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쓴소리'로 변신한 '뼈박' 이학재의 '인천상륙작전'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 2.0]이학재 새누리당 의원

임상연 기자 l 2016.09.13 05:45

친박계(친박근혜)인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은 최근 당내에서 ‘Mr. 쓴소리’로 통한다. 당내 현안에 대해 계파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소신껏 입바른 소리를 잘해서다. 특히 같은 친박계에 대한 독설이 거침없다. 새누리당이 4.13총선에서 참패하고도 계파갈등을 지속하자 “블랙코메디 봉숭아학당으로 전락했다. 친박이 더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총선 직후 원유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반발해 ‘친박 2선 후퇴’를 주장하는 쇄신파 모임 새혁모(새누리혁신모임) 결성을 주도한 것도 이 의원이다. 특히 그는 혁신비상대책위원이었던 지난 6월 비박계 대표주자 유승민 의원을 비롯해 탈당파 일괄 복당을 결정하면서 청와대와 친박계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거침없는 행보로 인해 친박계 내에선 ‘탈박’(이탈한 친박), ‘짤박’(잘린 친박) 등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이 의원은 스스로를 뼈박(뼛속까지 친박근혜)이라고 주장한다. 친박계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쇄신과 혁신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개인의 정치적 욕심이 아닌 진정으로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란 설명이다. 이 의원은 “박 대통령이 제대로 평가 받기 위해선 당 혁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고 반드시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친박부터 당 혁신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워드-최연소·최다득표 구청장]
이 의원은 기초단체장 출신 국회의원이다. 2001년 8월 중앙대에서 도시관리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하자마자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후보로 이듬해 민선 3기 인천 서구청장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그의 나이 37세. 이렇다 할 사회경험도 없이 뛰어든 선거로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당내 경선조차 고난의 연속이었다. 당시만해도 지역위원장이 지명한 후보가 공천을 받는 게 당연시 여겨지던 시절로 경쟁자로 나선 이 의원이 공천을 따내기란 본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경선 일주일 앞두고 선거인단인 대의원들이 대거 교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이 의원은 “사실 그때 선거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 한 선거캠프 운동원이 ‘당신을 믿고 여기까지 온 우리는 뭐가 되느냐. 나 혼자라도 끝까지 가겠다’는 원성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선에서 이긴 이 의원은 본선거에서도 승리하며 ‘최연소 구청장’ 당선이라는 이변을 연출했다. 민선 3기 전국 지방선거 당선자를 통틀어 가장 어린 나이였다. 뿐만 아니라 4년 후 치러진 구청장 선거에서는 63.1%라는 기록적인 최다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의원이 박사학위 취득 후 곧바로 정치에 뛰어든 것은 동네이장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영웅이었다. 청년이장으로서 동네사람들과 함께 논둑을 고치고, 동네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다. 어머니는 집안 일은 잘 돌보지 않는 아버지에게 핀잔을 주시면서도 자식들 앞에선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삶을 뒤따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키워드-'뼈박'의 탄생]

인천 서구청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이 의원은 2007년말 또 다른 모험을 선택한다. 안정적인 구청장 직을 중도하차하고 18대 국회의원에 출마한 것. 지역구 발전을 위해 보다 큰 청사진을 펼치고 싶어도 기초단체장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국회 입성 역시 가시밭길이었다. 특히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대표를 지지하면서 붙은 ‘친박’ 꼬리표가 그를 어렵게 했다. 당시는 이른바 친이계의 공천학살로 친박계 현역의원조차 공천을 받기 힘든 시기였다. 

공천이 불확실한 상황으로 모두가 출마를 반대할 때 이 의원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친박계 공천심사위원이었던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다. 강 전 의장 역시 처음엔 반대했지만 이 의원의 출마 결심을 듣고 "주민만 믿고 가라. 거기에 답이 있다"며 적극 지지해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공천심사 과정에서 “상대에 비해 두 배 이상 지지를 얻는 후보를 공천하지 않으면 지역주민들이 우리당을 지지하겠냐”며 이 의원이 공천을 받는데 힘을 보탰다. 이 의원이 강 전 의장을 정치적 은인으로 꼽는 이유다.

이 의원은 험난한 공천 과정과 달리 본선거에선 비교적 많은 표차로 손쉽게 당선됐다. 최연소·최다득표 구청장 시절 쌓아놓은 인지도 덕분이다. 그는 ”구청장 시절 매일 아침 7시 청사가 아닌 현장으로 출근해 주민민원을 직접 챙겼다”며 “'무식하게 근면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일을 했는데 지역주민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밝혔다.

