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영란법, '제2의 금주법' 안 되려면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 l 2014.06.02 06:01
몇 년 전 스폰서 검사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검사는 업자에게 월급 받듯이 돈을 받았지만 처벌받지 않았다. 직무의 대가로 돈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공직자는 직무의 대가가 입증되지 않아도 금품 등을 수수하면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또한 공직자 자신이 아니라 배우자 등 가족이 금품을 제공받았을 때, 처벌받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이에 가족이 금품을 받아도 처벌하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애초 법 취지를 생각하면 국회의원, 장·차관,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들만이 대상자가 아닌가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그 기준을 정하기 어렵거니와 실제 공직 부패는 민원인을 직접 대하는 하위직에서 벌어지기 쉽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어느 기관은 넣고 어느 기관을 뺄 지, 한 기관 내에서도 어느 부서는 넣고 어느 부서를 뺄 지 기준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김영란법 원안은 어느 직급 이상을 선택하거나 어느 기관을 선택하거나 어느 부서를 선택하지 않고 모든 기관의 전 종사자를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에 따라 헌법기관 종사자, 국가 및 지방공무원, 공직유관단체 모든 종사자가 이 법의 당사자가 되었는 바, 그 수는 약 157만 명에 이른다.

이 법은 공직자 당사자는 물론 가족까지 규율하는 바, 그 가족의 범위를 정해야 했다.  배우자까지만 하느냐, 자녀들한테도 금품을 줄 수 있지 않나, 아니면 같은 집에 사는 처남한테도 금품을 줄 수 있지 않겠나 등 여러 우려가 있었다. 이에 따라 김영란 원안은 민법상 가족을 규율의 기준으로 삼았다. 남성 공직자의 경우, 부모, 자녀, 형제자매, 배우자 그리고 생계를 같이 하는 장인, 장모, 처남, 처제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이 경우 가족 수를 10명으로 따지면, 김영란법 대상자는 1570만 명에 이른다.

이 법은 이유 여하(직무대가성)를 막론하고 공직자 당사자는 물론 가족도 첫째, 금품 등을 수수 금지하며, 둘째, 부정청탁 받는 것을 금지하며, 셋째, 공직자가 이해충돌하는 직무수행을 방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재단법인 남해마늘연구소 행정실 직원인 A씨는 서울에 사는 여동생이 있다. 이 여동생이 남자친구에게 커플링을 선물로 받았다 치자. A가 사후에 이를 알게 되면 반드시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한 후 여동생에게 이를 반환하도록 요구하여 관철해야 한다. 반환이 아니 되면 2에서 5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받게 된다. 

 양천구 모 초등학교의 교사 B씨의 오빠가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원래 소유주가 그 초등학교의 학부모라면, B씨는 알게 된 즉시 그 부동산 거래 사실을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하고 오빠에게 부동산거래 취소를 요구해야 한다.


  혹자는 국회의원들이 김영란법의 위험성을 침소봉대 과장하여 국민을 불안케 하고 이를 기회로 도입 자체를 무산시키려 한다고 주장한다. 위와 같은 황당한 사례를 빼고 딱딱 국민적 공분을 사는 공직자의 부패만을 처벌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이라는 것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다. 또한 김영란법안 자체가 157만여명 공직자 및 그 10배에 달하는 가족을 규율하면서 직무관련성을 전혀 따지지 않은 채 처벌하겠다는 근본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위헌의 가능성이 높다. 단언컨대 명분은 한없이 높았으나 아무도 지키지 않았던 제2의 금주법이 될 것이다.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김영란법을 국회가 8개월 이상 심사조차 착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상당수 국민들의 삶과 직결된 법안을, 그것도 위헌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법안을 제대로 된 심사와 다양한 의견 수렴 없이 통과시키는 것은 오히려 국민과 사회에 누가 되는 일이다. 따라서, 6월 임시 국회에서 이 법의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과 여러 법률전문가를 모시고 공청회를 개최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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