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거부권 정국'?…"청와대·친박 당권장악 포석"

[the300]국회법 거부권 행사에 대치 국면 예고…野, '투트랙'으로 정국 주도권 되찾기 고심

김태은 기자 l 2016.05.27 13:19
황교안 국무총리가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해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 황교안 총리가 주재한 오늘 임시 국무회의에서는 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수시로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하는 '상시 청문회법'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 등을 의결했다.




20대 국회가 출범과 함께 협치와 대결의 기로에 섰다. 19대 국회에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청와대와 여당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당분간 20대 국회는 대치 국면이 불가피해졌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가 당 장악을 위한 방편으로 '거부권 정국'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새누리당 전당대회 시점까지 대치 국면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27일 청와대가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를 의결하자 청와대와 여당이 협치의 틀을 깼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협치를 하자고 했는데 20대 국회가 시작도 하기 전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며 "앞으로 협치가 과연 잘 이뤄질 것인가, 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청와대 회동 성과 중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가 무산되면서 협치 정신에 금갔고 (국회법) 거부권 행사 때문에 협치 정신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금이 갔다"며 "청와대와 여당의 태도에 심각하게 우려하고 경고의 말씀을 드린다"고 강조했다.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이번 총선의 압도적인 민의는 이제 나라 전체를 질곡으로 몰아갔던 대결의 정치를 끝내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이번에도 그런 길을 거부하는 것 같다"며 "대통령이 야당과 국민에 대해 선전포고한 것"이라고 개탄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야당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에 반발한다며 갈등 국면의 책임을 야권에 돌렸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긴급 원내대표단 회의에서 "거부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금기시할 필요 없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며 "야권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20대 국회 개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한 야3당이 20대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을 추진하기로 한 방침에 대해 "19대 국회 일은 19대에서 끝내는 것이 순리"라며 국회법 재의결을 두고 갈등 국면을 예고했다.

4·13 총선 후 제1당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뀌고 제3당의 캐스팅보트 역할이 부각되면서 여야 모두 협치를 강조하며 19대 국회와는 다른 협력적 국회를 예고했다. 훈풍이 기대되던 정국이 급격히 얼어붙게 된 것은 새누리당의 내부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의도적인 '급랭 정국'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총선 패배 후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 주류의 당 장악력이 약화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당분간 여야 대립 구도를 의도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즉 외부의 적과 싸우는 동안 내부 갈등을 잠재우려는 시도라는 것. 이 때문에 새누리당에서는 친박의 당권 장악이 완료될 것으로 보이는 전당대회 시점까지 '거부권 정국'을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오늘 아침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를 우연히 조우해 몇 마디 주고받아보니까 조금 강경해진 기분"이라며 "당내 문제가 친박-비박(구도)이기에 청와대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구나 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집권여당이 당내 문제와 전체 국정을 혼동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총선 민의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이 같은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국회법 이슈로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운영을 지적하는 한편 생산적인 국회의 모습을 위해 원구성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민생경제 챙기기를 적극 부각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한다는 방침이다.

천정배 대표는 "거부와 상관없이 국민적 관심사인 사안에 대해 국회에서 상임위 청문회를 다른 방식으로 추진한다든가는 방법이 기술적으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법의 자동폐기 혹은 효력 발생 등의 논란에 대해 "법리 논쟁은 헌법재판소 등에 맡겨놓으면 되고 우리는 민생국회를 만들기 위해 원구성 협상을 해서 법적 시한 내 하자는 것이 기본 기조"라며 "이 건을 가지고 국회의장이나 상임위원장 등 원구성 협상과 절대 연계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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