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과학법안 통과 '제로'...'창조경제' 팽개친 국회

야당은 원하는 법안 아니면 다른 법안도 스톱, 여당 법안 거래 목록서 과학법안은 뒷전

진상현 김성휘 l 2014.03.12 05:50
'창조경제'의 밑거름이 될 '과학 법안'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사라졌다. 장장 1년 동안 통과된 법안이 '제로'다.

'법안 거래', 이른바 '빅 딜' 없이는 쟁점 법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고, '딜' 리스트에서 과학 분야 법안들은 늘 뒷전으로 밀린 결과다. 여야 대치 심화로 지난해부터 일상화되고 있는 '법안 거래'의 직격탄을 우리 과학계가 맞고 있는 것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 정책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까지 이렇게 과학을 푸대접해서는 아무리 창조경제와 과학강국을 외치더라도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9일 국회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정부 조직개편에 맞춰 국회 상임위가 개편된 지난해 3월22일 이후 지난 2월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모두 756개에 달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등으로 여야 갈등이 극심했던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하지만 이 가운데 과학 분야 법안은 하나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표방하고 그 그간이 되는 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입법을 통해 국가 정책이 최종 구현되는 국회에서는 과학이 완전히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 공정성 법안 논란 등을 6개월째 '입법 제로(0)'를 기록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조해진 소위원장과 여야 의원들이 법안을 심사하고 있다.



1년 가까이 법안 처리가 중단되면서 현안 법안들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 통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과학기술 성과 활용 촉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과학기술 기본법 △지난해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원전 비리를 막기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감독ㆍ규제권한을 확대하는 원자력안전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상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소관) △과학기술계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공공기관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개정안'(기획재정위원회 소관) 등 처리가 시급한 법안이 하나둘이 아니다.

과학 법안 처리가 이처럼 뒷전이 되고 있는 것은 국회 법안 심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갈등이 심화되면서 야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들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이견이 없는 법안들도 통과시키지 않고, 여당은 국회선진화법으로 야당 협조 없이는 법안을 처리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여당이 꼭 필요한 법안들을 추려서 야당이 원하는 법안과 연계 처리하는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법안들이 여당의 거래 리스트에 오르고 과학 법안과 같이 국가의 장기적인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법안들이 뒤로 밀렸다. 실제로 여당이 최우선 처리 법안으로 야당과 협상에 나섰던 법안들은 △외국인투자촉진법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산업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경제활성화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게다가 과학법안을 다루는 미방위는 극단적인 법안 거래가 고질화된 곳이다.
정보통신기술(ICT), 과학, 방송 등의 분야를 다루는 미방위가 지난해 3월 이후 처리한 법안 수는 고작 6건.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등 방송 관련 법안 3건,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안(ICT특별법) 등 ICT 관련 법안 3건이 전부였다. 방송 공정성 관련 법안으로 여야 격돌이 지속되면서 방송과 관련이 없는 ICT, 과학 법안까지도 수개월간 한 건도 처리되지 못했다. 지난 2월 국회에서는 법안 소위에서 밀린 법안을 일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역시 방송 공정성 관련 법안이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해 100여건의 법안 처리가 한꺼번에 무산됐다.

국회 법안 심사 구조를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당장 급한 법안 처리를 위해 법안 연계 처리를 계속하다 보면 과학 법안과 같은 희생양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 출신인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비례대표·미방위)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법안 처리가) 안되는 상황"이라며 "법안 심사 문화가 구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해결 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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