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위기의 지방재정

[the300]종합

정영일 김태은 임상연 기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l 2016.06.30 09:23
정부-지자체 '쩐의 전쟁' 이면엔…2할자치 '구조적 불균형'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충돌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누리과정을 둘러싼 공방이나 이재명 성남시장이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대하며 단식농성을 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논란의 이면에는 열악한 지방재정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장 사이에서는 '2할 자치'라는 자조적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지자체장이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2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자체에서는 중앙정부가 도입한 복지업무에 따른 재정부담이 지방재정을 옥죄고 있다고 주장한다. 충분한 재정대책 없이 확대한 복지정책에 따른 예산 부담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반면 최근 지방재정 총량은 충분히 증가했고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지자체간 재정격차라는 입장이다. 

◇지방자치 21년, 남은 것은 '2할자치' 냉소 뿐…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잘 보여주는 통계가 재정자립도다. 전국 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1995년 63.5%에서 지난해 50.6%까지 낮아졌다. 10% 미만인 지자체는 59곳으로 전체 지자체(243곳) 중 24.3%에 달한다. 지자체 4곳 중 1곳은 지방정부 재정활동에 필요한 자금의 10%도 자체적으로 조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열악한 재정자립도는 국세 위주의 세입구조 탓이다. 2015년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78.8%대 21.2%다. '2할 자치'라는 표현도 이같은 비율에서 나왔다. 반면 재정사용액은 이 비율이 역전된다. 중앙정부의 재정사용액은 전체 392조7113억원 중 42.5%이며 지방정부는 57.5%에 달한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와의 격차를 지방재정조정제도를 통해 보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자체 재원보장과 재정 불균형 완화를 위한 지방교부세 △특정사업 지원을 위한 국고보조금이 있다. 광역단체가 기초단체간 재정 불균형 완화를 위해 지급하는 조정교부금도 있다. 

그럼에도 지방정부는 항상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최근 중앙정부가 기초연금이나 누리과정 등 대규모 재정이 소요되는 복지제도를 도입하며 충분히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저출산·고령화 대책 관련 국고보조사업이 많아질 수록 지방의 재정압박은 가중된다"고 말했다. 


◇"지방세 비율 상향" vs. "이미 충분..격차 해소 중점"

지자체에서는 정부가 그간 약속했던 각종 지방재정 확충 방안들을 조속히 실행에 옮길 것을 주장하고 있다. 최성 전국 대도시 협의회장(고양시장)은 29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 13조에 제시된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하기 위한 새로운 세목을 우선 확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이어 △2014년 국무회의에서 심의, 확정한 지방소비세 상향 등 지방세 비중확대 △지방세 비과세 감면·축소 등을 통해 4.7조원의 지방재정 확충계획안을 우선 협의·이행해야한다고 제시했다. 이들은 지방세법상 지방소비세율을 11%에서 16%로 상향조정하고 지방교부세율을 19.24%에서 22%로 상향하는등의 법안도 적극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반면 지방재정 총량은 이미 충분히 확대됐다는 입장이다. 반면 지자체간 예산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발상이 집약된 것이 최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내놓은 '지방재정 형평성 및 건전성 강화방안'이다. 이 방안은 크게 △시·군 조정교부금 제도 개선 △법인지방소득세 일부 시·군 공동세 전환 △지방재정안정화 기금 도입 등을 담고 있다. 

개선안의 '타깃'은 경기 수원 성남 고양 과천 화성 용인 등 6개 지자체다. 경기도는 지방교부세를 받지 않는 이들에게 도 조정교부금을 우선 배분하는 특례를 운영하고 있는데 행자부에서 형평성 논리로 이같은 특례를 폐지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같은 개선안을 통해 5200억원 이상을 다른 지자체에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하고 있다. 

◇해법은 자치와 균형발전

6개 지자체는 '정치적 탄압'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예산 형평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오히려 수원시 등 6개 지자체의 1인당 예산은 경기도 다른 지자체보다 적으며 지방교부세를 받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도 조정교부금을 받아도 다른 지자체에 비해 결코 풍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행한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아 결산도 하지 않은 시행령을 다시 개정할 경우 법적 안정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지방교부세를 받지 않을 정도로 재정이 튼튼한 지자체에게 예산을 빼았는 정책을 펴는 것은 다른 지자체의 재정확충 의지를 꺾는 '하향평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간 누적돼온 지방재정 문제가 이번 개선안을 계기로 본격화된 만큼 지방재정 전반을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하고 있다. 지방자치를 저해하는 재정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지자체간 균형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정창수 소장은 "이번 논란이 예산전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고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론의 장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형평성 vs 갈등조장"…여야 지방재정 개편안 격돌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은 지방 간 재정격차를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나왔다. 재정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지방자치단체의 세금 일부를 재정 여건이 어려운 지자체로 나눠줌으로써 재정형평성과 건전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개편안으로 지자체 세금이 줄어드는 성남시 등 경기도의 6개 지방자치단체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여야 정치권에서도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최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행정자치부 업무보고 때 이 문제에 대해 여야 위원들이 설전을 벌였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일부 지자체가 반발하고 있지만 재정형평성을 강화하고 열악한 지방정부 재정을 개선하는 데 원칙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는 입장이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많은 자치단체와 국민은 행자부가 추진하는 방향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잘되길 바란다. 논란은 있지만 행자부가 끝까지 관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번 개편안에 반발하는 6개 지자체가 속한 경기도 지방 조례가 조정교부금 배분을 편법 운용하고 있다고 조정해며 반격에 나섰다. 경기도는 2013년 조정교부금 제도 도입 당시 도내 6개 불교부단체에 조정교부금을 우선 배분하는 비율을 90%로 정한 특례를 도입한 바 있다. 불교부단체는 재정수입이 수요보다 많아 교부세를 받지 않는 지자체다. 현재 수원시를 비롯 성남시, 용인시, 과천시, 화성시, 고양시 등 6개 지자체가 불교부단체에 해당한다. 

