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자민련'의 전조…"대구로, 대구로"

[the300][보수의 몰락-③멋없는 보수(上)]TK 패권 둘러싼 당권투쟁 매몰…보수 리더의 'B급 정치인'化

김태은 기자 l 2017.12.14 04:40




20대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던 2015년 6월.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대구행을 선언한다. 국회의원 세 번, 도지사 두 번을 지내며 정치적 기반을 쌓은 경기도를 떠나겠다고 외쳤지만 아무도 ‘결단’으로 부르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텃밭, 따뜻한 아랫목에 의탁해 남은 정치여생을 보내겠다는 ‘욕심’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80년대 노동운동의 신화적 인물, 보수정당 내 개혁인사의 상징, 행정 능력을 갖춘 대선주자 등을 뒤로 한 채 그는 대구 수성갑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으로 총선을 준비했다. 평가는 냉혹했다. "통 큰 정치를 추구하는 거물 정치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역주의에 기대 눈앞의 당선에만 급급한 'B급 정치인'으로 전락했다."


김 전 지사 뿐일까. 서울 한복판 동대문구에서 '모래시계 검사'로 각광받으며 정치를 시작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행보도 비슷하다. 서울 지역에서 5선에 실패한 후 영남으로 내려가 경남지사를 지내더니 당권을 쥔 후 "대구 당협위원장을 맡겠다"고 속마음을 드러냈다. 내년 재보선의 최대격전지 서울 송파을 출마를 거부하면서까지 그가 욕심을 내고 있는 곳은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의 대구 달서병이다.


'홍준표 저격수'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당장 일침을 날렸다. "지방선거라든지, 보수를 살린다든지 이런 생각은 없고, ‘어떻게 국회의원 한 번 더 해볼까’ 하다가 대구 샛문을 찾은 것이다." 자유한국당 내 의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의 '개혁보수'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친 이유도 'TK(대구경북) 지역주의' 한계에 갇힌 때문이다. 보수 인사들에게 대구·경북은 핵심 지지기반이다.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한 견고한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텃밭에 매일수록 확장성은 떨어진다.





보수정당 리더들의 목표는 ‘대한민국 지도자’가 아닌 'TK 맹주'인 듯 하다. 보수 정치인들의 현주소다. 현재 자유한국당이 명맥을 잇고 있는 보수정당은 '3당 합당' 이후 호남 지역을 제외하면 전국 정당의 위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두 보수정권이 연속으로 정권을 잡는 동안 당내 역학구도는 'TK 패권' 강화로 흘러왔다. '공천이 곧 당선'인 TK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잡고 당내 패권을 만들었다. 이는 미래 권력 창출로 이어졌다.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 드러난 새누리당의 '진박(진짜 박근혜) 공천' 파동은 ‘TK 패권’의 끝판을 보여줬다. 이런 당내 역학 구도 탓에 보수정당 내 권력 투쟁은 저급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 가치와 담론을 중심에 둔 생산적·발전적 논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보수정권 9년간 우리가 목격해온 것은 ‘친이(친이명박) VS 친박(친박근혜)’, ‘친박 VS 비박’의 싸움 뿐이다. 권력 투쟁을 미화할 만한 명분조차 없었다. 지지자들조차 이들을 향해 ‘보수가 아니다’라고 부인하게 된 배경이다.


홍준표 체제의 한국당이 보수 통합을 추진하지만 'TK 패권' 집착 기류는 여전하다. 홍 대표의 대구행 선언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무너져가던 보수정당을 추스렸다고 자부하는 대선주자의 포부치고는 너무 '소박'하다는 평가다. 한국당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전문가는 "결국 'TK 맹주'가 돼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구(舊) 친박계는 비홍(비홍준표)계를 만들어 홍 대표의 'TK 패권' 장악 의도에 맞설 태세다. 이번에도 보수의 가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없다. 지켜보는 국민들의 눈에 '보수'가 멋져 보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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