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한반도 매듭 풀기

[the300]

김성휘 기자 l 2018.03.15 15:48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양 정상이 통화를 가진 것은 지난달 2일 30분간 평창올림픽·패럴림픽 개최 및 한반도 문제에 대해 논의한 이후 한 달 여만으로 남북정상회담 등 북한 문제와 한미 FTA 등 양국간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 제공) 2018.3.1/뉴스1


# 고르디움은 지금의 터키에 있던 옛 프리기아 왕국의 수도다. 왕국의 설립자 격인 고르디우스는 자신의 전차(수레)를 신전 기둥에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뒀다. 이후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할 거란 전설이 나왔다. 당시 '아시아'의 범위는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 달랐겠지만.

기원전 333년, 이곳을 지나던 알렉산더 왕은 그 전설을 듣고는 매듭을 칼로 쳐서 끊어버렸다고 한다. 이 일화는 알렉산더 측 저술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라 하지만 실제처럼 생생하다. 물론 등장인물은 실재했다. 고르디우스는 '마이다스의 손'으로 잘 알려진 마이다스 왕의 아버지다.

#신발끈부터 낚시, 등반, 공예품까지 매듭은 의외로 널리 쓰인다. 매듭은 묶기보다 풀기가 어렵다. 당김매듭 고리매듭 8자매듭...14일 유튜브엔 매듭 묶는 법이 차고 넘친다. 대부분은 묶는 방법을 소개한다. 푸는 방법은 없거나, 부차적이다. 매듭이란 묶어놨을 때 쓸모가 있는 거니까 그럴만도 하다.  

이 때문에 고르디우스 매듭 풀기는 실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가느다란 실이나 비닐봉지를 꽉 조여 놓으면 손으로 풀기 어렵다. 가위나 칼로 자르게 된다. 이 때만큼은 우리 모두 알렉산더가 되는 셈이다. 이 매듭이 대한민국, 한반도와 여러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남북·북미 문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 일괄 타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탁월한 비유다. 문재인정부의 대북 접근법 이른바 '문재인 프로세스'는 신중한 동시에 과감한 걸음으로 이뤄졌다.

과감한 발상의 대전환, 그리고 한반도 질서의 대전환은 문 대통령의 오랜 구상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방식도 다자 구조 속에서 점진적 해법을 추구한다는 기존의 경험을 뛰어넘어 파격적이다.

물론 매듭이란 원래 묶기보다 풀기가 어렵다. 게다가 한반도 문제는 매듭이라보다 엉킨 실타래에 가까울만큼 복잡하다.

그럼에도 기대를 갖는 것은 이걸 잘 끊어냈을 때 우리가 누릴 이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미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함께 한반도의 알렉산더가 될 것인가. 운명의 수레가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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