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병준 "국민이 묻고있다, 너희는 왜 존재하느냐고"

[the300]한국당 새 혁신비대위원장 "자르고 버리지 못할 바에야 새것을 세워 덮어야"

우경희, 김하늬, 김민우 기자 l 2018.07.17 15:57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인된 김병준 명예교수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차 전국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에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른다'고.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에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추구하는 가치는 뭐냐'고."

난파 직전 자유한국당의 키를 잡은 김병준 혁신비대위원장은 보수 몰락의 원인을 '가치상실'에서 찾았다. 보수의 전통적 가치였던 안보와 평화의 가치를 진보진영에 온통 뺏기고 벼랑까지 몰렸다. 해법은 당연히 가치회복이다. 치열한 계파갈등은 새로운 가치를 세워야만 아우를 수 있다고 했다. "자르지 못하고 버리지 못할 바에는 새로운 것을 세워 덮어야 한다"는 거다.

지난 3일 김 위원장을 만났다. 복수의 후보를 놓고 하마평이 난무하던 시점이다. 김 위원장은 "나도, 노무현도 시장자본주의자였고,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이 달랐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동반성장과 상생 등 노무현정부에서 만든 가치를 계승했지만 체화하지는 못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소득주도성장의 모순 등 파열음이 난다는 지적이다. 한국당으로부터 공식 영입 제의를 받기 전이었지만 구체적인 시간표가 붙은 당 재건계획도 갖고 있었다.

-한국당, 어쩌다 이리 됐나.
▶민주당이나 소위 진보는 가치를 쥐고 있다. 상생, 인권, 평화, 환경 등이다. 반면 보수나 한국당은 도대체 뭘 쥐고 있나. 안보라는 가치 하나 쥐고 있었는데 안보의 궁극적 목표는 평화다 .이것도 무너졌다. 민주당에 뺏겼다. 

민주당이 지금 주장하는 가치들을 언제부터 갖고 있었나. DJ(김대중 전 대통령)때? 아니다. DJ는 민주화다. 저런 가치는 노무현 정부때 만들었다. 지금 문재인정부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만드는데 얼마나 기여했을까. 그 가치를 만든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따로 있다. 

문재인정부는 이 가치의 원조가 어디고 어디서 나와 발전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실현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결국 수입해다 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든지 주 52시간 근로제도가 모두 유럽사회에서 쓰인거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와 조건이 다르다. 가치를 실현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정부의 실책을 지적할 줄 모른다. 

-견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건가.
▶견제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해야 한다. 최저임금 정책이 정말 맞나. 소득주도성장이 맞나. 유럽에선 작동했지만 우리같은 수출주도국가에서, 게다가 임금을 지불해야 할 자영업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서 이게 과연 맞는 정책일까. 자영업자를 줄이는 산업정책이 같이 나와줘야 한다고 지적해야 한다. 그런 야당이 없다. 건전한 야당을 키워야 한다. 답답한 시절이다. 

-비대위원장이 공천권을 쥐지 못해 힘이 실리지 않을거라는 지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당협위원장 사표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 하더라도 다음 당대표가 와서 새로 공천해 버리면 그만이다. 비대위원장은 누가 되든 오로지 개인기다. 나는 그 개인기를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정립하는 것이라고 본다. 앞서 말한 민주당과 진보세력이 갖고있는 가치에 대응하는, 역사의 순리에 맞는 가치를 세우는 거다. 한국당에 계파싸움이 치열한데, 당장 치거나 자를 수 없다. 친박(친박근혜계)을 다 들어내면 한국당이 잘 되나, 그럼 비박(비박근혜계)을 다 들어내면 한국당이 잘 되나. 절대 아니다. 문제는 따로 있다.

