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초선' 정용기의 반란…경찰대 퇴학생의 '초심'은?

[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정용기 새누리당 의원

박경담 기자 l 2015.05.13 05:59

편집자주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지난해 12월 초 국회 본회의장. 여의도에 입성한 지 4개월밖에 안 되는 정용기 새누리당 의원이 '반란표'를 던졌다. 정부·여당이 추진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표결에서 당 소속 의원들과 뜻을 달리한 것. 가업 승계에 따른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의 이 법안은 결국 부결됐다. 부결 직후 여당 지도부가 긴급히 정회를 제안한 뒤 이후 상정될 법안 표 단속에 들어갈만큼 당시 부결은 뜻밖이었다. 

19대 국회 '이변'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이날 본회의의 '스타'는 반대 토론자였던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지만, 당을 떠나 '소신'대로 투표한 여당 의원들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의원은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에서 임기 1년 9개월짜리 국회의원에 당선된 '반초선' 의원인데다, 당 개혁 모임 같은 곳에서 활동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의 '반란표'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정 의원은 당시 결정에 대해 "상속받는 기업의 범위를 기존 연매출 3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늘리는 것과 1년 만에 법을 재개정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며 "당론보다는 국민을 중심에 두고, 소신이나 지역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표를 던졌다"고 했다.     

계파색이 옅은 그는 새누리당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표결 성향을 보이는 의원이다. 당 또는 특정 계파의 입장을 최우선 고려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친박이냐 친이냐'를 묻는 질문에 '국민계'라는 그의 답변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키워드①→당직자 출신]
19대 국회에 늦깎이로 합류한 정 의원의 '결기'는 오랜 당직자 생활을 거치며 쌓은 현실정치 경험의 산물이다. 그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1992년 민주자유당 공채 1기에 합격하며 정치에 발을 담갔다. 군사정권 잔재가 남아있던 사회 분위기상 대학 졸업 뒤 바로 민자당으로 달려간 것은 의외였다.

그는 민자당을 왜 택했냐는 질문에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정치에 입문하는 통로가 사회 운동, 언론인, 고시 등이 있었는데 정당 당료도 한 채널이라고 생각했다"며 "투명하게 당직자를 선출하는 곳이 민자당이 유일했다. 이상을 꿈꾸기보다 현실 속에서 차근차근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정 의원은 당직자 생활 도중 겪은 97년 대통령 선거 패배를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꼽았다. 야당이 돼 거리에 나간 그는 '외환위기로 나라 망친 놈'이라는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꾸준히 유권자를 만났던 경험이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고 정치 체력을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정 의원은 설명했다. 

사진제공=정용기 의원실

[키워드②→경찰대 퇴학생]
정 의원은 1981년 신설된 경찰대학교 1기로 입학해 초대 학생회장에 당선되는 등 전도가 유망한 예비 경찰이었지만 4학년에 올라가기 전 퇴학당했다. '학교 명예 실추'가 사유였다.

재학 당시 그는 '아프락사스'라는 독서 모임을 결성했다. 겨울MT에서 동기·후배들과 불온서적으로 여겨진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을 읽었던 게 탈이었다. 모임은 기존 운동권 서클과 달리 좌우파 지식인의 책을 모두 읽었다. 하지만 역대 처음으로 설립된 경찰인재양성기관에서 불온서적을 접한 사실 자체가 군사정권 시절에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정 의원이 퇴학당한 뒤 경찰대를 찾아갔을 때 그를 가르쳤던 한 경찰 간부는 '당신을 퇴학시킨 게 교육자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지난 2008년 경찰대 명예졸업장을 받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로도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정 의원은 "전두환 정권 아래 경찰은 권력을 위해 일했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경찰이 되기 위해 여러 서적을 읽고 토론했다"고 말했다.

[키워드③→구청장]
정 의원은 대전 대덕구청장을 2차례(2006년·2010년 당선) 역임했다. 구청장 재직 시절 투명 경영을 제1원칙으로 내세웠다. 2006년 첫 취임부터 '청어포증 백어맹황((淸於包拯 白於孟黃:포청천 보다 더 맑고, 맹사성과 황희보다 더 깨끗하게)'라는 글귀를 직원 책상에 붙여놓게 했다.

그는 주민참여 예산제 뿐 아니라 주민참여 감사제, 주민참여 민원품질평가제, 주민참여 포인트제 등을 운영하며 주민이 직접 구 예산과 공약 이행 사항을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대덕구는 '2013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전국 244개 지방자치단체 중 내부청렴도 1위를 차지했다.

