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프레임 전략으로 본 테러방지법

[the300]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 l 2016.02.29 06:10

편집자주 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난데없는 ‘필리버스터’ 진풍경에 며칠 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다. 70년대 이후 없던 국회 풍경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테러방지법을 국회 본회의에 부의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를 신청했고 즉각 무제한토론에 나서 27일 현재 5일간 십수명의 의원들이 순차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무제한토론의 풍경에 눈길이 가지만, 테러방지법 표결이 과거처럼 본회의 강행처리와 이를 막으려는 물리적 충돌로 치닫지 않고 개정된 국회법을 이용한 ‘토론’과 ‘맞불 선전전’으로 전개되면서 뜻하지 않게 여야가 하나의 법안을 두고 각자의 프레임을 이용한 여론전이 치열해 졌다.


프레임 전략이라는 각도에서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각당의 주장을 살펴보자. 프레임 전략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프레임’을 고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당이 테러방지법=국정원 사찰법으로 규정하고 국정원 문제를 이슈화 시킬 때, 만약 여당이 ‘국정원은 여러 개혁조치로 사찰 같은 문제는 없을 것이다’로 방어에 나섰다고 치자. 이런 논쟁 구도로 흘러가면 핵심쟁점은 국정원이 믿을만 한가? 그렇지 않은가?로 좁혀진다. 결국 야당이 제기한 ‘국정원 불신’ 프레임 속으로 여당이 말려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프레임 전략 이론가들의 주장이다.




반대로 야당이 테러방지법 문제를 ‘실제 테러 위협이 그렇게 급박하고 심각한가? 정부가 위험을 과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의 논쟁 구조에 들어갈 경우 핵심 프레임은 ‘테러위험의 위중성’ 논쟁으로 흐른다. 이것은 야당이 여당의 안보와 안전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다.

논쟁의 주된 흐름 속에서 ‘테러위험과 국민안전’이라는 용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된다면 안전 프레임이 작동하게 되고, ‘국가정보원과 사찰’이라는 용어가 주로 활용되면 사찰 프레임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프레임 전략은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 자기 진영을 옹호하는 층을 설득하고 결집시키는 데 1차 목적이 있다. 그 속에서 중간 지대에 있는 유권자들이 어느 쪽의 주장을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체 여론의 향배가 결정된다.




실제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구조가 잘 나타나고 있다. 비교적 적은 수의 표본 조사라 지지정당, 이념성향별 응답자 수가 적지만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 성향에 따라 여야가 사용하는 프레임에 따라 테러방지법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전체 여론에서 테러방지법 입법 반대 또는 인권침해 우려 부분을 수정해서 통과시키라는 여론이 다소 높은 것은 결국 무당층과 중도성향 응답자들이 ‘안전’ 보다 ‘국정원 인권침해 우려’를 더 강하게 긍정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안보 이슈가 연초부터 크게 불거지면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 사드(THAAD) 배치 논란에 이어 테리방지법이 정국의 주요 이슈로 자리잡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각당이 내부 문제인 공천과 경선을 거치는 동안 정책 이슈들도 준비가 될 것이고 경제 분야를 필두로 정책 노선을 건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지난 대선을 돌아보면, ‘경제민주화’라는 화두가 급부상한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당시 박근혜 후보 진영은 경제민주화 이슈를 적극 흡수함으로써 야당의 최대 무기였던 복지 프레임을 무력화시켰다. 내 프레임을 고집하기보다 시대 흐름에 따라 상대의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방식도 효과적일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천안함 폭침 이후 부상한 ‘안보’ 프레임이 주된 선거 이슈로 작동했는데 당시 야당은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단순한 구도를 선명하게 내세우며 당시 집권여당을 ‘안보장사’ 정당으로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과도한 안보 프레임을 활용하던 여당이 역풍을 맞은 것으로 선거 결과가 풀이된 바 있다.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들이 어떤 프레임 전략을 정책에 담아 풀어내고 경쟁해 가는 지 지켜보는 것도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특히 수구보수와 낡은진보 청산을 기치로 내 건 중도 지향의 국민의당이 중도층을 파고들기 위해 어떤 프레임 전략을 쓸 것인지 주목된다. 중도 지향의 프레임 전략은 확장성이 매우 클 수도 있지만 보수-진보간 대척점이 치열한 영역에서는 ‘중도’가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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