-가치의 상실을 말씀하시나.
▶한국당은 미래지향적인 정당이 아니다.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있는 정당이 아니다. 왜냐고. 국민들이 한국당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자고 하는지 모른다. 깃발이 선명해서 '저 깃발을 따라가면 대충 어디로 가는구나'라는 짐작이 돼야 하는데 모른다. 더더욱 문제는 박근혜 깃발을 따라갔다가 완전히 망했다. 국민들이 다시 묻고있다. "너희 깃발의 색은 무엇이고, 너희가 말하는 가치는 뭐냐"고.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인된 김병준 명예교수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차 전국위원회에 참석해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비대위를 맡으면 어떻게 가치를 주입할 계획인가.
▶플랜을 짜라고 하면 짤 수 있다. 7~8월 두 달의 시간을 모두 들여 국회의원들과 '어떤 가치와 어떤 컨셉으로, 어떤 원칙을 갖고 임할 것인가'를 얘기해야 한다. 그 속에서 당의 정체성과 새로 추구하는 가치가 나와야 한다. 국민들이 봤을때 '한국당이 저쪽 방향으로 가는구나'를 알수 있도록 기준을 세우고 9월 정기국회에 임해야 한다. 

입법과 예산을 짜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봤을때 저 당이 추구하는게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정기국회에 들어가고 나면 비대위원장은 밑바닥을 다 훑어야 한다. 당원들과 1대1 토론을 하듯 전국을 돌면서 새로운 가치를 알려야 한다. 그 가치를 따라오면 역사에 뒤쳐진 당이 아니라 오히려 앞서가는 당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해야 한다. 그렇게 당원들이 따라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새로운 가치가 뭘까.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국가와 시장의 관계에 대해 개념 정의가 안 돼 있다. 보수 진영을 보면 여전히 박정희 성공신화에 취한 보수가 많다. 국가가 엄청난 권력으로 곳곳에 개입하고, '나를 따르라'를 외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한국당 내 자유시장주의자들이 많다. 국가기획주의와 정반대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국가기획론자, 자유시장론자, 공동체주의자가 다 섞여있다. 감찰기구와 감사기구를 중심으로 국가권력을 강화해서 적폐를 청산한다는 문재인 정부도 국가주도적이다. 

 나는 자유시장주의자, 시장자본주의자다. 나 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비슷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히려 다르다. 소위 노무현 우파가 있고 노무현 좌파가 있는데 난 노무현 우파고 그쪽은 노무현 좌파다. 그들은 다 FTA(자유무역협정) 반대하고, 제주 해군기지 반대하고, 서비스산업 육성을 반대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장경제중심이다. 

시장과 공동체의 자율이 우선이고 거기서 문제가 생기는걸 국가가 보충해줘야 한다. 이게 미래 가치, 미래 체제다. 

-밖에서 본 한국당은 어떤가.
▶한편으로 보면 한국당 의원들이 의리가 있다. 누가 나한테 공천을 줬는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이념과 가치보다 그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바꿔야 한다. 그걸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당의 새 리더십이 되는거다. 

당 내에서도 나에 대한 반대가 많다는걸 안다. 우려를 전하는 현역 의원에게 말했다. "도대체 당이 지금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냐. 당을 어떻게 살려야 하느냐"고. 내가 당에 오면 당이 너무 '좌향좌'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한다는데 좌우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공천권을 가져도 안 된다. 공천권을 가지면 내가 오히려 (정치적으로) 죽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이 쪼개져 있다. 자르지 못하고 버리지 못할 바에는 새로운 것을 세워 덮어야 한다. 근데 이게 잘 덮어질지 걱정이 태산이다.

-서울시장 불출마를 후회한 적 없나.
▶내게 필요한 것은 권력이나 자리가 아니고 마이크다. 우리 사회의 담론구조를 바꾸면서 세상을 바꾸는 거다. 지방선거땐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이 있어야 왜 마이크를 쥐었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나는 행정수도 이전을 주장한 사람이다. 서울시의 가장 중요한 이슈다. 여기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김병준은 명분을 설명하고 당은 정체성을 확립했어야 한다. 

비대위원장이 되면 당 내의 이야기를 당 밖으로 얘기할거다. 사람을 자르고 안 자르고는 그 다음 이야기다.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는게 중요하다. 권력의 칼로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지났다. 세상을 바꾸려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담론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민주당은 어떻게 흘러갈까.
▶친문(친문재인) 세력은 친문공천을 할 것이고, 갈등이 빚어질거다. 그 과정에서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분열구조가 생긴다. 한국당이 계속 지리멸렬하면 그 정치공간을 민주당 내 우파가 차지할거다. 영남권 중심 민주당 세력이 떨어져나오면서 상당히 큰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으면 그 때는 한국당의 존재는 없어진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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