적격성과 정책관심 검증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와 같은 인사청문 시스템을 가진 나라는 미국 정도이고 영국이 제한적으로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우리는 더 좀 발전적으로, 정교하고, 생산적으로 하는 제도는 없을까 (야당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비서실장 외 민정·정무·국정기획·홍보수석 등이 당연직으로 차여하는 인사위는 공공기관장 인사를 위한 기구에 가깝다는 게 청와대 내 분위기다. 총리와 부총리, 국가정보원장, 중요 장관들의 경우 인사위에서 추천은 물론 제대로 사전검토를 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지나친 보안유지를 위해 '윗선'에서 바로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에 '누구를 검증하라'고 내려 보낸 뒤 그 결과를 토대로 기용 여부를 결정해왔다. 10명 이내의 소규모 인력에다 촉박한 시간, 어느 자리 후보라는 점도 알지 못한 채 검증을 하곤 했다는 거다. 애초부터 폭넓고 심도 있는 검증이 이뤄질 수 없는 구조였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선 '깜깜이 인사' '수첩 인사' '비선(秘線) 인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인사수석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만들어졌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며 폐지됐다 6년여 만에 부활하게 됐다. 이명박 정부도 초기에는 인사비서관(비서관급)으로 축소했다 낙마 사태가 잇따르자 임기 후반에 가서는 인사기획관(수석급) 격상한 바 있다.
인사위원회의 실무 간사를 맡을 인사수석은 그 아래 인사비서관과 인사혁신비서관 2명을 두게 된다. 각계각층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예비 공직후보자 발굴, 관리하고 추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인사혁신비서관은 공직 임용과 승진·보상 등 인사체계 전반에 관한 혁신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견제와 균형을 갖추기 위해 인사수석실은 공직 후보자에 대한 추천에 업무의 무게를 두게 된다. 추천자와 검증자가 같을 경우 엄정한 잣대를 들이밀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전 검증은 현재대로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계속 수행하게 된다.
인사수석실 설치로 청와대의 차관급 인사는 각 수석과 국가안보실 제1차장, 대통령 경호실 차장을 포함해 기존 11명에서 12명으로, 1급 비서관은 41명에서 43명으로 각각 늘게 된다. 청와대는 조만간 '대통령 비서실 직제'를 개정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