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7전8기법안 열전⑤-국민기초생활보장법

[the300]종합

신현식 김세관 심재현 기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l 2016.05.26 13:34
16년간 뜯어고친 '부양의무자'…"현실반영"vs"부작용 심각"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반지하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함께 목숨을 끊은 사건은 온국민에 충격을 줬다. 이들은 어머니는 다쳐 실직하고 큰 딸은 만성 질환을 앓고, 작은 딸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빈곤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두 딸이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부양의무자'로 지정돼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배제됐다는사실이 알려지며 충격이 배가됐다.

2000년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법은 생활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 국가에서 지원토록 하고 있지만 부양의무자가 있는 경우에는 수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에서 탈락한 32만여명중 3만8000명(11.8%)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탈락했다. 시민사회단체들 '비급여 빈곤층'을 양산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 또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재정 부담을 우려, 난색을 표하고 있다.

◇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개정史=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의 역사

25일 국회 등에 따르면 부양의무자의 기준을 완화 또는 폐지하는 법안은 16대 국회(2000~2004년)이후 19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발의돼 왔다.

제정 당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부양의무자의 범위를 '수급권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 생계를 같이 하는 2촌 이내의 혈족'으로 정했다.

사실상 남과 다름 없게 된 먼 혈족이나 연락이 끊긴 부모·자녀까지 부양의무자에 포함되면서 국가의 보호범위가 지나치게 축소 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6대 국회에서는 수급권자의 '직계혈족'을 '1촌의 직계혈족'으로 좁혔다. 17대 국회(2004~2008)에서는 '생계를 같이 하는 2촌 이내의 혈족' 부문을 삭제했다.

18대(2008~2012년) 때는 곽정숙(당시 민주노동당) 의원과 최영희(당시 민주당)의원이 '배우자' 부분을 삭제, 사위와 며느리를 부양의무자에서 배제하자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은 부양의무자 규정을 아예 삭제하자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2012년 기준 2조1534억원의 재정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 공 의원안을 포함한 이들 개정안은 정부측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19대(2012~2016) 들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기하는 법안(강동원 새정치연합·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이나 65세 이상일 경우 부양의무자에서 제외하는 법안(김용익·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 중증장애인과 시설 퇴소 장애인 등을 제외하는 법안 들도 다수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게 됐다.

다만 자녀가 사망했을 경우 그 사위와 며느리를 부양의무자에서 제외하는 김용익 의원의 개정안은 19대 국회에서 통과됐다.




◇ 부양능력 판정 기준 강화…국가 보호 범위 확대

제정법은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수급권자를 포함한 두 가구 각각의 최저생계비 합의 120%보다 많은 경우에 부양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부양능력이 없는데도 부양의무자로 선정돼 의무자와 수급자가 모두 빈곤에 허덕이게 되는 문제도 법 제정 이래 제기돼 왔다. 결국 6년 뒤인 17대 국회에서는 120%를 130%로 상향 조정했다.

소득기준은 세모녀 사건이 벌어진 2014년 대폭 개정됐다. 당시 4인가족 기준으로 월 212만원의 소득이 있으면 부양의무자가 됐지만, 개정 이후에는 404만원 이상의 소득이 있는 경우에 한해 부양의무자를 지도록 했다.

◇ "현실반영 못해" vs "도덕적 해이 우려"

16년에 걸친 개정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 제도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부양의무제 기준 완화·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가족 구성원 수의 감소, 핵가족화, 가족 간의 단절과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 등 현행 제도 하에서는 비급여 빈곤층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소득 양극화로 인해 갈수록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받는 것이 어려워지는 상황인데 부양 부담으로 빈곤의 대물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부양의무자 범위가 지나치게 축소되거나 삭제될 경우 가족 간 서로 부양·지원이 약화돼 가족 해체를 촉진하는 등 사회적·문화적 부작용이 크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부양의무 범위 축소는 곧 재정부담으로 이어지는 만큼 국가와 사회가 얼만큼의 부양 부담을 져야 하는지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자녀가 사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우자의 부양의무 조항을 완전히 삭제할 경우, 부양의무가 있는 자녀가 배우자에게 재산명의를 옮겨 부양의무를 회피하는 도덕적 해이의 발생도 우려된다.

