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아는 '벤처 대부' 전하진…그가 꿈꾸는 'K밸리'

[the300]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

이현수 기자 l 2015.08.04 05:47

편집자주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네띠앙 실패로 모든 재산을 날렸다. 월세방으로 이사를 했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기도 했으며 사기꾼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했다. 사기라는 것이 원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어렵고 힘든 자들이 더 쉽게 당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악순환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욱 더 힘들게 된다."(세라형 인재가 미래를 지배한다, 2012. 전하진)

최고경영자(CEO)에서 빈털터리로, 빚더미 백수에서 다시 국회의원이 된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57). 지나간 날들이라 담담하게 풀어놓지만, 그의 삶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벤처 1세대'인 그는 98년 부도위기에 내몰렸던 한글과컴퓨터의 대표를 맡아 회사를 살리면서 수백억원대 부자가 됐다. 그해 말 4000원에 불과했던 한컴 주가는 1년여만에 5만3000원으로 폭등했고, 스톡옵션 100만주를 받은 전 대표는 소유 자산가치만 580억원에 이르는 갑부가 됐다.

전하진 의원(왼쪽 네번째)의 한글과컴퓨터 대표 시절 모습.

추락은 한순간. 닷컴 열풍이 꺼진 2001년 그는 한컴의 자회사인 포털사이트 네띠앙으로 자리를 옮겼고, 경영 악화를 겪으면서 2003년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스톡옵션으로 번 돈을 투자해 네띠앙의 대주주가 된 것이 화근이었다. 대규모 감자로 전 대표의 지분은 15%에서 1%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혹독한 어려움 속에서도 상황 상황을 다 배움의 시간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였다. 오히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료 벤처기업가들을 위한 제언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만약 내면으로부터 '실패한 놈이, 돈도 없는 놈이 뭐 잘 났다고. 가만히 앉아 실패나 가슴아파하면서 술이나 먹고 신세 한탄이나 하지'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19대 국회에선 '실패가 무엇인지 아는' 업계 대부로서 벤처산업 부흥을 이끌고 있다. 이미 국회를 통과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개정안 △창업보육센터 지방세 면제 골자로 한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 △특허법 개정안이 그의 작품이다. 지금은 한국형 실리콘밸리, 'K밸리'를 만드는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사진=뉴스1



[키워드→벤처1세대]
전 의원은 85년 대학졸업 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에 입사했다. 회사 컴퓨터사업부의 시스템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일본 벤처 다이낙스사에서 1년간 기술연수를 받은 게 따지고 보면 벤처인생의 시작점이었다.

나이 서른이던 88년 100만원을 들고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픽셀시스템을 창업했다. 마흔을 앞둔 97년엔 미국 실리콘밸리에 소프트웨어 마케팅 벤처인 '지오이월드'를 설립했다. 같은 기술이라도 '큰 시장'에서 사업을 해야 기술변화에 대응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얼마 되지 않아 우리나라에 닥친 외환위기는 기회가 됐다. 전 의원은 "우리 사회가 망연자실해 있을 때 조그마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해외 수출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설립한 지 두 달된 지오이월드를 아내에게 맡기고 귀국, 한컴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이후 상황은 앞서 말한 대로다.

[왜 새누리당인가]
전 의원은 새누리당의 전략공천으로 국회에 들어왔다. 19대 국회 총선을 앞두고 이공계 출신, 과학기술인을 후보 선정에서 배려하겠다는 게 여당의 방침이었다. 박근혜 당시 중앙선대위원장은 총선 지원유세에서 전 의원을 가리켜 "청년창업 활성화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어서 공천한 분"이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국회 입성 후 공천제의를 받아들인 이유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나의 모습들이 이제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고 판단됐는지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출마 제의가 있었다. …세 번의 고사 끝에 평소에 생각하던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주어진 기회를 감사히 받자는 뜻으로 출마를 하게 됐다. 후보 등록 일주일 전에 공천이 된 상황이라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돈도, 도와줄 스태프도...정당 활동을 해봤을 리 없으니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가 홈페이지에 쓴 '새누리당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야당색이 짙은 벤처업계에서 품었을만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새누리당을 선택한 이유
오늘 출근길에 페북친구 한 분을 만났다. 새누리당을 무지 싫어했는데 왜 거길 갔냐고.. 사실 젊은 분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어떤 젊은이는 '에이 재수없어' 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분도 계셨다. 얼마나 싫었으면...

하지만 나의 선택은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첫째는 정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적어도 나같은 초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라도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랑 생각은 다르지만 내 친구인 유종일 교수같은 분은 적어도 상대당에서 귀하게 활용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공천도 못 받는 신세가 되었다.


[SERA형 인재]
전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직전 세라(SERA) 인재개발원 대표를 지냈다. SERA는 △의미있는 삶(Story) △공감(Empathy) △탄력(Resilience) △성취(Achievement)의 약어다.

전 의원은 "특정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닌,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기 때문에 공부를 해온 인재가 SERA형 인재"라고 말했다. 또 SERA형 인재를 키워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왜 사는가' 등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의 자녀교육의 철칙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은 것'이다. 경험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기도 하다.

