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기로에 선 공정위 전속고발권

[the300]종합

배소진 김성휘 기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l 2016.07.06 09:03
더민주 '경제민주화' 시동…공정위 '전속고발권' 운명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2016.6.3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불어민주당이 재벌개혁, 양극화·불평등 해소등 ‘김종인표 경제민주화’를 위한 입법화 작업에 본격 나서면서 35년간 이어온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이 또다시 존폐 기로에 놓였다.

5일 국회에 따르면 더민주 정책위부의장인 최운열 의원은 최근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공정거래법),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하도급법), '가맹사업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가맹사업법),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대리점업법),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대규모유통법) 등 5개 법안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각각의 법안에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명시하고 있는 조항을 삭제하는 방식이다. 이대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엔 국민 누구라도 불공정 거래, 담합 행위 등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공정위는 기업의 불공정거래나 담합행위 등에 유일하게 고발할 수 있는 권한 즉,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검찰이 위반 사실을 파악해도 공정위에 고발해줄 것을 먼저 요청해야 한다. 공정위가 위반 행위를 파악했을 경우 검찰에 의무적으로 고발토록 규정했지만 '위반의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중대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라는 단서가 붙는다. 야당이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소극적으로 행사하고 있으며 '대기업 봐주기'가 공공연히 이뤄진다고 꾸준히 비판하는 이유다. 

공정위 전속고발권은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었던 2013년에도 한 차례 거센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당시 국회는 전속고발권 폐지 논의를 벌였지만 공정위의 반발에 결국 감사원, 조달청, 중소기업청에 '고발요청권'을 주는 방향으로 관련 법률들을 개정했다.

하지만 이 역시 각 부처의 인력이나 예산이 충분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명길 더민주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3년간 타기관에서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한 내역은 12건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청에서 2014년과 2015년 각각 5건과 4건의 고발요청을 하며 대부분을 차지했다. 조달청은 2015년 2건, 2016년 1건으로 3건의 고발요청을 했으며 감사원의 경우 3년간 단 한 차례도 고발요청을 하지 않았다. 

최 의원은 "실제 해당 부처는 고발요청을 담당한 사람도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공정위 또한 예전과 다름없이 대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며 "소송남발로 인한 기업활동 위축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35년간 존속돼왔던 공정위 전속고발권은 이제 그 수명이 다하고 경제민주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론에 불을 붙인건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다. 그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를 경제민주화의 핵심 과제로 지적했다. 최운열 의원의 개정안에는 김 대표도 공동발의자로 서명하면서 사실상 '당론'과 같은 무게감을 갖게 됐다.

반면 공정위는 강경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인력으로나 능력 면에서 상대적으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훨씬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전속고발권 폐지에 반대했다.


'33년만의 폐지'라던 공정위 전속고발권, 왜 다시 도마위에?

(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에 대한 심사를 하고 있다. 2013.6.27/뉴스1


"참여정부가 대선공약으로 내걸고도 이행하지 못했던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법을 박근혜정부에서는 집권하자마자 4개월 만에 통과시켰다. 이처럼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는 구호가 아닌 행동으로 경제민주화를 실천해왔다." (2016년 2월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중)

19대국회는 시작하자마자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동시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에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 20대국회와 판박이다.

당시 친박계(친 박근혜)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해 이용섭·민병두·신장용 민주통합당 의원, 노회찬 통합진보당 의원 등이 전속고발권 폐지 관련 법안들을 쏟아냈다.