[키워드-백의종군 비서실장]
"박근혜 대표가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면서까지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중략) 18대 국회의원이 돼 정말 좋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가까운 곳에서 박 대표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의원의 저서 "햇님은 코 자는데 아빠는 또 나가?"에 나오는 구절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이 의원의 지지가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단순한 정파적 ‘친박’보다는 열혈 지지자인 ‘박빠’에 가깝다. 그런 그에게 2010년 8월 정치적으로 ‘로또’를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박근혜 대표가 직접 비서실장 역할을 제안한 것.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유정복 의원(현 인천시장)이 갑자기 장관직을 맡게 되면서 기회가 생겼다. 이 의원이 ‘박근혜 호위무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이 의원은 2012년 12월 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 3년여 동안 비서실장을 지내며 현 정권 출범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대선 직후 이 의원은 박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해 또 한번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인수위는 물론 정부에서 일체의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 박 대통령의 논공행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이 의원은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는 생각은 처음 비서실장을 맡을 때부터였다”며 “목표를 이루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키워드-인천 달팽이]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인천에서 결혼해 인천에 살림을 차렸으며, 인천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워 인천에서 모두 학교에 보냈다. 인천과 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인천이 곧 나다”

이 의원에게 인천은 지역구, 그 이상으로 각별한 곳이다. 나고 자란 고향이자 생활 근거지 및 정치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인천 달팽이’(달팽이는 제 집을 버리지 않는다 中)에 비유한다. 죽을 때가지 결코 제 집을 버리지 않는 달팽이처럼 자신도 인천을 절대 버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 의원이 19대에 이어 20대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에서 국토교통위원회를 선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3선 중진으로 상임위원장 자리를 노릴 수도 있었지만 청라시티타워 건설, 루원시티 개발, 도시철도 7호선 연장 등 지역 내 현안 해결을 위해 국토부를 고집했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이 의원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 선거에 나설 수 있다는 섣부른 관측도 나온다. 이 의원은 이미 지난 2014년 인천시장 출마를 선언했다가 현 유정복 시장이 뒤늦게 후보로 나서자 양보한 바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지만 인천시정에 관심이 많고, 과거 경험도 있어 언제든 유력주자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8월 인천 용현시장을 방문한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과 이학재 비서실장.

[이 한 장의 사진]
2010년 8월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비서실장 역할을 제안 받은 이학재 의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사실 나는 단 1초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그토록 따르고 배우고 싶은 정치인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로또’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의 사람들]
이 의원은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 출신답게 정치권 인맥이 풍부하다. 중도성향 정치인으로 야권 인사들과도 격이 없게 지낸다. 당내에선 체험봉사모임인 현답모(현장에서 답을 구하는 모임)에서 같이 활동하는 주광덕·김세연·오신환·유의동 의원 등과 특히 가깝다. 매달 한번씩 봉사활동을 하면서 정치적·정책적 교감을 나누는 사이다. 주광덕·김세연·오신환 의원은 당내 쇄신파 모임인 새혁모에서도 같이 활동 중이다. 야권에선 같은 민선 3기 기초자치단제장 출신인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과 친분이 두텁다. 유 의원과는 19대 때 예결위에서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대표법안]
이 의원은 2012년 9월 지역구내 수도권매립지 등 악취배출시설 인근 주민들이 악취로 피해를 입자 ‘악취방지법 일부개정안’은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악취배출시설이 허용기준 이상의 악취를 반복적으로 배출할 경우 조업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과징금(1억원) 및 벌금(300만원) 규정도 강화했다. 이 의원의 적극적인 입법화 노력으로 2014년 2월 위원장 대안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 개정으로 악취배출시설 인근 주민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평가다.

[요!주의]
이 의원은 4.13 총선에서 청라시티타워 및 루원시티 개발, 인천시청사 유치, 제3 연륙교 건설, 도시철도 7호선 청라 연장 등 대형개발사업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최근 인천시가 새 청사 부지로 현 남동구 구월동 부지를 결정하면서 인천시청사 유치는 사실상 물건너갔다. 청라시티타워 개발사업 역시 사업자선정에 잇따라 실패하는 등 지지부진한 상태다. 공약으로 내건 이들 대형개발사업의 이행 여부에 따라 향후 이 의원의 정치적 기반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프로필]
△1964년 인천 서구 출생 △부평고 △서울대 농과대학 축산학과 △중앙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민선 3•4기 인천 서구청장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박근혜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 △새누리당 인천시당위원장 △9대 대한카누연맹 회장 △19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 △18·19·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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