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한마디'의 나비효과…월성1호기 졸속 경제평가

[the300]

최경민 기자 l 2020.10.21 07:41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2017.07.21. photo1006@newsis.com

2018년 4월3일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A과장으로부터 '월성 1호기' 관련 보고를 받고 있었다. '월성 1호기' 폐쇄시기 등을 확정하기 위한 경제성 평가 등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A과장은 전날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백 전 장관에게 보고했다. 청와대의 한 보좌관이 '월성 1호기'를 방문한 후 돌아와서 '외벽에 철근이 노출됐다'는 점을 청와대 내부보고망에 게시했고, 이를 본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이 보고를 들은 백 전 장관은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경제성, 지역수용성 등을 고려하여 '월성 1호기' 폐쇄를 결정한다고 하면, 다시 원전을 가동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고 질책을 섞어 말하면서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시 원전을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앞서 백 전 장관은 2017년 12월과 2018년 3월에 ‘월성1호기 조기폐쇄 추진방안’ 및 ‘에너지전환 후속조치 추진계획’을 각각 논하면서 한수원으로부터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보다 운영변경허가 기간(2년)까지 운영하는 것이 경제성이 있다"고 보고받았던 바 있다.

'월성 1호기' 폐쇄 결정이 난 후에도 2년 정도 더 운영하는 게 경제성이 좋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이를 뒤집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밝힌 셈이다. 한수원이 이같은 방침에 난색을 표했지만 산업부의 뜻대로 청와대 보고까지 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산업부 과장 A씨는 최근 진행된 감사원 감사에서 백 전 장관이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폐쇄 결정 이후에도 운영변경허가 전까지 원전을 가동할 수 있다는 내용을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할 수 없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경주=뉴시스] 이무열 기자 = 감사원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타당성 관련 감사에 대해 "월성 1호기 경제성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되었다고 발표한 20일 오후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운전이 영구정지된 '월성 1호기'가 보이고 있다. 2020.10.20. lmy@newsis.com

20일 발표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관련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이 장면은 이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단 감사원은 '월성 1호기'에 대한 경제성 평가가 시작(2018년 4월10일)되기도 전에 사실상 '폐쇄시기에 대한 방침'부터 정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절차를 봤을 때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 전 장관이 이같은 방침을 지시한 후 졸속 경제성 평가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짜맞추기식 절차가 진행됐다는 의미다.

감사원은 "산업부 직원들은 한수원 이사회가 즉시 가동중단 결정을 하는 데 유리한 내용으로 경제성 평가결과가 나오도록 평가과정에 관여했다. 경제성 평가업무의 신뢰성을 저해했다"라며 "백 전 장관은 이를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도 내버려 뒀다"고 지적했다.

경제성 평가에 적용된 2017년 한수원 전망단가(55.08원/kWh)는 같은 해 실제 판매단가(60.76원/kWh)보다 9.3%(5.68원/kWh)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원전의 계속가동 시 전기판매수익이 낮게 산출됐다. 가동중단에 따라 절약되는 인건비 등도 과다하게 계산됐다.

이같이 졸속 경제성 평가를 바탕으로 2018년 6월15일 '월성 1호기' 폐쇄가 결정됐고, 즉시 가동중단이 이뤄졌다. 그리고 2년4개월 후 감사원은 이와 관련해 "경제성 평가 용역보고서에서 '월성 1호기'의 즉시 가동중단 대비 계속가동의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고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감사원은 2018년 9월 퇴직한 뒤 한양대 공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로 돌아간 백 전 장관을 향해 "엄중한 인사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산업부에 재취업, 포상 등을 위한 인사자료로 활용하라고 통보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에 대해서는 "경제성 평가의 신뢰성을 저해하는 것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 엄중 주의를 요구한다"고 했다.

한편 감사원은 이번 감사와 관련해 "'월성 1호기' 가동중단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으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경제성 평가에만 집중했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려 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월성 1호기' 즉시 가동중단 결정은 경제성 외에 안전성이나 지역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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