또한 남성의 소득이 여성의 소득수준을 상회하는 현실에서 아들이 있는 부모에 비해 딸을 가진 부모들이 부양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 20대 국회 전망은

부양의무자 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20대 국회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여소야대 정국을 맞아 야당 의원들은 지난 국회에서 정부·여당의 반대에 가로막혔던 해당 법안들을 다시 발의, 통과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다.

시민사회단체도 정치권 압박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에는 공공노조사회복지지부와 빈곤사회 연대 등 24개 단체로 구성된 '기초생활보장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이 출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촉구하고 나선 바 있다.


[막전막후 속기록]여야정 교육급여 부양의무 폐지 '설전'

2014년 11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위원들과 관계부처 직원들이 법안심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기초생활수급 대상의 '아킬레스건'인 부양의무자 제도는 지난 2014년 12월 마지막으로 개편됐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작된 이후 15년 만에 단행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대적 수술과 맞물려 부양의무 기준도 적지 않은 변화를 맞이한 것.

급여 항목을 통합해 빈곤층에 제공되는 기초생활수급을 맞춤형으로 바꾼 것이 2014년 기초생활보장제 개편의 골자였다. 구체적으로 △생계 △주거 △의료 △교육 등 소득에 따라 기준에 맞는 사람들에게 종류별로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법안의 대대적 개편의 한 가운데서 야당과 시민단체는 빈곤 사각지대의 원인 중 하나인 부양의무제의 완벽한 폐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재정 걱정과 '모럴해저드' 우려 등의 이유로 반대했다. 이에 따라 현실적인 범위 내에서의 개편으로 개정 의견이 모아졌다.

당시 △1촌 직계혈족의 배우자(사위, 며느리) 부양의무 제외 △부양의무 소득 기준 대폭 완화 △기초생활수급 중 교육 부문 부양의무 폐지 등이 해당 상임위원회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중 부양의무 소득기준은 4인 가구 212만원에서 404만원으로 대폭 완화됐다. 반면, 1촌 직계혈족 배우자의 부양의무 제외 방안은 정부의 강력한 반대로 개편이 무산됐다. 남아 있는 안건은 기초생활보장 교육 부문에서의 부양의무 폐지.

정부와 국회는 지난 2014년 11월17,일 결과적으로 국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교육부문 부양의무 폐지 방안을 두고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다음은 당시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 속기록을 요약 구성한 내용이다.

#2014년 11월17일 복지위 법안소위

-김대현 복지위 수석전문위원
"국민 기초생활 보장법, 아직 여야 간에 정부와 합의가 도출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 진행 상황을 위원회에 다시 보고를 들으시고 판단하시면 되겠습니다." 

…(중략)…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제가 지난번에 교육급여 문제하고 장애인 추가비용 문제를 얘기를 했는데 복지부 전혀 고려해 본 바 없습니까?"

-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
"교육급여 문제에 대해서 위원님들께서 말씀을 하셔서 그동안에 재정부(기획재정부)하고 협의를 했지만 교육급여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협의가 끝나지 않아서…."

-최동익 의원
"그러니까 제가 여쭤볼게요. 부양의무자는 1촌 이내의 직계혈족에게 있는 거지요? 그런데 교육급여 대상자는 2촌(까지도 부양의무가 적용)이에요. 조부모가 손자에게 해당하는 것이거든요. 교육급여는. 그러니까 지금 부양의무제의 법적 원칙에도 위배가 된다고요. 교육급여에 적용하는 것은."

-김원종 복지부 복지정책관
"저희가 아시다시피 개별 가구별로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요. 개인별로 하는 게 아닙니다." 

