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미션임파서블:로그네이션'과 국정원 '비밀주의'

[the300] 과거 '사찰·고문' 원죄 털고 '문민통제'와 '비밀주의' 조화 필요

유동주 기자 l 2015.08.04 07:22

배우 톰 크루즈,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영화 '미션임파서블 : 로그네이션' GV에서 관객들에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지난 주말 개봉한 ‘미션임파서블:로그네이션’은 가상의 미국 첩보기관인 ‘IMF’(The Impossible Mission Force)가 등장한다. 주인공 에단 헌트(톰 크루즈 분)를 비롯한 팀원들이 기관 해체통보를 받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해체 사유는 활동 중 위법행위와 타국 시설을 폭파하는 등 대형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팀원 중 선임격인 브랜트(제레미 레너)가 기관대표로 의회 비공개 조사를 받는다.


브랜트는 작전내용에 대해 묻는 정보위원회 위원장에게 “국장(기관장) 승인없이 작전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란 기계적 진술거부만 계속한다. 위원장이 다그쳐도 마찬가지. 진술거부는 톰 크루즈의 활약으로 IMF가 다시 부활하면서 열린 청문회에서도 계속된다. 그랜트는 반복한다. “국장 승인없이는…“. 브랜트의 진술거부가 힘을 받는 것은 결국 에단 헌트와 팀원들이 '외부 위협'인 테러집단을 소탕했기 때문이다.

 

장소를 우리 국정원과 국회로 옮겨보자. 최근 해킹프로그램으로 민간인에 대한 사찰의혹을 두고 여야가 맞서고 있다. 여당은 정보기관 특수성을 감안해, '국가 안보' 등의 이유로 자료제출 거부권이 있다고 옹호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민간인 사찰여부를 자료검증으로 확인해야 한단 주장이다.

 

국정원이 야당 등으로부터 의심받는 부분은 '국내 사찰'여부다. 극중 에단 헌트는 '신디케이트'라는 유령 국제테러집단 응징에 나설 뿐, 국내 이슈와는 무관하다. 가끔 불법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용인되는 이유다. 영화 속 뿐 아니라 냉전시기 첩보전현실에서도 그랬다.  CIA·KGB·MI6 등은 최전성기 시절 막강한 권한을 누렸고 불법요소도 많았지만 이념전쟁에서의 '필요악'정도로 여겨졌다.


국정원은 기본적으로 ‘비밀주의’를 지키는 게 맞다. 세계 유수의 정보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왜 우리 국민들과 야당은 그렇게 국정원 활동을 못 미더워 하고, 구체적 자료를 더 내놓으란 걸까.

 

과거의 ‘원죄’ 때문이다. 중앙정보국 시절부터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현 국가정보원까지, 북한과 외부 위협에 대한 공작만 그들의 임무가 아니었다. 정권 의중에 따라 국내 인사들에 대한 사찰과 고문의 어두운 역사가 불과 20~30년전까지 계속됐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김근태 의원을 비롯한 많은 여야 인사들이 고문을 겪었고 그들의 기억이 살아 있는 한 국정원의 '원죄'는 쉬이 용서받지 못한다.

  

국정원이 외국 정보기관을 들먹이며 ‘비밀주의’를 지켜내고 싶다면, 지난 과오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물론 '국정원 개혁'도 선진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의례다. 


문제는 ‘과오'로부터 현재는 진정 자유롭냐는 의문이 든단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국정원은 '대북 심리전'이라는 댓글작전을 폈다. '댓글작전'의 '실행'은 법원에서도 인정됐다. 다만 그 성격이 국내 정치개입이냐 대북 심리전이냐라는 '가치 판단'의 문제였다.


국정원은 배나무(대선) 아래서 갓끈(대북심리전) 고쳐 맨 셈이다. 그것도 아주 큰 '대권(大選)'이라는 배나무 아래였다.


미국·영국 등도 국가조직의 문민통제(Civilian Control) 원칙에 따라, 정보기관이 의회 통제를 받게 하고 있다. 우리도 YS정부시절 당시 안기부법 개정으로 국회 정보위원회가 만들어졌고, 1994년부터 여기서 예산을 심의하기 시작했다. '문민통제'의 걸음마였다. 그런데 걸음마에서 그쳤고 거기에 만족해야 했다. '기밀보호'라는 거대한 장막때문이다.

  

국회에서 자료요구를 하면 대부분 기관들이 '파일'형태로 보내는 것과 달리 국정원은 '종이문서'로 들고 온다. 그것도 직원이 직접 들고 와 일일이 수령확인을 받을 뿐 아니라 나중에 회수해 간다. 그점에선 국정원의 '기밀보호'시스템은 잘 돼 있다.


그런데 막상 자료내용은 너무 간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 기밀에 해당돼 자세한 사항을 알릴 수 없다"는 취지로 한두줄 적혀 있다. 국회에선 기밀이 아니라 판단해도 국정원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비밀주의'원칙은 큰 방패다. 간단한 자료조차 내지 않을 권리를 국정원은 '국가기밀'이라는 단어에서 쉽게 뽑아 쓴다. 통제 받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그래서 '문민통제'원칙이 세워졌다. 국정원의 '비밀주의'원칙만큼이나 국가기관에 대한 '문민통제'원칙도 중요하다.


국회 정보위원회가 만들어진지도 20여년이 흘렀다. 우리 국정원은 이제  국회의 '문민통제'에 잘 따라주면서도 '비밀주의'원칙을 지킬 수 있는 노하우를 갖췄다고 믿는다. 보여 줄 수 있는 건 보여주고, 감춰야 할 건 감추게 하는 상호 신뢰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회는 국정원을 못 믿고, 국정원은 국회를 못 믿는 현재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이다.

'로그네이션'은 불량국가란 뜻이다. 영화 속 불량국가가 되지 않기 위해 국정원과 국회 관계의 재설정이 요구된다.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면 국정원에도 에단 헌트팀 같은 유능한 요원들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 된다. 지금처럼 '비밀주의'만 앞세우기 위해선 영화 속 IMF처럼 뛰어난 '실적'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못한 채 '비밀유지'만 고집한다면 국정원은 '문민통제'를 거부하는 냉전시대 정보기관에 머물렀단 비판을 받을 것이다.


몇년 사이 국정원 직원이 호텔방에서 외국 특사단 노트북을 뒤지다 걸렸다거나, 유엔(UN) 특별 보고관을 미행하다 역촬영 당했다거나, 김정일 사망소식을 조선중앙TV 시청으로 알아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음지에서 열심히 임무에 충실한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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