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보증금제, 좋은 취지에도 '복잡'…소비·생산·유통 '고차방정식'

[the300][이주의법안]②소비자 불편·생산자 이윤감소 종합적 검토 필요

안재용 기자 l 2018.12.21 04:02

페트병(PET)과 캔에도 소주병과 맥주병처럼 보증금 제도를 도입, 회수율을 높이고 재활용을 확대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행은 간단치 않다. 소비자와 식음료 생산자, 재활용 업자, 유통업자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페트병과 캔에 보증금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내용은 간단하고 목적은 명확하다. 다만 그 시행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장벽은 빈페트병과 캔 회수체계의 설계다. 현재 빈페트병과 캔은 재활용업자들이 회수하고 있다. 사람들이 재활용 가능 폐기물을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배출하면 재활용 업자들이 이를 회수하여 재가공하는 형태다. 보증금 제도가 도입되면 현재와 같은 체계는 유지할 수 없다.

페트병과 캔에 보증금이 포함된 독일 등 유럽에서는 슈퍼마켓 등 일정 위치에 회수기를 설치해 회수하고 있다. 병당 0.25유로(약 321원)의 보증금이 포함된 독일에서는 음료수값 중 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반환하지 않았을 경우 소비자의 부담이 큰 만큼 자발적인 회수체계가 정착됐다.

문제는 유럽과 같은 체계를 당장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재활용업자들이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다. 재활용 폐기물을 처리해주는 댓가로 소득을 올리고 있는 업자들의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회수기의 설치도 간단하지 않다. 현재 맥주병과 소주병 등 유리병의 회수를 담당하는 대형마트와 편의점, 요식업소 등에서는 공병 회수 업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수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업무가 상당하다는 것. 페트병과 캔의 수량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현재 공병회수를 담당하는 유통업체에 맡기기에는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가 정책이고 오랜 관행이었던 만큼 공병회수를 담당하고 있긴 하지만 큰 수입이 되고 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며 "슈퍼마켓 등에 회수기를 설치하는 것은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음료수를 생산하는 기업들도 당장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보증금의 성격상 전액 음료수가에 포함될 수밖에 없고, 원하지 않게 가격이 인상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 음료수값 인상으로 판매량이 줄어드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한 식음료업계 관계자는 "독일에서는 병당 320원 가량의 보증금이 포함되고 우리나라에 적용된다면 소비자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국가정책에 따라 시행되는 경우 따르겠지만 보증금이 100원 이상인 경우에는 기업으로서도 부담이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법안의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보증금 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소비자 수용성, 재활용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해야한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럽에서 페트병과 캔에 보증금을 부과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현재 어느정도 재활용품 회수 체계가 갖춰진 상태이고 소비자들의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방안 또한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내부적 검토와 동시에 관계부처, 이해관계자간의 협의도 필요한 단계다"라고 말했다.

이에 유 의원은 보증금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공청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재활용율을 높이는 취지를 살리면서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것. 다음달 8일 관련 이해관계자들과 공청회를 연다.

유 의원실 관계자는 "유럽에서 재활용율을 높이며 앞서가고 있는 상황이나 우리나라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재활용업자, 소비자단체, 관련 업계 등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