2012년 7월 20일 있었던 대정부질문에서 이한성, 김재원 의원은 나란히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했다. 당시 김재원 의원은 "불공정거래로 인한 피해자가 소송조차 할 수없는 전속고발권제도는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기본권보다 행정기관의 처분권을 우선시하는 관치시대의 유산"이라며 "공정위의 독점적 지위를 해체해야 한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공정위가 행한 처분은 검찰과 법원이 다시 들여다보도록 하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5일 후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위 업무보고에서도 전속고발권 문제는 여야 의원들의 집중타격 대상이었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이 때 "이 법은 헌법이 아니다. 고발권의 존속이든 폐지의 문제는 다시 시작해보면 된다. 지금까지 안됐으니 전속고발제를 폐지해보자는 거다. 폐지해서 문제가 생기면 다시 또 환원하면 되지 않느냐. 국민들의 폭발하는 그런 민심을 알아야 한다. 전속고발제를 우리 부처의 권리라 해서 갖고있겠다는 건 안되는 얘기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김동수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거래 사건이 일반 형사사건과 다른 특성, 그리고 기업활동의 부담, 자진신고제도 형해화, 형벌의 보충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유지돼야 한다고 본다"고 반대입장을 밝혔지만 국회는 끊임없이 전속고발권 폐지 필요성을 제기했다.

공정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들 법안은 고스란히 각자 당 대선공약에 녹아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공정위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조달청, 중소기업청, 감사원 등에도 고발권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고, 박근혜정부 인수위원회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착수됐다.

추상같았던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목소리가 슬그머니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다. 공정위에서 고발권은 단독으로 가지되 조달청, 중소기업청, 감사원 등이 고발을 요청할 경우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고발하도록 '고발요청권'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정권초기 강한 압박을 받은 공정위가 내놓은 전향적인 제안으로, 고발권을 '독점'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법안 논의는 순식간에 공정위의 제안을 검토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정무위 법안소위는 2013년 4월 17일 단 한 차례 논의에서 고발요청권 확대로 의견접근을 이뤘다. 

이에 따라 국회 정무위는 같은해 5월 감사원장, 중소기업청장, 조달청장이 공정위에 불공정거래를 고발할 경우 공정위는 거부권 없이 즉각 수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그리고 '33년만의 전속고발권 폐지'라는 자화자찬 속에 법안은 약 한 달여만에 법사위와 본회의를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소송남발 우려"vs"업계현실 왜곡" 찬반 팽팽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등 위반행위를 과징금이나 행정처분 외에 형사처벌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만 고발할 수 있다. 이 같은 전속고발권 제도를 두고 5일 현재 피해자 구제 확대를 위해 폐지나 완화해야 한단 주장과, 그럴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소송 남발로 기업활동이 위축된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섰다.

폐지론에 따르면 전속고발권 탓에 공정거래법 위반 피해자가 일반범죄 피해자와 차별대우 받는 등 헌법, 기본권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불법을 형사처벌할 수 없어 면책효과가 발생하고, 공정위의 고발실적도 저조해 제도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것이다. 공정거래기구에 전속고발권을 준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강조한다.

공정위와 기업계 쪽에선 유지론을 고수한다. 시장질서 회복을 위해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판단은 전문기관인 공정위라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본다. 최대 쟁점은 소송남발 우려다. 당사자들이 앞다퉈 소송을 낼 경우 기업관련 소송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이를 통해 구제하려던 중소기업들이 도리어 유·무형의 손해를 겪을 수 있다. 

공정위와 검찰이 같은 건으로 다른 결론을 낼 경우 혼선도 우려한다. 이 때문에 전경련 등 경제단체에선 형사제재보다 민사적 구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3년 전속고발권 폐지 법안은 기존 검찰 외 감사원, 조달청, 중소기업청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할 수 있게 하는 일부 완화로 매듭지었다.

지난달 28일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선 양쪽 주장이 충돌했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발 요청권을 확대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며 전속고발권 폐지를 요구했다. 관련 법안을 제출한 최운열 의원도 가세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이에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면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본다"고 반박했다. "대기업은 사내 변호사도 있고 대응이 가능하겠지만 중소기업은 변호사도 없이 고발이 끊임없이 이뤄지면 영업을 못하게 될 것"이란 이유다. 정 위원장은 "저희만 (고발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다"며 "시장이 저희 예측과 반대로 움직이면 중기가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폐지를 요구하는 쪽은 이에 대해 "남소 우려는 지나치다"고 재반박한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인간적, 거래상의 관계를 완전히 끊자는 각오가 아니면 통념상 고소고발은 힘들 것"이라며 "무고한 혐의를 씌웠을 때 무고죄 소송을 역으로 당할 수도 있어 고발이 남용되리란 것은 기우"라고 했다.

