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안철수와 유승민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8.01.31 04:30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추진위원회 제1차 확대회의에서 유승민, 안철수 양당 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유승민은 자신의 연설문을 직접 쓴다. 이런 정치인은 몇 안 된다. 자신만의 철학, 자신만의 언어가 있어야 가능하다. 학자 출신인 그도 쉽지 않았다. 2002년 2월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정치에 발을 내딛기 전까지 연설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는 자서전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이렇게 썼다.

“연설문이라는 것도 처음 써보게 됐다. 그것도 나의 연설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읽는 연설문이었으니 처음엔 이런 걸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 연설문중 가장 어려웠던 일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문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이회창 총재와 박근혜 대표를 위해 대표 연설문을 쓰기도 했는데 여러 날 밤을 지새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 훗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돼 2015년 4월 8일 내 연설을 내 손으로 직접 쓸 때는 마음이 훨씬 편했다”

그가 마음 편히 쓴 글은 명연설로 남았다. 박근혜가 유승민에게 ‘배신’을 붙이게 된 시작점도 이 연설이었다. 3개월 뒤 그는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으며…’라는 글을 쓴다.

이런 유승민이 안철수와 '살림'을 차린다. 둘 다 '이혼'을 전제로 한 결혼이다. 당장 눈길은 안철수의 이혼에 쏠린다. 다른 이유는 없다. 더 시끄러워서다. 박지원·정동영·천정배 등 반대파가 딴살림을 먼저 차리겠다고 소리치니 안철수는 체면을 구겼다. ‘당원권 정지’라는 카드도 이전투구의 진흙 한 줌일 뿐이다. 반면 유승민은 이혼이라기보다 버려진 이미지를 챙겼다. 리더십, 포용력이 단점으로 지적되지만 상대적으로 소신, 원칙을 남겼다. 오히려 몸은 한결 가벼워졌다.

둘의 행보, 말과 글은 비슷한 듯 다르다. 안철수의 언어는 테제(these, 정립)보다 안티테제(Antithese, 반정립)에 가깝다. 상대가 있어야 존립 가능하다. 그는 불통의 MB 반대편에서 소통의 대명사가 됐다. ‘文 패권’의 프레임 속 차별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테제’의 바닥이 확인됐다. 그가 다시 꺼낸 카드는 호남 기득권의 반대다. 그의 연설은 양극단 반대, 좌우 반대의 되풀이다. 간판은 중도다. A와 B의 편이 아닌 이들은 다 자신의 편이다. 그들이 C건, X건, Y건 중요치 않다. 그렇게 만났다 헤어진다.

유승민은 다르다. 그는 ‘테제’를 말한다. 진영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자신의 진영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보수를 강조한다. 유승민의 바른정당 대표 수락연설을 보자. “18년전 저는 보수당 당원이 됐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보수당의 대표로 보아주셨습니다. 가짜 보수당 대표가 아니라 진짜 보수당 대표로 뽑아 주셨습니다.” 보수가 궤멸된 시점, 보수를 내건다. 자유한국당이 보수보다 우파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것과 차별화된다.(어찌보면 한국당도 좌파의 ‘안티테제’ 장사에 빠져 있다)

보수를 전면에 내세운 유승민은 중도를 타깃으로 삼았다. 보수를 간직하고 가짜 보수를 설득하러 간 이들과 다른 선택이다. 선택에 따른 책임은 그의 몫이다. 유승민은 안철수의 손을 잡은 곳이 어딘지 안다. 반대로 중원 어딘가를 찾는 안철수는 유승민을 만난 곳이 중도인지, 아니면 또다른 중도가 있는지 그 자신도 모른다. ‘극중’을 찾는 과정을 그는 또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안철수는 ‘not 유승민’을 할 지 모른다.

안철수는 새정치를 묻는 질문처럼, 정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거다. 아니 국민은 더 이상 묻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유승민은 국민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짜 보수가 누군지 택해 달라고. 질문 받지 못할 남자, 말을 거는 남자. 성공과 무관하게 기회는 후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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