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도 설치된 X-레이, 한의사는 못 쓴다?

[the300]['의료기기' 못쓰는 한의사 ] (종합)

김세관 이현수 배소진 기자,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 l 2014.10.31 13:56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A원장은 최근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얼마 전 내원해 발목 치료를 받고 있는 40대 환자가 병가 처리를 위해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며 X-레이(X-Ray) 등의 검사기록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 환자는 아파트 계단에서 크게 접질려 한의원을 찾았고 침 치료를 받아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A원장은 한의원에선 X-레이 검사를 할 수 없으니 양방의원을 방문해 별도의 비용을 내고 검사를 받으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 나은 상태의 X-레이를 회사에 제출하면 아팠는지 여부를 회사가 알 수 없지 않느냐고 환자가 불평했지만 A원장도 어쩔 수 없었다.

◇법적 제한 없지만 의료기기 사용 못하는 한의사

한의사는 법으로 인정받는 의료행위자이고 국가가 인정한 면허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X-레이, 초음파는 물론 혈액검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방의료기관이나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의료법'이나 '의료기기법' 어디에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제한한다'는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원장처럼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잇따른 고소고발 때문이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두고 대한의사협회나 양방 의원 등이 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어 부담을 느낀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의 법원 판결도 한의업계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제한 분위기는 환자들이 원하는 치료를 받고자 하는 권리를 제한할 요인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양방 측의 반발에 밀려 이슈가 금방 묻혀버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한의사의 안압측정기 사용이 합법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헌재는 의료기기로 눈질환을 진료한 혐의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한의사 하모씨 등 2명이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처분 취소를 결정했다. 수많은 의료기기 중 최소한 안압측정기에 대해서는 한의사들도 사용할 수 있는 법적인 조치가 마련됐다.

◇국회도 공감은 하지만…"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국회에서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한의학의 과학화를 위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복지부의 입장 정리를 요구했다.  

같은 당 최동익 의원도 "한의사들의 진단 과학화를 위해서는 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은 서면질의를 통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여부를 질의했다.

앞서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3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등을 포함한 한방의료행위의 독자성을 법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한의약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법에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제한이 명시돼 있지 않고 헌재의 결정으로 사실상 안압측정기 사용은 허용이 된 만큼 법 개정이 아닌 복지부의 지침 마련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복지위 의원들의 '공개적' 입장이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하다. 양방 의사업계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의 등 직능 단체 간 싸움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누구도 선뜻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려 하지 못하고 있는 것. 

복지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내부적으로 규칙이나 지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괜히 나서서 건드려 '벌집'을 쑤실 필요가 없다"며 "정부가 안을 내 놓으면 진지하게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눈치보기 "직능 간 갈등 여지 있어, 접근 조심스럽다"

복지부는 현재 한의사가 쓸 수 있는 의료기기의 사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앞서 헌재는 한의사도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등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리며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한의대 교과과정 추가 △자동으로 결과가 도출되는 의료기기 △고도의 전문가가 아니어도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복지부는 이를 수용해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둘 수 있을지에 대해 검토 중이다. 그러나 단기간 내 결론이 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우선 개선안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공표하기 위해서는 한의사 업계 뿐 아니라 의료계와도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의사 "환자 진단위해" VS 양의사 "전문성 없다"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에 대해 한의사협회는 "환자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 의료기기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사협회는 "진단에 사용되는 기기 사용에도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30일 국회에 따르면 현행 의료법 37조가 규정한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설치 및 운영 주체에서 한의사는 배제돼있다. 의료법 38조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인정 기준에도 영상의학과 전문의와 방사선사만 명시했다.

이에 따라 현재 골밀도측정기, 안압검사기, 청력검사기를 사용한 다수 한방의료기관이 피고발돼 있다. 한의사가 환자 진단시 엑스레이, 혈액측정기 등을 사용하면 불법이 되는 것인데, 특히 혈액측정기는 개인이 집에서 자가로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라는 점에서 논란이 돼왔다.

◇한의사 "정확한 진단위해 필요…한의사들도 교육받아"
한의사협회는 진단 의료기기 사용이 제한돼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의료법에선 한의사 진단서 발행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나 명확하고 객관적인 진단서 발행이 곤란하고, 과학적 규명 역시 충분히 하지 못한다는 토로다.

