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국회는 놀고먹지 않는다

[the300]

이현수 기자 l 2015.11.13 06:02
12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통시장 인근 1km 이내 대형마트가 들어설 수 없도록 한 '전통산업보존구역' 제도를 5년 연장한 게 핵심이다. 원래 이 제도는 오는 23일로 효력이 만료될 예정이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는 시급성을 감안, 해당 개정안을 최우선순위로 심사해 이날 본회의 안건으로 올렸다.

"국회가 놀고먹는다"

정치부 기자라는 소개를 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답이다. '국개의원'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국회혐오'는 일반인들의 인식에 뿌리를 내린듯하다. 그런데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상임위를 취재하다보면 결코 놀고먹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심사 과정에서 최대한 국민의 편에 서주는 쪽도 국회다. 지난 11일 산업위 법안소위에선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이날 법안소위는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법(소상공인법)' 개정안을 심사했다.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7월9일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개정안은 사회적 재해가 발생할 경우 소상공인 피해복구 지원을 강화하도록 했다. 강 의원은 "메르스같은 사회적 재난이 발생해 피해를 입고 스스로 복구할 형편이 되지 않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 최소한의 피해 회복을 위한 지원을 국가가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법안소위에 참석한 중소기업청은 개정안 통과에 반대했다. 기존 지원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중기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해당 지역의 피해복구와 주민의 생계 안정을 위한 지원이 가능함으로 개정이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 70조'를 근거로 들었다. 시행령에 따르면 재난지역 선포시 소상공인을 포함한 중소기업에 자금 우선융자, 상환연장, 특례보증 등 지원이 가능하다.

보통 법안소위에서 정부가 반대하는 법안들은 통과되지 못한다. 제도의 시행 주체가 정부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때문이다. 이날 소상공인법에 앞서 심사된 중기적합업종 관련법들도 통상마찰을 우려한 정부의 반대로 대거 좌절됐다. 앞서 설명한 소상공인법은 산업위 여야 의원들의 계속된 주장과 설득으로 간신히 소위를 통과했는데, 직후 "모처럼만의 법안"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산업위 여당간사인 이진복 의원은 개정안을 반대하는 정부에 "메르스같은 재난이 터지면 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이 현실적으로 안된다"며 "중기청이 재해발생시 직접 나서 지원을 고려해야하고, 기존 지자체법이 있어 어떻게 못한다는 건 직무유기"라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경주 화재시 다른 예산을 끌어와서 지원했다'는 중기청의 대답에도 "그룹으로 있는 곳 말고 골목에 있는 단독 가게들은 지원을 못 받고 지자체가 재정부족으로 안 도와준다"며 "주민세 1만원도 안 되는 것 도와줄 게 아니라, 중기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당 여상규 의원도 "이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느냐"며 정부를 설득했다.

야당도 다르지 않았다. 부좌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메르스 재해가 터지면 상권의 피해회복이 재난안전법만으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같은당 홍익표 의원 역시 "영세 자영업자의 피해가 산출이 안 되고, 중기청이 적극 검토해야한다"고 말했다. 한정화 중기청장은 그제야 마지못해 "그러면 동의하겠다"고 답했다.

산업위는 다음주에도 두 차례 소위를 더 열어 법안을 처리한다. 법안소위 소속 의원들은 소위가 열리면 하루 8시간~9시간 꼬박 회의장에 앉아 법안을 심사한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이 '동네북'이 된 데는 정쟁과 말싸움만을 크게 보도하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그런 기사에만 크게 반응하면서 국회를 욕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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