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레터]김종인의 25년 전 대선 캠프 사무실

[the300]1992년 대선 출마 준비 후 25년만에 대선 캠프 사무실 마련

김태은 기자 l 2017.03.27 08:35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우리미래 정책토론회'에 방송인 김제동 씨와 참석하고 있다. 2017.3.1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물은 인물이다. 군인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경제수석을 제안받고 각서를 요구했다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말이다. '경제민주화'를 향한 의지였든 '1인자'마저 휘두른 배포였든 걸출한 능력이야 인정해야할 것 같다.

 

각서를 받아내면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했던 말이 더 걸작이다. “당신은 군사정권에서 민간정권으로 이양하는 과도기정권의 역할을 잘 수행한 후 50대 지도자에게 정권을 넘기도록 하라.” 1940년생인 김종인 전 의원의 당시 나이가 갓 50세를 넘겼던 때다. 대통령에게도 전권을 행사했던 그가 스스로 1인자를 욕심내지 않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정권을 넘기라는 말까지 수락했던 것으로 여겼던 것일까. 김 전 의원은 1992년 경제수석에서 물러난 후 실제 그해 12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 준비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당시 김 전 의원과 함께 일했던 한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김 전 의원으로부터 대선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이 서울 시내 빌딩 한 층을 통째로 빌려 대선 캠프 사무실까지 마련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전직 청와대 수석은 지난해 이미 김 전 의원의 대선 출마를 예견하며 "대통령에 대한 김종인의 바람은 25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의원이 25년 만에 또다시 대선 출마를 위한 사무실을 마련하는 모양이다. 여의도 대하빌딩 5층에 약 80평 규모의 공간을 마련, 이번 주 초·중반께 입주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선 캠프' 성격이냐는 질문에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며 발뺌을 하면서도 직접 주자로 나설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 때 가서 생각해볼 수 있다"며 여전히 여지를 남겨놓았다. 

 

대선 출마를 꿈꾸며 사무실을 마련하는 그의 모습은 25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25년 전에는 대통령 후보 자리를 권력 1인자인 대통령에게 달라고 요구했다면 25년 후인 지금에는 잠재적 후보들을 만나 직접 넘겨달라고 직거래를 하게 된 정도가 변화라면 변화일 거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한 직후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을 만나서는 대선에 나서지 말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도 사실상 자신을 지원할 것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타까운 것은 대통령 자리에 대한 인식이다. 정치인들간 결단이면 가능하다고 볼 뿐 선거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선택받는 자리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 듯 하다. '반 문재인'이든 '비패권지대'든 정말 국민들에게 필요하고 그것을 실천할 장본인이 본인이라면 경선을 통해 당당하게 국민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 수순인데 김 전 의원은 '나를 후보로 추대하면 권력을 나눠주겠다'는 식이다. 

 

물론 1992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된 사람은 김종인이 아니라 김영삼이다. 김 전 의원의 대선 출마 준비는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이유야 물을 것도 없다.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에게 각서로 전권을 요구해 넘겨받듯 얻는 자리도, 대선 후보들이 모여 추대해서 오를 자리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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