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 만큼 중요한 개헌 과제…기본권·지방자치·경제민주화

[the300][런치리포트-개헌론 뜯어보기]②국민 삶과 연계된 개헌 논의 필요성

지영호 기자 l 2016.06.23 05:56
정세균 국회의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16.6.1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분명한 사실은 개헌의 기준과 주체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며 그 목표는 국민통합과 더 큰 대한민국이라는 것입니다" (13일 정세균 국회의장 개원사)

"계파, 공천, 자리나누기. 일반 국민들의 삶과 관계없는 그들만의 리그에 매몰되지 않아야 합니다"(20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 연설)

"지금 개헌은 정치영역에만 국한한 것이 아닙니다. 민생을 위한 개헌, 경제를 살리는 개헌입니다"(21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교섭단체 대표 연설)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개헌론이 급부상했다. 개헌론이 나올때마다 정치권의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국민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이번엔 정치권의 대응방식이 달라졌다. 국민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헌법의 기본정신이 수정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개헌논의도 힘을 얻을 수 있다는게 핵심이다. 권력구조 변화 뿐 아니라 국민 기본권, 지방분권, 경제민주화 등 사회 전반에 제기된 내용이 포괄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50대 대선 잠룡 사이에서도 개헌론이 권력구조 개편에만 초점이 맞춰져선 개헌 동력을 잃을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국민 삶에 변화를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부겸 더민주 의원은 21일 MBC 100분토론에 출연해 "한가한 헌법 타령이냐고 하는데 국민 기본권 문제와 과도한 중앙집권에 따른 지방자치의 고사위기, 시장과 국가의 긴장관계 등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저성장, 양극화, 청년실업, 저출산 문제를 (지금의 헌법 구조상) 해결할 수 없다"며 "정치권의 물갈이로는 안되고 정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개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 맞춰지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헌법이 사심에 의해 흐트러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면서 "21세기 포용적 자본주의에 걸맞는 극심한 경쟁에서 비롯된 사회양극화, 사회적 가치를 (담자는 개헌 주장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국민 기본권 규정…경제헌법 가치 높여야

 국민생활과 직접 연관된 대표적인 헌법 조항으로는 국민 기본권 관련 조항이 꼽힌다. 헌법 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면서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1987년 민주화운동의 결실로 탄생한 현행 헌법이 지금의 시대적 가치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느냐다.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개헌논의에서 정치구조 변화보다 우선해야 할 게 우리 사회변화에 대한 가치 재창출 부분"이라며 "예컨대 사회평등 관점에서 우리사회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불평등으로 치닫고 있는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칠 경제적 가치가 헌법에 담겨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덕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살림의 명제로 본 경제헌법·재정헌법 개정론'에서 실업문제, 비정규직 문제, 소득양극화, 빈자들의 곤궁함, 사회안전망의 부실, 재정건전성의 악화 등의 난제에서 헌법 개정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극소수 최상층(overclass)과 대중간의 '삶의 기회'(life-chance) 격차가 벌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이미 예방 차원이 아닌 위기 수준에 도달한 국가적인 부채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의 국채발행을 제한하고 국회의 회계검사기능 강화 또는 감사원의 독립 등을 헌법 조항에 반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4문장 뿐인 지방자치, 지방분권 강화 한계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국가적 우선가치로 내세우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독립성을 헌법에 명문화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중심으로 부활한 지방자치의 제도적 한계 때문이다.

헌법에 규정된 지방자치 관련 내용은 117~118조에 있다. 지자체 조례 허용과 지자체 의회 설치 등을 담은 4문장이 전부다. 헌법에 명시된 기구 가운데 가장 짧다. 30여년 전 과도한 중앙집권적 국가운영에서 비롯됐다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의 필요성과 그 방안'에 따르면 현행 헌법상 지방분권의 한계로 △주민 자치권 규정 전무 △입법권의 국회 독점 △지방의 국정참여 무관심 △조세 부과·징수·배분의 중앙 독점 △사법 분권 및 자치 무시 △국가와 지자체, 지자체 상호간 협력 조정 불비 등을 지적했다.

한 교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중앙의 압도와 지방의 몰락이라는 비정상적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이를 교정하기에 현행 헌법은 너무도 무력하다"고 평가했다.

일례로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집권 내내 추진한 신행정수도건설사업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핵심 목표로 내세웠으나 2004년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론을 근거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무효화하면서 지방분권정책의 동력을 잃었다.

한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지방분권정책 동력을 상실한 것은) 헌법해석정치 및 헌법개정정치 차원에서 지방분권정책의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헌법에 지방분권의 가치가 담겼더라면 국토균형발전의 동력이 커졌을 것이란 해석이다. 그는 대안으로 '지방분권'을 헌법정신으로 명문화하고, '지방분권에 기초한 복지국가 지향'을 추가하자는 의견을 내놔 주목을 받았다.

◇사법개혁, 국민 인권과 밀접…경제민주화 사회정의 담겨야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뉘는 국가권력 구조 상 인권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은 사법부다. 사법 개혁이 국가권력 문제라기보다 인권 보호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표적 개헌론자인 우윤근 전 더민주 원내대표는 그의 저서 '개헌을 말한다'에서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상 독립기관의 예상편성권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대법관 전원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한편(대법원장은 대법관이 호선),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되 헌법상 기구로 격상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군사법원은 계엄 하에사만 인정하는 내용도 담겼다. 대통령이 가진 과도한 권한을 조정하는 한편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선 헌법 119조가 개정사항이다. 현행 경제 주체의 기본권에 '사회적·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정의 실현'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대기업의 독주를 막는, 야당이 요구하는 '사회적 경제 기본법'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최근 국회 사무처장으로 선임되면서 개헌론에 불을 당긴 정세균 국회의장과 함께 개헌 활동의 최전선에 있다.

이에 대해 이덕연 교수는 "재검토해야할 문제점이 적지 않다"고 진단하면서도 "다수를 위한 경제, 즉 공정한 경쟁과 기회의 평등, 정의로운 분배, 생산과 노동의 가치 제고, 공생의 생태윤리 등의 개방된 융합개념으로 이해한다면 국민적 토론을 통한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데 소중한 규범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