경기도가 이들 6개 불교부단체가 받는 조정교부금 규모를 최대화하면서 재정 여건이 열악한 다른 지자체가 조정교부금 외에 지급받는 교부세 규모도 늘어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경기도 전체 예산이 최대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주장이다.

유민봉 새누리당 의원은 "경기도 전체에 돌아오는 교부세를 최대화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다른 지자체에 돌아갈 예산이 부족해진 것"이라며 "이는 지자체가 다른 지자체의 재정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지방재정법 3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역시 이 같은 경기도 조례로 인해 다른 지자체가 입게된 손해 규모를 2116억원이라고 추계했다.

그러나 야당은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이 지자체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재정 교부금 개편 때문에 경기도 6개 단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며 "충분하게 논의한 뒤 진행해도 문제가 없는데 군사작전 하듯이 급하게 추진하는 이유를 아무리 봐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은 "경기도 조정교부금과 관련해 어느 정도 방향성은 맞지만, 속도가 아니었다"며 "경기도 6개 불교부단체와 소통하고 적절한 대화를 했으면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안 생겼으리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지방정부의 재정주권을 핍박하고 지자체간 갈등을 조장하는 반(反) 자치적 처사"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방자치의 핵심은 재정적 독립"이라면서 "중앙정부가 진정으로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해소하려 한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수직적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 먼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방재정 확충 방안으로 약속했던 지방소비세 인상, 교부세율 인상, 지방세 비과세 감면 축소 등은 이행하지도 않고 지방재정 하향평준화를 초래하는 방안으로 중앙정부의 책임을 모면하려 한다며 정부를 강력 비난하고 있다.


"교부금이냐 보조금이냐" 정부 지방교부세 배분권 확대 논란

#”일부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시혜성 현금지급 등의 포퓰리즘 정책은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패널티를 부과해서라도 무분별한 무상복지사업을 방지해야 한다"(2015년 11월23일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확대간부회의)

#"사회보장기본법에는 지자체장이 보건복지부 장관 등 협의 결과에 따라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없는데도 이를 따르지 않으면 교부세를 감액할 수 있게 한 것은 지방교부세법에도 위반된다. 헌법 정신을 명백히 위배했다"(지난해 12월10일 박원순 서울시장 기자회견)

지난해 말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 문제로 한판 설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들고 나온 강력한 무기는 ‘지방교부세 패널티’(삭감)였다. 지방교부세는 국가가 지자체의 행정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해주는 교부금으로 지방재정의 핵심 재원 중 하나다. 

즉 서울시가 청년수당 지급을 강행할 경우 정부는 교부금을 삭감해 돈줄을 조이겠다는 것이었다. 박 시장은 정부의 지방교부세 패널티 방침은 지방교부세법과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지난 1월 관련법 시행령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에 나선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정부가 지방교부세 배분에 대한 재량권 확대에 나서면서 지차제와의 대립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세입 확충에 노력한 지자체에는 교부금을 늘리고, 이를 게을리 한 지자체에는 교부금을 줄이는 방식으로 지방교부세의 패널티 및 인센티브 제도를 개편했다. 

이 시행령에는 사회보장기본법상 규정된 사회보장제도를 신설·변경할 때 정부와 협의·조정을 하지 않거나 그 결과를 따르지 않으면 지방교부세를 감액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는 이번 제도 개선으로 자체적으로 증액·삭감할 수 있는 교부금 규모가 현재 4조5000억원 규모에서 5조4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만큼 재량권이 늘어나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서울시의 청년정책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박 시장은 정부 여당의 비판에 직면한 청년수당과 관련해 정부와 여야, 지방정부가 모두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서울시 제공) 2015.12.1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부는 이번 제도 개선이 보다 효율적인 재원 배분과 지자체의 방만운영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들은 정부가 재량권을 늘려 지자체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올해부터 실시한 청년배당정책으로 교부금이 삭감될 처지에 놓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에 반대해 권항쟁의 심판을 청구하는가 하면 이달 초에는 광화문에서 11일간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지방교부세에 대한 정부의 재량권 강화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전국 지자체에 불었던 주민세 인상 바람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주민세 징수실적을 기준으로 교부금을 증액 또는 삭감키로 하자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주민세 인상에 나서면서 서민부담만 증가했다는 지적이 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교부금은 특정용도를 위해 지원하는 보조금과 달리 조건 없이 지자체의 부족한 재원을 메꿔주기 위한 제도로 패널티나 인센티브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며 “정부가 재량권을 확대하기에 앞서 왜 성과가 없는지부터 파악하고 책임과 권한을 분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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