[이 한 장의 사진]
사진 제공=정용기 의원실

정 의원은 구청장 시절, 한 해를 시작하는 시무식을 주민들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으로 대신했다. 정 의원은 "우리 시대 리더십은 '섬김'이라고 생각한다. 주민을 섬기며 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연관검색어→해물 샤브샤브집]
정 의원은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탄핵 역풍을 맞아 낙선했다. 생계를 위해 안양에서 해물 샤브샤브 가게를 열었다. 처음 시작한 장사에 경찰대 재학 중에도 잡힌 적 없던 물집이 나기도 했다. 당시 정치인으로서 별 볼 없는 그를 찾아 말동무가 돼 준 정두언, 김태흠 의원은 정 의원에게 여전히 고마운 존재다.

[그의 한 마디→충청정신]
그는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 출마를 앞두고 새 시장의 자질 중 하나로 '충청정신'을 들었다. 정 의원은 당시 충청정신을 계승해 '의(義)'와 '예(禮)'의 전통을 되살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충청을 기반으로 둔 유학 정신 중 정치와 관련해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의'다. 옳은 행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의'가 쌓이는데 말을 바꾸고 당을 바꾸는 일부 충청 정치인들의 행태는 지지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1992년 민자당 입당 후 줄곧 보수정당에 몸 담은 자신의 정치 여정을 강조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서울=뉴스1)박철중 기자 = 7.30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정용기 새누리당 의원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4.7.31/뉴스1

[그의 사람들→이회창, 윤재옥]
정 의원은 이회창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총재와 함께 두 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15대 대선에서 그는 이 총재 신임을 얻어 대선 캠프의 조직과 자금을 총괄하는 최측근으로 활약했다. 대선 패배 후 그는 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 총재의 비서관으로 일했다. 16대 대선에선 다시 대선 후보로 나선 이 총재의 상근보좌역을 맡기도 했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 총재는 3번째 대선에 출마해 첫 방문지로 대전을 찾았다. 당시 대덕구청장이었던 정 의원은 새벽에 잠시 이 총재가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 '총재님, 건강 잘 챙기세요'라고 말한 뒤 바로 나왔다. 노선을 달리 하는 이 총재였지만 '정치 후배'로서 인간적인 예를 표한 것이다.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은 경찰대 동기다. 경찰대를 수석입학 및 수석졸업에 경기지방경찰청장까지 지낸 '엘리트형' 윤 의원과 경찰대 퇴학 뒤 밑바닥부터 정치를 시작한 '자수성가형' 정 의원은 대비되는 면이 많다. 

[대표법안→소하천정비법]
의정활동 기간이 짧은 정 의원은 주로 담당 상임위인 안전행정위원회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소하천 정비법 개정안'이 대표 법안이다. 소규모 하천을 관리해 무분별한 오물 투기로 인한 환경 훼손을 방지하자는 내용이다. 급경사지 붕괴 위험을 예방하는 내용의 '급경사지 재해예방에 관한 법 개정안' 역시 중점 추진 법안이다. 

정 의원은 국회에서도 투명성 확보에 초점을 맞춘 의정활동을 펼쳤다. 그는 지난해 국회 등원 후 첫 국정감사에서 최근 4년 간 교육부 공무원과 사정기관 공직자들의 금품관련 비위 활동이 가장 많았다고 고발했다. 또 공무원의 개인정보 오남용 문제를 지적해 공공기관의 청렴성 제고를 촉구했다.

[요 주의!→캐스팅보트 대전]
선거 때마다 표심을 달리 하는 캐스팅보트 대전에서 승리하는 게 최대 과제다. 최근 3번의 총선을 보면 대전은 어느 곳보다 민심이 복잡했다. 지난 19대 총선에선 새누리당 3곳, 민주통합당(현 새정치연합) 3곳으로 균형을 맞췄고 18대 총선에선 자유선진당 5곳, 통합민주당(현 새정치연합) 1곳, 17대 총선에선 열린우리당(현 새정치연합)이 6곳을 싹쓸이했다.

그는 구청장 재선과 재보선 승리까지 대전 대덕구에서만 3연승했다. 특히 지난해 재보선에서는 57.4%의 득표율을 올려 42.58%를 기록한 박영순 새정치연합 후보를 손쉽게 따돌렸다. 대덕구는 19대 총선에서도 여당 의원이 50.19%의 득표율로 당선된 곳이다.

[인간 정용기]
*좌우명: '용기', '의로운 일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내고, 불의한 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는 것'
*종교: 기독교
*주량: 소주 1병
*취미: 나무 키우기
*좋아하는 노래: 심수봉의 '무궁화'
*좋아하는 음식: 청국장
*좋아하는 운동: 마라톤

[프로필]
△1962년 충북 옥천 △연세대 정외과 △민주자유당 당직자 공채1기 △한나라당 서울시지부 조직부장 △16대 대선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상근보좌역 △한나라당 대전 대덕지구당 위원장 △대전 대덕구청장(재선) △19대 국회의원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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