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죽음' 이겨낸 심재철, 유라시아를 품다

[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

이상배 기자 l 2015.06.04 05:58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1993년 6월30일 수요일.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MBC 심재철 기자는 밤새 잠을 설쳤다. MBC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감됐다 풀려나 10개월만에 처음 방송에 복귀하는 날이었다.

설레는 마음에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새벽 5시30분 서울 양재동을 출발한 자가용 프라이드가 곧 비 내리는 올림픽대로로 접어들었다. 여의도 방향 한강철교 아래를 막 통과하던 순간. 눈앞에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나타났다. "쾅". 그리곤 암전.

이날 그의 차는 5톤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중앙선 너머 달리던 트럭이 갑자기 끼어든 택시를 피하려다 중앙분리대를 넘었다. 심 기자는 트럭 밑으로 구겨져 들어간 채 의식을 잃었다. 구조대가 그를 끄집어 내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겼다.

맥박이 잡히지 않았다. 혈압이 40을 밑돌았다. 심장막이 무려 13cm나 찢어졌다. 비장, 소장, 대장 등 여기저기가 찢겨 피가 쉴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내출혈이 워낙 심해 수술을 하더라도 살 확률이 극히 낮았다.

게다가 심장 수술을 하려면 무균 수술실이 필요했다. 가장 가까운 무균 수술실은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있었다. 7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비 내리는 아침 출근 시간대였다. 병원 측은 "이동 중 죽을 확률이 70%"라고 했다.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가족들은 결단을 내렸다. "죽을 확률이 70%면 살 확률이 30%는 있다는 얘기 아닌가. 이대로 있으면 어차피 죽는 것 아닌가." 쏟아지는 비를 뚫고 구급차가 출발했다. MBC 취재 차량이 비상등을 켜 앞길을 터줬다. 다행히 무사히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했고, 마침 비어있는 수술실로 옮겨졌다. 무려 8시간에 걸친 수술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었다. 집도의가 뛰어나와 보호자를 찾았다. "피가 멈추지 않아요. 성인 남자 5∼6명분에 해당하는 2만cc를 수혈했는데도 피가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수혈만 하면 치명적인 패혈증이 올 수도 있어요. 피를 응고시키는 혈소판도 문제입니다.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만약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가족들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의사의 말이 아득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저 "살려주세요"라는 말만 되뇌었다.

병원에서 갖고 있던 피가 모두 동이 났다. 한 의사가 밖으로 뛰어나가 소리쳤다. "피가 모라자요. B형! B형 피가 엄청나게 필요한데 지금 떨어졌어요." MBC 후배인 김대환, 황외진 기자는 곧장 병원 바로 옆 연세대 도서관과 총학생회실로 내달렸다.

김 기자는 도서관 책상 위로 올라가 외쳤다. "여러분! 심재철씨 아시죠?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5년 전 광주 청문회에서 학생운동 대표로 증언했던 사람이요. 그 사람이 지금 MBC 기자인데 오늘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 중인데 피가 엄청나게 모자랍니다. 좀 도와주세요. 급합니다. B형이예요"

황 기자는 연세대 총학생회실로 달려가 교내 방송을 해달라고 사정했다. 연세대 교내 방송 YBS가 긴급 수혈을 호소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기말고사 기간이었음에도 수십명의 학생들이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자신의 피를 나눠줬다. 그 시각 MBC에서도 사내방송이 흘러나왔다. MBC 앞의 헌혈버스 2대가 순식간에 가득찼다.

그렇게 무려 80팩이 넘는 피가 수혈됐다. 혈소판도 15팩이 주입됐다. 수술이 끝났다. 집도의는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했다. 생존 확률을 묻자 그는 "20% 정도"라고 했다.

우려했던 패혈증이 왔다. 엄청난 수혈의 부작용으로 감염이 생긴 탓이다. 체온이 40도를 넘나들었다. 의사인 둘째 매형은 패혈증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대로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수술 후 패혈증은 치사율이 80%에 달한다.