-최동익 의원
"자꾸 가구라고 우기지 마시고 부모에게 주는 게 아니잖아요. 아동에게 지급하는 거고 2촌이기 때문에 원칙에 위배되는 1촌까지만 하게 되는 게 부양의무제인데 그것을 반대할 명분이 없잖아요, 지금 복지부가. 자꾸 지금 예산 가지고 반대하시는 건데 법적으로 논리가 안 맞잖아요…(중략)…복지부가 법체계나 논리에서 다 위배되는 것을 알면서도 기재부하고 예산 협의가 안 되니까 원칙을 저버리겠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일단 복지부는 지금 답을 할 수가 없다고요. 지금 복지부의 답은, 원칙은 복지부가 주장하는 게 틀리지만 예산이 없으니까 원칙을 안 지키겠다는 얘기밖에 더 되냐고요?"

…(중략)…

-김원종 정책관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본적으로 부양의무자를 두고 부양의무자의 부양을 우선적으로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원칙까지 훼손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저희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
"그러면 기재부랑 똑같은 입장이신 거예요? 교육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 하는 걸 반대하는 거죠, 지금?"

-장옥주 차관
"예, 그렇습니다."

…(중략)…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금 복지부의 태도는 원래 통합급여로 지급하던 걸 4개(생계, 주거, 의료, 교육)로 분할을 했더라도 부양의무 기준은 똑같이 적용이 된다 이렇게 지금 생각을 하는 건데, 개별급여로 끼웠는데 통합급여 상태의 논리를 굳이 적용을 해야 될 이유가 뭐가 있어요?…(중략)…사회투자 개념에서 제일 중요한 게 아동에 대한 투자 아닙니까? 빈곤 탈출의 제일 중요한 마지막 단계라면 부양의무 기준을, 그거를 늦춰 주는 거를 왜 망설여요?"

…(중략)…

-김원종 정책관
"김용익 의원 말씀 다 동의하고요. 그래서 이게 맞춤형 급여가 빨리 되면 각 개별급여별로 실제 실태조사를 다 해서 각 개별급여별 발전방향을 추가적으로 검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법제도 개선 과정에 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계속 검토하겠습니다."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복지부에 제가 하나 여쭤 볼게요. 부양의무 기준이 장기적으로 폐지돼야 된다는 것은 복지부도 같은 생각이시지요?" 

-장옥주 차관
"그 부분은 가족에 대한 부양인식, 사회적 국민들의 부양인식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봐 가면서 해야 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성주 의원
"돈이 없어서 곤란을 겪는 이웃을 돕는 제도를 설계하면서 마찬가지로 정부가 돈이 없어서 그것을 못 돕겠다고 하는 이유를 내세우면 우리는 해답을 못 찾는 거거든요. 야당이 생각하는 것은 최소한 빈곤의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해서 교육급여만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먼저 폐지하자는 겁니다."

-김현숙 의원
"지금 부양의무자 폐지를 여기서 넣어서 하는 것보다 아까 국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을 넘기면서 저희가 부대조항에 빠른 시일 내에 이것에 대해서 서베이를 해서 교육급여 제도를 어떻게 갖고 갈 건지, 부양의무자 기준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단서조항으로 오히려 법에, 지금 당장 부양의무자 폐지를 해 주는 게 아니라 그런 단서조항을 달고 저희가 법에, 어디든 간에 부칙에 달아서 보내고. 만약에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부양의무자 폐지가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한다면 (예산이) 2000억을 넘지 않아야 된다라는 제 원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명수 복지위 법안소위원장
"자, 이렇게 하시지요. 별도의 논의를 위해서 잠시 정회했다가 속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정회를 선포합니다."

…(중략, 정회 후 회의속개)…

-장옥주 차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12조에 교육급여에 대한 조항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조항에 교육급여 수급권자 원칙을 정해 놓고요. 부칙 제6조에 이런 교육급여 적용 특례를 신설을 했습니다. 여기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제외시켰습니다, 적용 특례로 해서."

-최동익 의원
"(부칙이 아니라) 본문에 넣어오는 걸로 아까 협의를 했는데, 부칙이냐 본문이냐 하다가 본문으로 정리됐는데 부칙으로 가져오시면 어떻게 해요? 진짜 이상한 고집을 부려요, 복지부. 희한하네 진짜." 

