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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24일 '재심' 관람, 2012 '광해'-2014 '변호인'과 다른 점은

김성휘 기자 l 2017.02.26 18:00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CGV에서 박준영 변호사(오른쪽), 김태윤 감독과 영화 재심을 관람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7.2.24/뉴스1


2012년 10월12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서울 신촌에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봤다. 취재진은 소감을 듣기 위해 출입구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도 그는 나오지 않았다. 눈물 때문이었다. '북받친' 감정은 저녁 일정 내내 이어졌다. 그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도저히 안 되겠다. 다음에…"라며 손을 저었다.

 

하루 뒤(10월13일) 문 후보는 "도저히 억제가 안 됐다"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는 대사나… 참여정부 때 (중략) 그런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장면이 많아서 그런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 중 하나다. 영화 속 광해군(이병헌)의 대역을 맡고 소신을 펴다 쓸쓸히 사라지는 하선(이병헌 1인2역)에게서 노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하선을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도승지 허균(류승룡)에게선 문 후보 자신을 봤다.


2012년 10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눈물을 닦고 있다. 영화가 끝난 뒤 출구로 나오려던 그는 이내 자리에 다시 앉았다. 5분 가량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았다. /사진제공=문재인캠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영화정치'에 가장 적극적이란 평을 받는다. 그가 선택한 영화는 노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곤 한다. '광해'가 그랬고 '변호인'이 그랬다. 이를 통해 전통적 지지층의 결속을 다질 수 있다. 대선 패배로 절치부심하던 문 전 대표는 '변호인' 관람을 계기로 정치활동을 서서히 재개했다. 

 

영화의 메시지를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무리없이 일치시키는 효과도 얻는다. 문 전 대표는 직접 내놓는 메시지와 공약이 종종 오해와 논란을 낳는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영화를 통하면 훨씬 무리없이 그의 생각을 내보일 수 있다. 최근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를 봤다. '탈핵'은 문 전 대표의 주요 공약이다. 국수주의적이란 비판을 받은 '인천상륙작전'을 본 건 안보 불안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의지였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실화를 다룬 '카트'도 봤다.

 

지난 24일엔 '재심'을 골랐다.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다뤘다. 문 전 대표는 영화를 본 뒤 사법제도가 억울한 피해자를 낳기도 하는 현실을 고치겠다고 했다. 유권자들과 정서적 교감도 빠질 수 없다. 그는 이날도 눈물을 훔쳤다.

 

예전 영화 선택과 미묘하게 다른 점도 있다. 그동안 문 전 대표의 영화선택은 '노무현'과 '눈물'로 규정된다. '광해'를 보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반면 '재심'은 앞으로는 '문재인'을 내세우겠단 의지로 읽을 수 있다. 이 영화는 노 전 대통령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오히려 문 전 대표 본인과 인연이 있다. 영화 속 변호사의 실제 모델인 박준영 변호사는 문 전 대표가 변호했다 패소한 사건의 재심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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