해묵은 폐지논쟁엔 정부부처간 입장차도 깔려 있다.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유지를, 법무부는 폐지를 각각 희망해 왔다. 소송남발에 대한 우려란 곧 공정위와 검찰 간 주도권 경쟁의 한 측면이란 시각이 있다. 김종석 새누리당 의원은 "그동안 공정위와 법무부가 묘한 긴장 관계였다"고 지적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하도급법처럼 공정거래 관련법에도 있지만 근로기준법, 조세범처벌법, 지방세기본법, 출입국관리법에도 있다. 각 법규 위반에 노동위원회, 국세청·지방청, 지자체장 등이 고발권을 지닌다.


한국·일본만 전속고발권? "국내 형벌범위 이례적으로 넓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자는 야당은 이 제도가 한국과 일본의 전유물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특징은 해외 다른 나라보다 한국·일본이 비교적 많은 불공정행위 유형에 대해 형벌을 적용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소송 빈발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5일 국회에 따르면 공정거래 위반행위는 크게 카르텔(독과점), 시장지배지위 남용, 기업결합, 불공정거래행위, 기타 사업자단체금지행위 등 5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정거래법에 형벌을 규정한 것은 14개국인데 한국은 5개 유형 모두, 일본은 불공정거래 행위를 제외한 4개 유형이 형벌 대상이다. 

영국·캐나다·오스트리아 등은 카르텔 행위만, 미국은 카르텔·지배적 지위 남용·기업결합 등 세 유형을 형사처벌할 수 있게 했다. 다른 회원국 14개국은 공정거래 관련 형벌이 없는 대신 시정조치를 부과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엑스포에 참석했던 이호영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대상 행위의 범위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넓다"며 "이를 적정 범위로 축소하는 게 전속고발제 논의의 전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처럼 공정거래법에 처벌 규정이 많은 경우 전속고발제가 남소를 막는 장치라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체계엔 나라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다. 독과점 자체와 그 결과 중 무엇을 방지하는지, 사법판단과 행정처분 중 어느 것이 우선인지, 법적용은 전문기관과 당사자 중 누가 해야하는지에 따라 나뉜다.

우선 독과점 자체가 나쁜 것이니 원천금지한다는 주장과 독과점으로 인한 피해발생시 규제한다는 흐름이 있다. 각각 원인금지주의와 폐해규제주의로 불린다. 미국은 원인금지, 독일·프랑스 등은 폐해금지쪽이다. 한국은 행위 유형별로 원인금지와 폐해규제 원칙이 각각 적용되지만 대체로 폐해규제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

위법성 판단과 징계여부를 사법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쪽, 관료나 전문기관이 행정처분에 주로 의존하는 쪽이 존재한다. 전담기관이 직권으로 과징금 등 행정규제를 매기도록 하는 직권규제주의와 당사자들이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는 당사자주의로도 나눌 수 있다. 한국은 공정위라는 전문기관의 역할이 크고, 당사자주의보다 직권규제주의 우선이다. 

전속고발권 폐지·완화는 곧 당사자주의 확대로 볼 수 있다. 사업자간 내밀한 독과점과 불공정 행위는 제3자 격인 공정위가 쉽게 알 수 없어 직권규제에 한계가 있다. 실제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공정거래진흥원 설립, 분쟁조정제도 도입 등 당사자주의를 조금씩 확대해 왔다.

한편 한일 제도의 유사성엔 역사적 연원이 있다. 한국은 1980년 공정거래법을 도입하면서 일본의 법률을 참고했다. 일본 독점금지법은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재벌'을 전쟁의 한 이유로 지목한 미국이 대기업집단 해체를 위해 강력한 내용으로 도입한 것이다. 일본엔 우리나라 공정거래위 격인 '공정취인위원회'가 공정거래 관련 법령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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