그러나 기적이 찾아왔다. 수술 13일 후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흘 뒤부터는 말도 하기 시작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길 한달째 그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심재철은 그렇게 '덤'으로 주어진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1.7kg짜리 다리보조기, 그리고 지팡이와 함께.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 사진=뉴스1


['서울의 봄', 그리고 '정계입문']

새누리당 4선 심재철 의원(경기도 안양동안을)은 1958년 광주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다. 어려운 형편 속에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7남매를 키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심 의원의 가족은 방 두칸짜리 전셋방을 전전했다. 가운데 여닫이 창호지문이 달렸을 뿐 사실상 방 한개나 다름 없었다. 책상은 늘 형이나 누나의 몫이었다. 막내인 심 의원은 배를 깔고 엎드려 공부해야 했다. 그럼에도 끈질긴 노력 끝에 서울대 영어교육과에 진학했다.

광주제일고 시절부터 유신 반대 시위를 이끈 심 의원은 대학 입학과 함께 소위 운동권의 길로 접어들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오른 그는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의 계엄령 해제 등을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섰다.

그해 5월15일 서울대, 고려대 등 18개 대학 총학생회가 주도한 10만명 규모의 서울역 시위 당시 그는 대학 총학생회장단 대표였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학생 지도부는 철야농성과 해산 가운데 한가지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훗날 국무총리가 된 이수성 당시 서울대 학생처장이 내무부 장관으로부터 학생들의 안전귀가 보장을 약속받고 학생 지도부에 해산을 설득했다. 총학생회장단 회의에서 격론 끝에 해산이 결정됐다. 이미 신군부의 무력진압이 예고된 터에 야간의 불상사를 우려해서다. 이 사건은 훗날 '서울역 회군'으로 불리게 된다.

시위대 해산 후 신군부는 '5.17 비상계엄확대조치'를 발동하고 총학생회장단을 지명수배한다. 심 의원은 약 두달 간의 수배생활 끝에 붙잡혀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누명을 쓰고 자백을 강요받았다. 남산 중앙정보부로 보내진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치안본부 특수대에 끌려갔다. 청와대 경비를 맡고 있던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33헌병단으로부터 내란음모사건 피의자 가운데 가장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이후 천신만고 끝에 대학을 졸업한 심 의원은 동대문여중 영어교사를 거쳐 MBC 기자로 입사했다. 그러나 그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1988년 입사 3년차에 MBC 노조 결성을 주도하고 초대 전임자를 지냈다. 1992년에는 방송민주화를 요구하는 MBC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생명을 앗아갈 뻔한 교통사고는 출소 직후의 일이다.

그의 '대중성'을 높이 산 YS 정권이 그를 정계로 이끌었다. 1994년 초가을 청와대 비서실에서 당시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입당을 제안했다. 그는 거절했다. '서울의 봄'과 광주를 짓밟은 신군부를 그는 용서할 수 없었다. 이런 신군부를 단죄하지 않는 정권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몇달 뒤 '5.18 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가 법정에 세워지게 됐다.

이후 다시 신한국당에서 제안이 왔다. "어떻습니까, 심재철씨? 이젠 여건이 됐잖아요?" 깊은 고민 끝에 그는 정치의 길을 선택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어차피 '덤'으로 사는 인생, 탁한 정치판에서라도 세상을 한번 제대로 바꿔보자."

그러나 경기도 안양을 지역구로 선택하고 치른 첫번째 선거에서 그는 고배를 마셨다. 이후 신한국당 안양 동안구 지구당 위원장과 신한국당 부대변인을 맡으면서 정계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국회 입성에 성공한 심 의원은 이후 안양시 동안구에서 내리 4선에 성공했다. 정책위 의장, 최고위원 등 핵심 당직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윤리특별위원회, 세월호사고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굵직한 직책을 두루 맡으며 오늘날 새누리당의 대표 중진으로 올라섰다. 

그동안 국회의원 겸직금지, 국회 폭력 방지 법안 등의 국회 통과를 이끌고 국회 본회의 실명표결 전광판 설치를 주도하는 등 정치개혁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남겼다. 지금은 유라시아 철도 개설 사업에 전력을 쏟고 있다. 새누리당 유라시아 철도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 의원은 4조3000억원을 투입, 남북의 단절된 철도선을 연결하고 북한의 낙후된 철도를 개량하는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대표 법안]

◇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심 의원이 2004년 발의해 제정된 법이다.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이 화장실 앞에 더 길게 줄을 서야 하는 불편을 없애려는 취지였다. 공중 사용 건물에서는 여성용 변기의 수가 최소한 남성용 대변기와 소변기의 수를 합한 숫자 만큼은 돼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함으로써 여성들의 불편을 크게 줄이는 데 기여했다.

