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선긋기"...한동훈, 尹오찬 거절은 건강 때문? 대권용 거리두기?

[the300]

박소연 l 2024.04.22 18:19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제22대 총선 관련 입장발표를 마친 후 당사를 나서고 있다.(공동취재) 2024.04.11. /사진=뉴시스 /사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오찬 초청을 건강상 이유로 거절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한 위원장이 안 쓰던 자신의 페이스북을 활용해 첫 메시지를 낸 데 이어 윤 대통령의 초청을 이례적으로 거절하면서 향후 대권 등 정치행보를 염두에 두고 윤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 전 위원장은 총선 열흘 후인 20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2년 만에 글을 올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러분을, 국민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뿐"이라며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 전 위원장에게 총선 패배의 책임을 돌리며 연일 원색적 비난을 쏟아낸 끝에 '윤석열 대통령도 배신한 사람'이라고 저격하자, 이를 반박한 것으로 해석됐다. 자진 사퇴 9일 만에 침묵을 깨고 자신의 지지자들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한 전 위원장이 정치행보를 사실상 시작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차기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설도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한 정진석 의원을 소개하고 있다. 2024.4.22/사진=뉴스1 /사진=(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후 한 전 위원장을 포함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원 전원을 21일 오찬에 초청했으나 한 전 위원장이 건강 문제를 이유로 거절했단 사실이 알려졌다. 한 전 위원장은 기자들의 오찬 초청 관련 질문에 이례적으로 직접 일일이 답변하며 적극 입장을 밝혔다. 실제 한 전 위원장은 총선 과정에서 막판 탈진하는 등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그간 당 지도부 인사들은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오찬 초청에도 관행상 개인 스케줄을 취소하며 응해왔단 점에서 한 전 위원장의 거절은 이례적이란 분석이 나온다. 총선 승리를 위해 억눌러온 양측의 불편한 관계가 수면 위로 올랐다는 것이다. 양측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과 이종섭 전 호주대사 임명 등 다양한 현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22일 오전 대구시의회에서 열린 제308회 임시회에 참석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 관련 추가경정예산안 제출에 따른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2024.4.22/사진=뉴스1 /사진=(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한 전 위원장의 측근인 김경율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의 오찬 초청에 대해 "갑작스럽게 일정을 잡은 것도 의아하고 전격적이지 않다. 나머지 비대위원들에게는 전혀 연락이 없었다"며 "한 위원장이 아무리 지금 백수 상태지만 금요일에 전화해서 월요일 오찬을 정하기로 했다는 부분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홍준표 대구시장을 먼저 만난 것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서운함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은 윤 대통령의 만남 요청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이 되느냐는 질문에 "직접 연락하면 되실 텐데 비서실장과 원내대표 두 다리를 건너서 하는 것도 전격적이지 않다"며 "홍 시장이 (윤 대통령과) 회동을 마치고 나서 (한 전 위원장을 향한) 발언들이 대단히 세지 않나. (윤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인 서운함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서울 모처에서 홍 시장과 약 4시간 동안 만찬을 함께 하며 국정기조와 인선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시장이 연일 한 전 위원장을 비난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홍 시장을 먼저 만난 것을 두고 일각에선 홍 시장의 발언에 힘을 실어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정치권에선 한 전 위원장이 당분간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며 향후 행보를 고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당선인은 "지금은 승자의 시간이다. (한 전 위원장이) 오찬에 응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총선 참패 책임론이 분분한 상황에서 양측이 냉각기를 갖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단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 특화시장을 찾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24.1.23/사진=뉴스1 /사진=(서천=뉴스1) 김기태 기자

한 전 위원장이 차기 대권 등을 바라본다면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 거리두기는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있다. 김준일 정치평론가는 이날 CBS라디오에서 "(한 위원장 페이스북 내용) 저거는 선긋기를 명확하게 한 것"이라며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했다는 게 누구의 잘못이겠나. 대통령의 잘못이고 정권의 잘못이고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김건희 특검법이라든지 이런 거, 본인이 특검법을 하겠다고는 안 했지만 문제가 있다고 얘기를 했고 그런 것들이 제가 보기에는 역린을 건드리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여권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여옥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정치는 싫은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라며 한 전 위원장을 향해 쓴소리를 냈다. 전 전 의원은 "지금 보수우파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윤한 갈등'"이라며 "'네 탓 내 탓'하며 성질 부리고 꼬장 부릴 때 아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이 함께 손을 잡고 '위기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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