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레터]이정미와 문재인의 어떤 실수

[the300]헤어롤과 올림머리, '2017.4.10'과 세월호

김성휘 기자 l 2017.03.11 09:55
10일 오후 전북 전주시 충경로 사거리에서 열린 제17차 전북도민총궐기 중 참가자들이 폭죽을 손에 들고 탄핵 인용의 기쁨을 즐기고 있다.2017.3.10/뉴스1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저마다 수많은 장면으로 기억할 것이다. 누군가는 수개월 광장을 메운 촛불 또는 태극기로, 누군가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헌법재판소의 또렷한 주문(主文)으로. 기자는 그 중 두 가지를 잊을 수 없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출근길 '헤어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팽목항 방명록. 

탄핵심판 선고일인 10일 오전, 출근길 관용차에서 내린 이정미 재판관이 국민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수리 뒤쪽 헤어롤 2개를 풀지 못한 모습 때문이다. 분홍빛 헤어롤은 여성들이 늘 이용하는 일상용품. 이 장면은 순식간에 갖가지 의미가 부여돼 급속히 퍼졌다. 그러다 탄핵 심판에 대한 고심과 긴장 때문이란 해석으로 수렴됐다. 차에서 말아뒀다가 내리면서 뺐어야 하는데 그걸 잊을 정도로 선고에 대해 중압감과 부담을 느끼지 않았느냔 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헤어롤을 풀지 못한채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면 결정 후 진도 팽목항에선 어딘가 어색해보이는 글이 사진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전 대표의 팽목항 방명록이다.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2017.4.10. 문재인" 

내용이 어색하다는 게 아니다. '3월10일'을 '4월10일'로 잘못 쓴 것 말이다. 왜 그랬을까. 문 전 대표 측은 쏟아지는 질문에 "팽목항에서 4·16에 몰두하여 4월로 쓴 것 같다. 수정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는 다시 쓴 방명록 사진을 전송했다. 2014년 4·16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

날짜를 잘못 쓴 문재인 전 대표의 팽목항 방명록.2017.3.10./사진=문재인캠프

헤어롤을 잊고, 날짜를 헷갈린 건 순전히 '깜빡' 실수인지 모른다. 문 전 대표 측 해명도 그를 옹호하고자 아름답게 포장한 변명일 수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국민들은 두 사람이 각각 탄핵심판과 세월호 참사라는 엄중한 현실에 진정성 있게 접근하고, 치열하게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다. 팽목항은 '세월호 참사'의 상징과 같다. 문 전 대표는 거센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단식에 동참했을 만큼 세월호 참사에 책임감을 보여왔다.

그래서 두 장면은 누군가의 어떤 장면과 강렬하게 대비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올림머리를 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재임중 세월호에 대해, 국정 전반에 대해, 우리나라의 미래비전과 통일방안에 대해 헤어롤을 잊고 날짜를 착각할 만큼 집중하고 고심했던가. 우리는 그 흔적을 알지 못한다. 그나마 실무자를 질책까지 하면서 관심을 기울였던 K스포츠재단, 미르재단 일은 기업에서 돈을 받고 민원을 해결해주는 21세기 정경유착이었고, 끝내 최순실 일가의 사익으로 귀결되는 일이었다. 대개 8대 2로 표현되는 탄핵 찬반 여론은 여기서 나온다.

단추 하나 풀린 것, 옷매무새 좀 흐트러진 것 잊을 정도로 일에 몰두하는 지도자였다면 어땠을까. 때로 실수하더라도 국민에 대한 성실 의무를 다하는 대통령, 자신의 아픔을 국민에게 강변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5년 전 박 전 대통령을 뽑으면서 이런 모습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신기루였다. 5월, 새로운 대통령은 그래선 안 된다.

날짜를 고친 문재인 전 대표의 팽목항 방명록.2017.3.10./사진=문재인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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