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서거]이회창, 방명록에 박정희 휘호 '음수사원'

[the300]앙금 못푼 '정적' 글귀…"신중치 못했다" 지적도

이하늘 기자 l 2015.11.23 15:57

1993년 2월 25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회창 감사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3일 오전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 등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그간 반대 진영 인사들과의 사후 화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총재 역시 구원(久怨)을 잊고 고인을 애도키 위해 조문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날 이 전 총재가 방명록에 남긴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글귀가 미묘한 해석을 낳고 있다.


'낙실사수 음수사원'(落實思樹 飮水思源)을 줄인 이 글귀는 '과일을 딸 때 열매를 맺은 나무를 생각하고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에 내린 휘호가 바로 '음수사원'"이라며 "생전에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 같은 글귀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음수사원' 휘호는 아직도 정수장학회에 남아있다. 장학회 장학생 모임인 '청오회' 역시 이 글귀를 애용하고 있다. 신입회원 환영 메달에도 뒷면에 이 글귀가 크게 쓰여 있다.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뿌리 깊은 대립 관계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의 지속적인 탄압을 받았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김 전 대통령의 가장 잘 알려진 명언은 1979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를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당시 의원직에서 제명했을 때 한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은 사적인 자리에서 종종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독재자의 딸"이라며 평가절하했을 정도로 박 전 대통령과의 앙금을 풀지 못했다. 그런 만큼 이 전 총재가 망자를 애도하는 방명록에 이 문구를 쓴 것은 신중치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총재는 조문 후 기자들과 만나 "요즘 민주주의가 생활화돼서 공기처럼 민주주의의 실제 존재나 민주주의로 오기까지 어려웠던 많은 족적을 잊기 쉽다. 민주주의는 김 전 대통령과 같은 주역 역을할 한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방명록 글귀의 의미를 설명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이 전 총재를 감사원장, 국무총리에 임명하며 정계진출을 도왔다. 하지만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자 이 전 총재는 '삼김(三金)청산'을 외치며 차별화 전략을 시도했다. 김 전 대통령 역시 자신의 후계자 격인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탈당 및 대선출마를 만류하지 않았다. 이후 양측은 서로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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