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19대 국회, 이 법만은⑭-위안부 기림일법

[the300]종합

김태은 신현식 박소연 기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l 2016.04.21 09:24

편집자주 19대 국회가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머니투데이 더300과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는 우리의 실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법안임에도 우선순위에 밀리거나 이해충돌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법안들을 선정 '19대국회, 이 법만은' 시리즈를 런치리포트로 기획합니다.

'위안부 기림일법' 찬반논란속 폐기위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법안들이 19대 국회에서 폐기될 상황에 처했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합의'를 이뤄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국회에서는 정작 한일 외교 마찰을 우려해 피해자 관련 법안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 2월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매년 8월14일(김학순 할머니 최초 증언일)을 피해자 추모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의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박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8월14일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로 하고, 기림일로부터 1주간을 기림주간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개정안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단체의 국제적 활동에 대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내용도 담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가 사망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추도공간 설립 및 위령사업을 시행하도록 하고, 사료관·박물관 비용을 지원하도록 명시하도록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소관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에서는 야당 측이 지난해 6월과 11월 두 차례 이들 법안을 상정해 논의코자 했으나 정부여당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이들 법안에 대한 심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부여당 측은 현재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행사는 민간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 더 낫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야당측은 여당이 일본의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16일 열린 여성가족위 전체회의서는 유승희 여가위원장이 김희정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과 이 문제를 놓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유승희 위원장은 "어느 역대 대통령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박 대통령이 갖고 있다고 하니 기림일 지정을 왜 일본정부 눈치보며 미루는 이유가 뭔가. 앞뒤가 맞지 않지 않느냐"고 따져물었다.

이에 김 장관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고, 정부·여당을 향해 일본의 눈치를 보느냐 운운하는 것은 듣는 국민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지난해 말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만큼 19대 국회 남은 기간이나 20대 국회에서 위안부 기림일에 대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19대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할 마지막 기회인 4월 임시국회에서는 여야 간 무쟁점법안 위주로 처리될 가능성이 커 위안부 기림일법이 논의되기 힘든 상황이다.

여기에 야당 측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위안부 보상 문제에 대해 백지무효화를 주장하고 있어 새로운 갈등 국면에 들어섰다. 이종걸·유승희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해 12월31일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정부 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무효 확인 및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제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정부여당과 큰 시각차를 나타냈다.

결의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우리 정부가 빠른 시일 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죄와 법적 책임 인정 및 배상, 진상규명과 올바른 역사교육에 관하여 일본정부와 재협상을 개시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기림일법' 취지 공감하지만…비용·편익 따져봐야

'위안부 기림일법' 제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각종 기념일 난립에 대한 우려로 반대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정부 주관 기념일만 47일이다. 10월에만 11일의 기념일이 몰려있다.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제정과 관련, 취지는 공감하면서도 비용과 편익은 따져봐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나온다. 현행 법령상 기념일이 60여개나 난립해 추가 제정의 실효성이 크지 않은 반면 재정 부담은 크고, 민간단체의 기념 행사를 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논리다.

20일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정부에서 주관하는 기념일이 47개에 이른다. △납세자의 날 △상공의 날 △과학의 날 △정보통신의 날 △법의 날 등 3월부터 12월까지 매달 3일 이상의 기념일이 있다. 10월에는 1일 국군의 날부터 시작해 마지막 화요일 금융의 날까지 무려 11일에 달하는 기념일이 난립해있다.

이외에도 '가정의 날'(5월 15일) 등과 같이 소관부처의 개별 법령에 근거해 제정된 기념일도 21일이나 된다. 여기에 '광주광역시 광산구 한말 어등산 의병의 날에 관한 조례'에 근거한 '한말 어등산 의병의 날'(10월 25일)과 같이 지자체 조례를 통해 제정된 기념일까지 더해진다.