전문성 문제에 대해선 한의사들도 현대의료장비 교육을 받는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한의사는 한의과대학 및 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 현대의료장비에 대한 1164시간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김우석 한의사협회 사무총장은 "환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위해 한의사들도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양의사들은 자신들의 영역이 침범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국민 건강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의사 "기기사용 전문성 차이…환자에게 영향"
대한의사협회는 현대의료 전문성을 갖춘 의사만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의사협회와 똑같이 '국민 건강'을 목적으로 내놓았지만, 이를 위해선 사용 주체가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한의사의 안압측정기 사용을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정하자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의료기기를 사용해 정확한 진단을 하기 위해, 안과 전문의들은 의과대학 졸업 후 수년간 수련과정을 이수해야 한다"며 "검사결과가 의료기기에서 자동으로 출력된다고 해서 전문적 식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오윤수 대한의사협회 국장은 "한의학과 양의학은 학문적 출발과 배경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의료기기를 한의학 진료시 이용하는 것은 업무 범위를 벗어난 행태이고, 업무 범위를 따지기 이전 그러한 행위들이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밝혔다.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금지…중국·대만·일본은? 


 
 
한의학계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사실상 막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 대만, 일본 등은 제한적으로나마 전통의학계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또 이를 통해 전통의학의 '과학화'와 '세계화'를 추구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중국은 서양의사와 중의사가 다른 분야의 의학전문지식과 의료기기 등을 아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양쪽의 교류를 권장하고 있다.

특히 헌법에 전통의학차별금지조항을 명시하고 정부 차원에서 전통의학의 확산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의학과 같은 전통의학인 '중의학'을 자국의 전통문화유산이자 근대화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 내 중의학은 서양의학과 함께 제도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의사와 (서)의사 외 '중서결합의사'라는 별도의 의료인력 면허제도도 마련,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의학과 서양의학의 결합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중의학의 현대화·과학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토록 한다는 전략이다.

중의병원의 범주에 포함되는 중서의결합병원의 수요와 공급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종합병원 규모인 3급 중서의결합병원에는 기본 12개 이상의 임상진료과가 개설되는데 이 중 최소 3과목은 중서의결합의료를 활용해 진료 및 치료해야 하는 중점전문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 

대만은 동북아시아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다. 면허나 교육, 업무 등이 중의사와 서의사로 이원화돼 있다. 복수전공을 통해 이중면허를 가졌다 해도 중의사와 (서)의사 중 하나를 선택해 의료업무를 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완전 폐쇄적인 이원화 구조가 아니라 예외규정을 둬 유연하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의사법에서 규정한 '의사'도 (서)의사 뿐 아니라 중의사까지 포괄한다. 의사와 한의사를 완전히 구분하는 우리나라의 현행 법 체계와는 크게 다르다.

대만의 의사들은 졸업 후 교육을 통해 상대의 일부 의료행위에 대한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예컨대 (서)의사와 치과의사의 경우 192시간 가량의 침구훈련을 거치면 중의사가 하는 침구시술을 할 수 있다.

중의사에게는 원칙적으로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행정원위생서 '의료기관설치표준' 개정안 등에 따라 중의사에게 제한적으로 X-레이(X-ray)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한약치료의 혈당정상화 효과 등을 확인하기 위해 혈액검사장비를 활용하거나 초음파영상진단장비를 침구시술에 이용하기도 한다.

반면 일본은 화의학이라 불리는 전통의학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공식적인 의료체계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일원화된 의료체계 속에 전통의학을 병용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의과대학에서 전통의학을 교육하고 일정 자격요건을 갖춘 전문의에게 '한방전문의' 자격을 부여해 전통의학 시술이 가능하도록 하는 식이다. 

이에 따라 한방전문의들이라 해도 이미 서양의학 전문의 자격을 갖춘 상태라는 점에서 당연히 현대의료기기 사용에도 제한이 없다.

한편 일본동양의학회는 한방의학의 과학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 중 하나가 2000년대 들어 주력하는 '근거중심의학' 추구다. 현대의학 각 과에 대한 질병치료 인식을 한방의학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은 특히 한방의학에서 주로 활용되는 약물요법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임상실험을 바탕으로 한방의약품의 과학화와 표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고품질 한약제제 개발 및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공식적인 의료체계에서는 제외됐지만 일본의 한방제제 생산기술은 현재 세계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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