-장옥주 차관
"아니, 그 부분이 지금 부양의무자에 대한 기본원칙은 지키되 이 부분에 교육급여의 특수성을 인정해서 적용 특례로 하는 걸 가지고 저희가 지금 기재부하고 협의를 한 겁니다."

-김성주 의원
"결과에서는 똑같은 건데…."

-장옥주 차관
"아니, 결과는 같지만…."

-김성주 의원
"복지부, 어파치 기재부하고 교육급여에 대해서 부양의무 기준을 적용하지 아니하기로 한다라고 합의가 됐으며, 양해가 됐으면 법조문을 좀 쉽게 가야 되지 않겠어요?"

-장옥주 차관
"아니요, 그게 아닙니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하는 것은 반데인데 교육급여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그걸 인정해서 한다, 그러면 그 특수성에 대한 것이 법조문에 나타나야 된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한다는 게 12조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성으로 인해 교육급여에 대해서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제외한다는 게 부칙입니다." 

…(중략)…

-김현숙 의원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얘기했는데 좀 그러니까 12조(교육급여) 안에 12조의1이든 12조의2든 해서 교육급여의 특례를 넣는 것을 한번 다시 기재부랑 상의해 갖고 오세요." 

-장옥주 차관
"그러면 지금 부칙에 있는 조항을 본조항의 한 조로 그대로 끌어오라는 것 말씀하시는 것인가요?…(중략)…예, 그러면 12조의2로 해 가지고 부칙에 있는 것을 거기에다가 그대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중략)…

-이명수 위원장
"자, 그러면 지금까지 논의를 다 해 주셨는데 제가 다시 반복 않고요. 교육급여 문제는 조금 전에 정리한 대로 그렇게 최종 정리를 하면 되겠습니까? ([예] 하는 의원 있음) 그러면 의결을 하겠습니다."


빈곤층 기초수급 족쇄 '부양의무자' 해외선 어떻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지적을 받아온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두고 국내에서는 16년째 찬반이 엇갈리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에서는 부양의무자 유무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의 절대적인 요건이 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가족간 부양의무를 강조했던 전통사회가 붕괴되면서 부양의무자 범위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는 추세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 자체가 없다. 우리나라의 기초생활보장제도에 해당하는 공공부조제도에서는 소득과 재산 기준에 근거한 자산조사가 수급자 선정의 최대 기준이 된다. 공공부조가 다양한 개별제도로 분화돼 있어 제도마다 수급선정 기준이 다르지만 부모나 자녀, 형제, 배우자가 있다고 해서 국가로부터 생활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복지국가 전통이 강한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에서도 부양의무자 유무가 수급요건의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 않는다. 가족의 부양의무 자체가 최소화돼 있는 데다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사회의식이 강하다. 1978년까지 법률상으로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도록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1956년부터 부모부양을 자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서 맡아왔을 정도다.

중유럽권의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에서도 법적인 가족이나 친족이 공공부조 수급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핵가족 중심으로 부부와 미혼 자녀에 대해서만 부양의무를 부과하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와 제도 측면에서 가장 비슷한 공적부조를 운영해온 일본에서도 1990년대 들어 부양의무자 기준이 대폭 완화됐다. 옛 생활보호법에서는 부양의무자 유무가 우선적으로 고려됐지만 현행 생활보호법은 수급자 선정요건이 아니라 단순순위 정도로 고려한다.

국가 차원의 복지 정책에 따라 폭넓은 공공부조가 뿌리내렸던 서구와 달리 일본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된 것은 까다로운 신청절차 때문에 정작 지원을 받아야 할 저소득층이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수십년 동안 연락이 끊긴 부양의무자에게 부양이 불가능하다는 증명을 받아야 하는 방식으로는 공적부조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얘기다. 최근 '세모녀 사건' 등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이 논란이 된 국내에서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가족주의가 남다른 남유럽의 상황은 반대다. 가정사에 국가는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족 프라이버시 관념이 강하기 때문에 공적서비스제도 자체가 많지 않다. 남유럽권에서 공공부조는 부모나 형제·자매 범위를 넘어 3촌 관계의 가족이 없는 경우에만 대상자가 되는 나라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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