기념일이 이렇게 중구난방식이다보니 추가 제정에 따른 기념 효과가 높지 않고, 난립에 따른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다한 기념일 행사로 예산과 행정력이 낭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법정기념일의 지정은 역사적 의의 등을 고려하고 국민의 여론 수렴 등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돼야 할 사항이므로 불요불급한 기념일의 제정은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교부와 여성가족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시 성폭력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인권 수호에 관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현행 성폭력 추방주간에 민간 주도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매년 돌아오는 기념일 행사 예산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가 기념일 제정의 핵심 쟁점이다. 2014년 '4·3 희생자 추념일'과 관련해 당시 안전행정부와 제주 4·3 평화재단 사이에 재정 부담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2013년 이 행사에는 2억3000만원이 소요됐다. 주최측은 추념일이 정부 기념일로 격상된 만큼 행사를 확대, 7억원의 경비를 책정했다. 안행부는재단의 출연금으로 충당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재단 측은 국가 행사인만큼 정부가 지원해야 하고, 5·18민주화운동기념일에는 정부가 7억원을 지원하는 등 타 행사와의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최근 정부에서는 '예산 편성 지침'을 통해 각 부서의 행사비 최소화를 요구하고 있어 이 같은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한 번 제정한 기념일은 쉽사리 폐지할 수도 없다. 이슈화 되는 사안마다 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은 재정에 과다한 하중을 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현재 국회에는 기념일이 난립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 법률에 규정되지 않고는 국가기념일을 제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가기념일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률안은 대통령령과 개별법률을 통해 이미 제정된 66개의 기념일을 하나의 통합된 법률로 제정·관리하고 추가적 기념일 제정을 제한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2013년 법률안 발의 이후에만 이미 서해 수호의 날 등 2개의 기념일이 대통령령을 통해 추가 제정됐다.

김 의원은 "개별 법률에서 산발적으로 제정되고 있는 각종 기념일을 관리·제한해 국가기념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 25년의 싸움…'12·28 합의'에도 해결은 요원

한국과 일본이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 등을 논의한 22일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뒤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뉴스1


위안부 기림일 법안은 움직이는 이슈다. 한국과 일본 간 최대 외교 현안이 바로 위안부 문제이고 법안 논의 수위도 이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일간 위안부 문제는 지난해 '12·28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합의를 체결한 지 115일이 넘도록 위안부피해자 재단 등 후속조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소녀상 이전과 일본측의 끊임없는 역사왜곡 등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양국이 지난해 12월28일 체결한 위안부 합의안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표하고,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하는 재단에 10억엔을 출연키로 했다. 또 우리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과 관련, 관련단체와 협의해 적절한 해결을 위해 노력키로 했다.

 

양국은 이번 합의가 불가역적임을 확인하고,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상호비방을 삼가기로 뜻을 모았다. 

 

위안부 강제 동원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직접적인 표현이 포함됐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배상적 조치를 실시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합의가 과거에 비해진전을 이룬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합의 이후 소녀상 철거나 위안부 동원 강제성 인정 등과 관련한 일본측 태도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잇따르며 국내에서는 위안부 재합의 요구가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교도통신은 위안부 합의 직후 "(소녀상)철거를 자금 거출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아베 신조 수상의 '강한 의사'를 반영한 것"이라며 소녀상 철거가 위안부 합의의 조건이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합의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1월18일 일본 국회에서 "이번 합의에 의해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유형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또 다시 부인했다. 합의안에 '법적 책임'을 명시하지 않아 문제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본 측은 합의 이후에도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위안부 합의 55일만인 2월16일에는 스기야마신스케 외무성 외무심의관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로 직접 가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며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은 완전한 날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일본의 '물타기'에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정면대응하지 않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일 유엔 인권이사회 연설에서 북한 인권 문제만 집중 거론했을 뿐 위안부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방을 자제한다'는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의도지만 국내 비판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소녀상 이전과 관련 정부는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아안이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에서 지난달 24일 "정부에서도 소녀상 문제가 국내적으로 갖는 민감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경청해 나가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일본측은 위안부 소녀상 이전 문제를 위안부 합의 후속 조치와 연관시키는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지난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물으려는 청구인들을 배제한 채 일본 정부와 합의를 했고, 합의 내용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절차적 참여권과 알 권리를 침해했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리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5일 위안부 합의 100일을 맞은 정부 평가에서 "재단설립 등 준비를 착실히 진행 중"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 재단사업을 통해 합의의 기본원칙과 목표인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업이 회복되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재단설립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시한을 정하기보다는 합의 내용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충분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결성되고,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일본에게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받으려고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