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놓은 정부, 방관한 국회가 '살충제 계란' 불렀다

[the300][런치리포트-살충제 계란파동]①국감 지적에도 관련법안 국회 계류

우경희, 안재용 기자, 노규환 인턴기자 l 2017.08.16 15:19




"계란 안전관리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계란과 관련된 안전관리 수준을 한 단계 높이겠습니다."(2016년 10월 7일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손문기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불과 10개월여 전이다. 닭 진드기 제거를 위한 양계장의 살충제 사용과 이에 따른 계란 오염 위험성은 지난해 가을 이미 국정감사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정부는 계란의 안전관리 수준을 한단계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듬해 여름, 살충제 계란이 시중에 유통되기까지 정부도, 국회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작년 복지위서 이미 '살충제 계란' 지적 = 16일 국회 회의록 시스템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성북을)은 지난해 10월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의 복지위 국감에서 "축산 농가들이 (닭의) 진드기를 털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냥 농약을 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 의원은 당시 "선진국은 2012년부터 케이지(20x25cm) 방식을 전면적으로 다 폐기했는데 우리나라는 유럽에서 폐기한 케이지, 심지어 중국에서 폐기한 것까지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며 "그러니까 진드기를 털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암을 유발하는 살충제까지 혼합해서 막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계사를 다 비우고 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답답하니까 닭에다 (살충제를) 직접 뿌리는 데도 있는 것"이라며 "2개월에 한 번 씩 해야 하는데 여름 같은 경우에는 2개월이 아니라 2주에 한 번씩, 계사를 비우지도 않고 직접 닭들한테 뿌려대니 (닭이) 얼마나 오염돼 있는지, 그리고 계란이 얼마나 오염돼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지적에 당시 손문기 식품의약안전품처장은 "계란 안전관리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상위부서인 농림식품부의 실태조사는 상위부서인 농림식품부와 함께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생산 단계는 농림수산식품부 소관 사항이기 때문에 저희가 저 부분에 대해서는 21개 농장을 실태조사를 지금 하고 있다"고 답했다.

 

손 전 처장은 거듭되는 기 의원의 지적에 "동물용 의약품이나 농약에 대한 부분에서 저렇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시급하게 개선이 필요해서 계란 안전관리종합대책을 마련해서 추진하고 있다"며 "이제 막 시작을 해서 아직 구체적 실적들이 안 나오고 있지만, 완전히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으며 이번 기회에 계란과 관련된 안전관리 수준을 한 단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의 발언과 달리 체계적인 정부의 양계장 살충제 사용에 대한 대책은 제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피프로닐'에 대해서는 잔류농약검사권을 식약처가 가져가면서 사각시대가 발생했다. 결국 실제 살충제 계란 파동까지 이어지게 됐다.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윈회 전체회의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국내산 계란과 관련한 업무보고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2017.8.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회 관련 법안은 단 1건…'계류중' = 살충제 계란을 예견한 이는 기 의원 뿐이 아니다. 박인숙 바른정당 의원(서울 송파갑)은 지난해 말 '축산물위생관리법개정안'을 발의했다. 계란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위생관리 강화를 추진하는 법안으로는 유일하다. 정운천 바른정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가축전염병예방법개정안'에 계란 난좌 유통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AI(조류독감)에 대한 조치에 그쳤다.

 

박 의원은 "계란은 가정에서 직접 조리해 섭취하는 등 대다수 국민이 거의 매일 섭취하는 식품이지만 부패와 변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아 다른 식품과 비교할 때 생산 및 유통에 있어 보다 철저한 위생관리가 필요하다"며 "생산자가 출하 전에 지켜야 할 사항과 이를 점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법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계란 사태는 닭용 진드기 살충제에서 비롯됐다. 보다 빨리 계란 생산 과정에서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됐더라면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의원은 "법이 통과됐다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텐데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며 "법안이 통과되면 유통 과정에 대한 추적검사가 가능해지고 100%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만큼 빨리 통과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란의 생산관리와 유통에 관한 법안은 박 의원의 법안 외엔 찾아보기 어렵다. 19대 국회 당시 길정우 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식품위생법개정안'이 저질 계란 생산과 유통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역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폐기된 법은 저질 계란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구제의 폭을 넓히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어 이번 계란 파동을 보는 입맛을 더 쓰게 만든다.

 

그나마 19대 국회 당시 한선교 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특별법개정안'이 수정 가결된 게 최근 계란 관련 법안의 유일한 성과다. 다만 이는 어린이들이 계란이나 우유 등을 먹고 식품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도록 예방하는 내용의 법안이어서 사실상 불량 계란의 대량 유통 차단과는 거리가 있다.


기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주문했던 관리감독체계 일원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재정과 인력 등의 문제로 산란농가에 대해서는 농식품부, 유통과정에 대해서는 식약처가 감독하고 있는데 부서가 통합돼 있지 않다보니 비효율성과 중복성이 많다"고 비판했다. 이어 "제대로 된 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관리감독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했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처가 지난해 9~10월과 올해 4~5월 진행한 조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기 의원은 "두 번에 걸쳐 표본조사를 한 건데 해당 시기는 시원한 때라 진드기가 적기 때문에 살충제를 쓰지 않는다"며 "눈가리고 아웅식의 조사를 한 것으로 조사를 실시하려면 (더운 시기인) 7~8월에 진행했어야 했다"고 했다.

 

피프로닐과 비펜트린 사용의 법적 근거와 기준치에 대해서도 제도마련이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기준치(비펜트린 0.01mg, 피프로닐 0.02mg)는 개나 고양이에 적용되는 기준으로 계란에 적용되는 법적 기준 허용치가 아니다"라며 "지난해 해당 살충제의 합법적 기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16일 오전 서울 노원구 신계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이 메뉴에서 계란이 빠진 급식을 먹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국내산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과 '비펜트린' 성분이 검출돼 우려가 커지면서 전수조사가 완료되는 오는 17일까지 학교급식에서 달걀을 사용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2017.8.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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