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에 호통친 재향군인회장···하나회 "살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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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욱 기자 l 2015.09.05 06:06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장성현 노조위원장이 지난달 4일 오전 선거법위반, 배임 등의 혐의로 조남풍 회장을 고발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이날 고발당한 조남풍 재향군인회 회장은 선거 당시 돈봉투 살포, 산하업체장 임명 과정에서 금품수수, '묻지마 식' 인사전횡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2015.8.4/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가보훈처가 '재향군인회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인 지난 7월 말. 조남풍 재향군인회장(77·예비역 대장)은 보훈처에 전화를 한통 건다. 담당 직원에게 감사내용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보훈처가 7월 28일 발표한 '재향군인회 특별감사'는 조 회장이 취임 이후 인사규정을 위반해 직원을 임용한 사실이 담겼다. 사무실 이전을 추진하면서는 이사회와 총회의결 등 관련 절차를 지키지 않은 내용도 포함됐다.    

 

보훈처 관계자에 따르면 조 회장은 이런 감사 결과에 대해 "육사 후배, 럭비부 후배가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 한쪽 이야기만 들어서야 되겠느냐"고 따졌다. 그의 육사후배, 럭비부 후배는 박승춘(68·예비역 중장) 보훈처장을 말한다.

 

보훈처는 이후 조 회장에 대해 규정에 어긋난 인사채용을 취소하라고 명령했지만 조 회장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보훈처는 최근 법제처에 조 회장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해당 법 규정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피감기관인 재향군인회가 감독기관인 보훈처 감사결과를 대놓고 비판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배경은 뭘까.  

 

재향군인회는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만 130만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모의 안보단체다. 선거 때는 여당의 지원군이 되기도 하는데 상조회, 전세버스, 휴게소 등의 사업을 한다. 지난해 42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 4월 재향군인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조 회장은 육군사관학교 18기다. 국군보안사령관, 육군교육사령관, 1군사령관 등을 지내고 1993년 7월 예편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캠프 안보전략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조 회장은 '하나회'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회는 전두환·노태우 등 자신들을 '정규육사 1기'라고 불렀던 육사 11기생들이 결성한 군내 사조직으로 12·12 사태를 통해 '서울의 봄'을 강탈한 정치군인들의 모임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취임 보름도 안 돼 가장 먼저 숙청한 세력이 하나회였다. 현대사의 유물쯤으로 취급되어져야 할 하나회 출신 인사가 꿋꿋하게 살아남아 군의 후배와, 정부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조 회장은 당선 과정부터 잡음이 많았다. 선거법 위반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있는데 지난달 31일에는 미국과 멕시코로 출장을 떠났다. 이를 두고 국정감사를 회피하기 위해 출국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조 회장의 행보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도 싸늘하다. 육군 중장 출신으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육사 31기)은 "(나는) 하나회가 아니어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선배임을 내세워 군 후배들에게 그처럼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재향군인회장 선임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 일부개정안'을 지난해 2월 발의한 바 있다. 개정안은 재향군인회장 선거가 총회 구성원인 380여명으로 구성돼 있어 금전·조직선거 등이 자행될 여지가 많은 만큼 선거인단 규모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법안소위에 계류돼 있다.   

 

우리 사회에선 몇 안 되는 집행부의 허물이 대다수 조직원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잘못된 엘리트 의식으로 뭉쳐진 장교 몇몇의 모임이 역사에 남을 죄인들로 기록되는 과정도 지켜봐야 했다.

 

육사 후배, 럭비부 후배에게 하는 부적절한 전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 하나회의 유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정감사에서 단단히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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