"자녀들을 믿으세요.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놔두세요. 공부만 잘한다고 인생이 만사형통인 게 아닙니다. 컴퓨터에 빠진 자녀 중에서 '제2의 빌 게이츠'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실망할 것도 없어요. 자녀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살면 그만이니까요. 구두 닦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듯. 우리 자녀들은 남에게 보여 지는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여성동아, 2000년 11월)

전 의원 자신도 그렇게 자랐다. "부모님이 '공부하라'는 소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지원하고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아버지는 전문대 입학원서를 사오셨습니다. 떨어지면 전문대학 가고, 그 실력도 안 되면 공장에 취직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대학을 다니든 공장을 다니든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하셨죠."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창조경제 특별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스1


[대표법안]
전 의원이 2013년4월 발의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전력거래'를 골자로 한다. 아낀 전기를 팔고, 모자란 전기는 사는 '전력 수요자원 거래시장' 개설 근거를 담은 게 핵심이다. 개정안은 1년 뒤인 2014년4월 국회를 통과했다.

전 의원은 "전력 수요시장이 만들어져 2017년엔 LNG 발전기 4기에 해당하는 약 190만kW 전력이 확보될 것"이라며 "추가적인 발전기 건설 없이도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전용 증권시장인 '코넥스(konex)'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한 '중소기업창업지원법(창업지원법)' 개정안도 주목받는다. 2013년12월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중소기업창업투자조합(창투조합)의 '상장주식 투자한도 산정대상'에서 '코넥스에 투자한 경우'를 제외토록 했다. 개정 전 창업지원법은 창투조합의 증권시장 상장 주식에 대한 투자금액을 출자금 총액의 20%로 제한했는데, 이 때문에 창투사의 신규투자가 제한됐었다.

두 법안은 각각 올 1월과 7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선정한 제1,2회 '대한민국 최우수 법률상'으로 뽑혔다. 여야 의원중 2회 연속 수상은 전 의원과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두사람 뿐이다.

[K밸리]
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도 분당 을에 한국형 실리콘밸리인 'K밸리'를 만들고 있다.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K밸리 전도는 그의 꿈이 꿈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K밸리 전도


경기도 분당과 판교에 성공한 기업들이 몰려있지만, 정작 일할 사람이 없다는 우려에서 K밸리 구상은 시작됐다.


K밸리 내 50개 회원사의 총 매출은 연 60조원, 일자리 창출은 8만명에 달한다. 주변 19개 대학과 연구소, 창업기업, 기존 시장선도기업, 정부, 국회를 연결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자는 게 전 의원의 주장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K밸리포럼'이 2013년 출범한 데 이어 엔진역할을 하는 전문가그룹 'Bfab'도 최근 구성됐다.

"K밸리가 추구하는 문화는 창조문화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피라미드 구조의 권위적 문화가 타파 되고 어떤 의견도 자유스럽게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고 그것을 받아 줄 수 있는 문화다. 사람을 만나면 먼저 명함을 건네고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려주고 서로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바로 소통하는 문화다."


"또한 다양성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다. 의사와 교수와 학생과 정치인 그리고 지역 주민이 거리낌 없이 서로 뒤섞일 수 있는 문화다. 설사 엉뚱한 주장을 해도 다름으로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문화 없는 창조단지는 허구일 수밖에 없다. 그저 광장에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사람이 모여 있다고 창조적이라 이야기 하지 않는 것처럼."

[이 사람의 한마디]
"행복은 주워담는 게 아니야. 행복은 가슴에서 솟구치는 것"

"스토리(Story)가 있는 사람은 인간적 향기가 있다. 스펙에 의존하는 자는 공산품에 불과하다. 좌절과 난관 등 자신의 모든 것은 스토리의 소재가 된다. 스펙처럼 규격에 미달해 불량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사람들]
전 의원은 2005년 산악인 엄홍길씨와 함께 히말라야를 등정했다. 당시 함께했던 멤버는 박범신 작가, 한철호 밀레 대표,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양종훈 상명대 교수 등이다.

전 의원은 "엄홍길 대장을 비롯한 훌륭한 멤버들과 함께였다는 것이 큰 힘이 됐다. 하지만 등산은 어차피 내 몸으로 하는 것이기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마음에 새기고 되뇌던 생각이 '한 발을 대디딜 수 있으면 언젠가는 정상에 오를 수 있다'였다. 정상은 잊고 지금 한 발을 내디딜 힘이 있는가 만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라이프→베이스기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 2학년까지 기타를 쳤다. 대학 땐 인하대 인드키(INDKY) 그룹에서 베이스로 활동하기도 했다. 스무살땐 베이스기타를 메고 해변가요제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전 의원은 2013년엔 tvN 공익 버라이어티 '투게더' 녹화에서 대학시절 인드키 멤버들과 함께 나눔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영상! TV광고 모델]
전 의원은 한컴 대표시절 현대자동차 트라제XG의 광고모델로 등장해 화제가됐다. 그는 광고 출연료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프로필]
△서울(57) △서라벌고-인하대 산업공학과-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사 △픽셀시스템 창업 △레가시 설립 △지오이월드 설립 △한글과컴퓨터 대표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네띠앙 대표 △한민족글로벌벤처네트워크 INKE 의장 △본웨이브 대표 △제19대 국회의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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