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법, 법안소위 '1순위'…여야 '의견일치' 까닭은

[the300]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정부 반대 불구 통과 의지

이현수 기자 l 2015.11.11 13:48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사진=뉴스1


지난 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여야가 국회 의지를 보여주자는 차원에서 통과시키려 한 법이 있다. 가정에서 직접 생산한 전기를 한전을 통하지 않고 서로 사고팔 수 있게 한 '지능형전력망 구축 및 이용촉진에 관한법' 개정안이다.

산업위 법안소위는 이날 6시간 동안 70여건의 법안을 심사하면서 이 1건의 개정안에 1시간을 쏟아 부었다. 통과를 보류한 대신 내주 열리는 법안소위에서 1순위로 이 법안을 다시 다룬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은 "산업부에서 별로 할 마음이 없지만 국회가 강력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통과를 주장했다.

◇스마트그리드 '테스트베드'
지능형전력망은 스마트그리드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기존 전력망에 IT기술을 접목해, 전력 공급자와 소비자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에너지효율을 높이도록 한 시스템이다. 전 의원의 개정안은 지능형전력망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이전에 '거점지구'를 우선 만들어 '테스트'해볼 수 있는 법적근거를 담았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능형전력망 사업자는 이 거점지구 안에서 발전과 전기판매를 겸할 수 있다. 거점지구 내 △전력저장장치 △디지털 전력량계 △전기자동차 충전설비 △분산형 전원장치 등 설비보급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규정도 신설했다. 정부가 반대한 것은 바로 이 '분산형 전원장치'의 포함이다. 분산형 전원은 전력을 소비하는 장소와 인접한 곳에 분산돼 설치되는 소용량 다수 전원공급 설비다.

전 의원은 이날 소위에서 법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전기를 만들었어요. 내가 만든 전기를 지금은 꼭 한전에 팔아야하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서도 서로 사고팔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겁니다. 그게 스마트그리드인데, 지금 법체계에선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실험을 해보자는 겁니다. 거점지구를 만들어서."

◇산업부, 분산형 전원장치 'NO'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구역전기사업자'를 내세워 분산형 전원장치 포함을 반대했다. 구역전기사업자는 삼천리 등 소규모 발전사업자를 말한다. 현재 13개 사업자가 10개 사업장을 운영중이다.

이미 구역전기사업자가 한전과 별도로 분산형 전원장치로 발전·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는 게 산업부의 주장이다. 전 의원은 이에 "제가 말씀드리는 발전사업과 판매사업의 겸업 주체는 가정"이라고 답했다. 

산업부의 속내는 한전의 독과점 체제와 닿아 있다. 구역전기사업자보다 규모가 작은 개인사업자가 발전하고 판매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현재는 개인이 에너지를 생산하면, 바로 옆 건물에서 수요가 있어도 직접 팔지 못하고 한전에 팔아야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스마트그리드 거점지역에선 건물과 건물이 한전을 끼지 않고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국장은 소위에서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한전이 아닌 '개인사업자'가 전력소비자들을 바인딩(binding)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어려운 설명을 부좌현 새정치민주연합 위원은 한줄로 쉽게 요약했다. "그러니까 함부로 전기 장사하지 말라는 거예요."

◇통신사업자 들어올라


채 국장이 지목한 개인사업자는 엄밀히 말해 가정보다는 '통신사업자'다. 그는 "그런데 지금 이 지능형전력망과 관련된 시범지구 사업자들은, 사실은 통신사업자들이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채 국장의 부연 설명을 들으면 산업부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더 명확해진다. "전력소비자는 한전이 아닌 사업자에게 전기를 사는 것입니다. 통신사업자는 시범지구라는 이름으로 들어와서 거기다가 스마트계량기(AMI)라든지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이라든지 붙여서 판매사업을 하게됩니다."

◇산업위 여야 "한 발짝을 떼기 위해"


산업위 법안소위 여야 의원들은 모두 개정안을 통과시키자는 쪽이다. 거점지구 안에서의 테스트인만큼 '일단 해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여당간사인 이진복 의원은 "미래지향적인 법이고, 한 발짝을 떼기 위한 것"이라며 "한 발짝 더 나가 보자는 데 대해 정부가 너무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은 산업부를 향해 "전부 머리에 기존의 관념으로 딱 고정이 돼서 그것을 방어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며 "창조경제는 새로운 산업을 자꾸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언제까지 전력(발전·판매 권한)을 안 주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새로운 시장을 하나 열어서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공급할 수 있으면 그 길을 터 주자는 그런 취지"라고 덧붙였다.

야당도 다르지 않았다. 법안소위원장인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우리가 기존의 틀 속에서만 고민해서는 진흥이고 뭐고 잘 안된다"며 "융통성있게 다양하게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뭔가 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은 오히려 산업부에서 해야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백재현 의원도 "지능형으로 한번 해 보자는 것"이라며 "이것 때문에 전력산업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실험을 한다는데 (산업부가)자꾸 못 하게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독일 등 유럽국가는 소비자에게 전원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전력을 스마트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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