◇ 범죄단체의 해산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심 의원이 2013년 5월, 지난 3월 두차례에 걸쳐 발의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의 조직원들이 조직 활동과 관련해 최종 유죄 판결을 받으면 조직 자체도 위법한 것으로 보고 통합진보당의 경우처럼 법원 등이 해산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조직폭력배 등 폭력조직도 마찬가지로 해산시킬 수 있도록 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 사진=뉴스1


[그의 사람들]

◇ 박홍 신부= 서강대 총장을 지낸 대표적인 보수 사제인 박 신부는 심 의원이 '서울의 봄' 직후 붙잡혀 치안본부 특수대에서 고문을 받던 당시 그에게 비상세례를 줬다. 이후 심 의원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의 길로 이끌었다. 이런 인연으로 심 의원이 결혼할 땐 주례를 섰다. 주례사에서는 심 의원에게 "신부(神父)가 되길 바랐는데 신부(新婦)를 데려왔다"며 아쉬워 하기도 했다.

◇ 이수성 전 국무총리= 1980년 5월15일 서울역 시위 당시 서울대 학생처장이던 이 전 총리는 내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학생들의 안전귀가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심 의원 등에게 시위대 해산을 설득해 결국 관철시켰다. 심 의원의 정계입문 이후에도 두 사람은 두터운 신뢰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사람의 한마디]

"유라시아 철도를 통해 중국 동북3성 개발과 러시아 극동시베리아 개발, 북한재건 및 남북한의 협력이 합쳐질 경우 동북아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거듭날 것이다. 한반도는 단순한 대륙의 끝이 아니라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허브국가가 될 것이다. 유라시아로의 진출은 한국 국가발전 기조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한반도가 지난 100년 간 해양세력의 영향권에 있었다면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100년은 대륙 성격의 회복이 될 것이고, 이것은 한반도 르네상스 시대가 될 것이다." (2015년 4월22일 '2015년 유라시아 교통에너지 국제컨퍼런스' 개회사)

"한번 시작한 공짜시리즈를 되돌리기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무상복지는 실현 가능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이 3년 만에 드러난 만큼 이제라도 무상복지에 대한 혁명적인 재설계로 바로 잡아야만 한다." (2014년 11월12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

"통일은 대박이라고 (박근혜) 대통령께서 올초 신년회견에서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통일은 잘 준비하면 대박이지만 준비를 못 하거나 안 하면 쪽박이 된다" (2014년 10월16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국내 자영업은 심각한 위기의 순간을 맞고 있지만 현재까지 정부의 다양한 자영업 지원 대책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위기의 자영업자를 구해낼 수 있는 정부의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2014년 10월9일 국세청 국정감사)


[요주의!]

지팡이로 걸어야만 하는 불편함 탓에 표정이 굳어져 있어서인지 주변 사람들이 다가서기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냉철한 이성 만큼이나 따뜻한 가슴에서 우러러 나는 푸근한 웃음을 더 많이 보여준다면 대중 정치인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 심재철]

좌우명: 최선을 다하자

종교: 가톨릭 (세례명: 베드로)

좋아하는 노래: 고래사냥 (송창식)

좋아하는 음식: 김치찌개

취미: 색소폰 연주 (교통사로 다친 폐 치료를 위한 재활 목적으로 불기 시작함)

주량: 술 전혀 안 마심


[프로필]
△광주일고 △서울대 영어교육학 학사(서울대 총학생회장 역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동대문여중 교사 △MBC 보도국 기자 △국회 16, 17, 18, 19대 국회의원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 △국회 예산결산특위 위원장 △국회 장애인 인권침해방지대책특위 위원장 △국회 세월호사고대책특위 위원장 △국회 가톨릭신도의원회 회장 △국회 빈곤퇴치연구포럼 대표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장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 △새누리당 최고위원 △(현직) 새누리당 아파트관리비절감대책특위 위원장 △(현직) 새누리당 유라시아철도 추진위원회 위원장 △(현직) 새누리당 국민건강특위 위원장

그래픽= 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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