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개혁의 상징' 거산(巨山), 향년 88세로 잠들다

[the300]

이하늘 이원광 진상현 기자 l 2015.11.23 05:51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 영정이 놓여져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개혁의 화신'으로 불린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0시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서거했다. 향년 88세.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은 이날 새벽 2시 병원 내 시계탑건물 1층 회의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통해 "지난 19일 낮 12시 고열을 동반한 호흡곤란으로 입원한 뒤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이송해 치료했으나 상태가 악화돼 끝내 서거하셨다"고 발표했다. 김 전대통령은 앞서 2013년 4월부터 10월까지 반신불수를 동반한 중증뇌졸중과 폐렴으로 입원한 바 있다.

 직접적 사망원인은 허약한 전신상태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이 겹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서울대병원 측은 전했다. 임종 시 의료진 외에 아들 현철씨 등 가족은 대부분 자리했지만 부인 손명순 여사는 임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우리나라의 새 틀을 짜는 중요한 개혁조치를 대거 단행했다. 극도의 보안 속에 단행된 금융실명제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여긴 음성자금을 양지로 끌어내면서 부정부패를 막고 공정과세를 이뤄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군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군 권력의 상징이던 '하나회'도 청산했다. '군정 종식'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대대적인 청산작업을 진행했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학살 책임과 12.12 군사정변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하나회의 대표주자였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재판에 회부하기도 했다. 올해로 20년을 맞은 지방자치제 부활, 공직자 재산공개 등도 김 전대통령 때 단행됐다.
 
 임기 말인 1997년 터진 외환위기는 김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바꿔놨다. 문어 발식 확장과 방만경영으로 인한 대기업들의 연쇄부도와 금융기관의 부실이 악순환의 고리가 되면서 우리 경제를 사정없이 추락시켰다. 이는 단기외채 급증을 불러왔고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 선언 위기 속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상당기간 경제주권을 넘겨야 했다. 아들 현철씨가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 측근들을 앉히고 사실상 국정을 농단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은 것도 김 전대통령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된 배경이다.
 
김 전대통령과 함께 '삼김정치' 시대를 이끈 김종필 전 총리는 이날 빈소를 찾아 "김 전대통령은 신념의 지도자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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