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빌드업 정치'가 필요하다

김익태 l 2022.12.09 05:42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요즘 여의도를 보자면 해도 너무한다 싶다. 국민은 안중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사생결단 싸움만 할 수 없다. 1년여 만 최저 수준으로 뒷걸음질 친 국제 유가. 경기 침체 공포가 더욱 커졌다는 경고 메시지가 쏟아진다. 고물가를 잡기 위한 고육지책의 고금리 정책, 이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 기업 자체 부실도 상당하다. 도대체 해결 방안을 찾기 어려운 저출산 문제. 허약해진 경제 체질, 저성장 국면으로 가파르게 빠져들고 있는데 정말 정치가 저래도 되나 싶다. 말로만 민생, 경제위기다.

법정 시한을 넘긴 내년도 예산안 처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탄핵 소추를 놓고 벌이는 힘 겨루기. 정기국회 내 처리도 쉽지 않다. 출구 없는 대치 국면을 보면 최악의 경우 헌정사 최초 '준예산' 편성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현실화되면 정부는 법률상 의무지출과 기관 운영비 등 최소한의 비용만 쓸 수 있다. 정부안 기준 총지출 639조원 중 약 280조원이 막힌다. 이에 따른 고통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민생이 별 건가. 예산이 곧 민생이다. 위기 관리 능력 부재에 따른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노란봉투법' 등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는 법안들도 진행되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청담동 술자리', 김건희 여사 '빈곤 포르노'와 같은 논쟁 구도가 형성된다.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과 대여 투쟁을 병행하겠다고 했다. 실제 행보는 민생보다 의석수를 무기 삼아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총력 대응하고 있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국정운영의 무한 책임이 있음에도 타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이재명 반사이익'에만 의존하고 있다.

국민을 외면한 몰염치한 행위의 근저에는 극단의 진영화 된 갈등구조가 존재한다. 패거리 싸움 정치다. 최근 몇 년 등장한 '적폐'라는 단어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 구석구석 쌓여 있는 구습을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상대를 타협의 대상의 아닌 적폐로 규정하고 청산 대상으로 삼는 순간, 정치는 작동할 수 없다. 핵심 지지층은 뭐든 용서할 거란 그릇된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전 세계 17개 국가 중 한국은 '지지 정당 차이에 따라 사회 갈등이 있는지'라는 질문에 '심각', 또는 '매우 심각'이라고 답한 비율이 90%에 달해 미국과 함께 공동 1위에 올랐다. 고착화 될 가능성이 높은 저성장 극복을 위해선 규제 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새로운 갈등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갈등을 조정해야 하지만, 오히려 극단의 갈등을 유발하는 정치권 행태를 보면 구조 개혁은 요원해 보인다.

막스 베버는 100여 년 전 불멸의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정치가의 자격을 논했다. 정치가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복무하는 윤리는 물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행동이 실제 현실에서 창출해내는 결과까지 예측하고 책임지는 윤리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신념 윤리'만을 고집하며 '책임 윤리'를 등한시하는 이는 정치가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봤다. 쉽게 말해 정치에 기생해서 이권이나 자리를 탐하는 이들은 자격이 없다는 의미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갈망을 해결하는 것, 그게 정치의 본질이다. 소명을 망각하고 볼썽 사나운 모습만 보이고 있는 정치권이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도하의 기적'. 대한민국 축구가 달라졌다고 한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벤투 감독은 새로운 리더십을 선보였다. 비판과 의심의 눈초리도 많았지만, 4년 간 '빌드업 축구'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재능있는 신인들도 끊임없이 발굴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저력, 팀플레이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정치에도 새로운 '빌드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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