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다" 尹대통령의 '반성문'…국민 마음 돌리려면

[the300]

박종진, 안채원 l 2024.04.16 17:46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4.16/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4.10 총선 참패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반성문은 '방향은 옳았으나 국민께 다가가지 못했다'로 요약된다. 재정과 경제정책에서부터 구조 개혁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국정운영의 방향은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게 분명했지만 국민이 이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를 약속하고 소통을 강조했다. "죄송하다, 대통령인 저부터 잘못했다"는 직접적인 사과 표현도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영수회담' 가능성도 열어놨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연성을 보일지, 어떤 방식으로 민심을 경청할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가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이후 소통 구조와 방법에서 실질적 변화가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생중계로 약 12분간 모두 발언을 공개했다. 이어 오후에는 국무회의 비공개 발언과 참모 회의 내용 등을 언론에 알렸다. 총선 이후 엿새 만에 대통령의 총선 평가가 나온 셈이다. 취임 이후 국정운영을 돌아보면서 국민 앞에 부족했던 점을 일일이 열거하며 다짐을 밝히는 사실상 첫 사례이기도 했다.

오전에 나온 대국민 생중계 발언은 '설명'에 치중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물가 관리, 건전 재정, 부동산 정책, 원전 생태계 복원, 늘봄학교 실시 등 각종 정책의 의미를 자세히 거론하고 국민이 체감하지 못했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아무리 국정의 방향이 옳고 좋은 정책을 수없이 추진한다고 해도 국민들께서 실제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알려지면서 '정부 정책을 몰라주는 국민이 잘못이란 말이냐', '선거 참패에 원인 분석이 잘못됐다' 등 비판이 쏟아지자 오후에는 더욱 몸을 낮췄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오후 용산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이날 국무회의 비공개 발언과 참모 회의 때 논의 내용 등을 공개하면서 '진정성'을 전달하려 애썼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국민께 죄송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본인부터 국민의 뜻을 받들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인 저부터 잘못했고 앞으로 소통을 더 많이 해 나가겠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뭐 있느냐"고 거듭 강조했다. 매서운 심판의 본질을 "더 소통 하라는 것"이라고도 해석했다.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16일 오전 대구의 한 대학병원을 찾은 시민이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TV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2024.4.16/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관건은 행동으로 옮기느냐다. 이날 윤 대통령 메시지의 본질은 작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와 다르지 않다. 그때 국민의힘은 17%포인트(p)라는 예상 밖의 큰 격차로 패배했고 윤 대통령은 장관 인사를 물리는 등 국정 쇄신을 예고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참모회의와 당 지도부 오찬 등을 통해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의 삶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챙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낮은 자세와 소통이 민심을 얻는데 핵심이라는 점을 알고서도 6개월 간 이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주요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적인 설명과 문답이 없다면 민심을 되돌리기가 여전히 어려울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이날 각종 정책의 정당성과 성과에 대한 설명도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은 아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국민은 '현재 국정 방향이 틀렸다, 구조 개혁을 하지마라, 재정건전성을 포기하고 현금을 뿌려달라, 부동산 정책도 문재인 정부 때가 옳았다' 이렇게 생각해서 야당을 찍은 게 아니다"며 "국민은 대통령의 불통에 답답함을 느끼고 화가 났는데 이런 국민의 생각과 감성에 초점을 맞추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국민의 날 것 목소리 그대로를 어떤 방법으로 들을지가 앞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했다.

한편 '범죄 혐의자'와 대통령이 협상을 위해 마주 앉을 수 없다며 거절해온 이재명 대표와 회담도 추진될 전망이다. 그동안 대통령실은 '영수회담'이라는 말 자체가 과거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겸할 때나 쓰던 용어로서 오늘날 현실에는 적합하지 않은 회담 형식이라고 밝혀왔다. 대통령과 야당 지도부 전체가 만나는 방식 등을 추진하되 이 대표와 일대 일 만남은 거부했는데 그 배경에는 온갖 혐의로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범죄 피의자'(혹은 재판 중인 피고인)와 대통령이 얼굴을 맞대는 협상은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깔렸다.

다만 만남의 시기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이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제22대 국회가 개원하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사퇴로 공백이 된 여당 지도부가 새롭게 꾸려진 이후에 △여야의 실무협상을 통한 구체적 의제를 숙성시켜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수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범죄 혐의자와 마주 볼 수 없다'는 기존의 강경한 입장에서는 바뀐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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