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안희정, '미투(me, too)'

[the300]

김태은 기자 l 2018.03.13 05:33
비서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검에 자진출석해 심경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지난해 초 안희정에게 쏟아지던 애정의 눈빛들이 떠오른다. 안희정이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지지자들은 조용하면서도 격렬히 안희정을 응원했다. 언젠가 그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믿으며 지지했다. 자신의 생업을 팽개치고 안희정을 돕겠다는 이들도 적잖았다.

 

당시 안희정 캠프 관계자는 “안 지사의 지지율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안 지사를 돕겠다고 캠프로 찾아오는 자원 봉사자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애처로움, 안타까움 등의 감정과 정치적 지지가 맞물린 자발적 움직임이었다.

 

어찌보면 안희정만은 아닐 거다. 정치인을 향한 지지가 그렇다. 인간적 매력에 끌려 호감과 애정을 느끼다 한발 더 간다. 공적 헌신과 공동체적 가치 달성을 꿈꾼다. 한사람의 정치인을 지지하는 행위일지라도 이를 통해 사회,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일체감을 갖는다. 이게 대중 정치인이 갖는 힘의 원천이다.

 

안희정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김지은씨에게 안희정은 상사이기 이전에 자신이 지지하고 헌신하고자 했던 정치인이었다. 충남도청이든,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든, 안희정 주변의 상당수는 안희정을 위해 일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던 이들이다. 오랜 기간 안희정과 정치 행보를 함께 해온 측근들은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만 반복한다. 언젠가 통합이란 가치로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 믿어왔기에 안희정에 대한 이들의 상실감과 배신감 또한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정치인을 향하는 국민들의 지지가 정치인 개인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정치인의 비극은 시작된다. 안희정의 지지자들, 아니 '옛 지지자들' 역시 상실감과 배신감을 호소한다. 지지자들이 아니더라도 정치인 안희정에 줬던 신뢰를 도둑맞았다며 충격과 실망을 외친다. 안희정의 행위에 분노하고 그의 잘못으로 훼손된 가치에 안타까워한다. 이런 국민들의 ‘미투’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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