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체류지위 불안정 때문에 성폭력 노출"

[the300]이주여성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토론회 열려

이상원 인턴기자 l 2018.10.17 17:22
17일 국회에서 '이주여성 성폭력 피해현황과 체류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사진=이상원

사례1: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A씨의 남편 B씨는 자녀 양육을 도우러 한국으로 온 처제 C씨를 강제추행했다. A씨는 자신의 여동생인 C씨가 성추행 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아이들 양육 문제로 남편B와 이혼할 수 없었다.

사례2: 이주여성 D씨는 고용허가제 비자로 입국하였으나 사업주가 외국인 등록을 해주지 않아 5년 동안 미등록 상태로 국내에 체류했다. 이후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던 중 여자 화장실에서 몰래 카메라를 발견했다. 카메라는 사업주 E씨의 아들이 설치한 것으로 E씨쪽에서 합의를 요구했다. D씨는 경찰에 이를 신고하고 싶었으나, 미등록을 이유로 강제 출국될까 두려워 합의 의사를 밝혔다. 

한국 내 이주여성이 일상적인 성희롱·성폭력에 노출돼 있지만, 체류상 지위 때문에 피해 구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17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등이 국회에서 개최한 '이주여성 성폭력 피해현황과 체류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선 이주 여성들이 실제 겪은 피해 사례가 소개됐다.

정 의원이 이날 공개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이주여성은 광범위한 성범죄에 노출돼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27.9%는 성행위를 강요당했고, 24.5%는 성적수치심을 들게 하는 언동 등 성적 학대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 이주여성의 피해도 심각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실시한 '제조업 분야 여성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제조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여성의 11.7%가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같은 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시행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의 12.4%이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주여성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상담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사례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의 상담내용 중 성폭력 피해 관련 상담은 3%에 그쳤고 외국인인력지원센터의 전체 상담건수 중 성희롱·성폭력 상담이 차지하는 비율은 0.04~0.01%에 불과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조현숙 변호사는 "이주여성들이 상담이나 신고를 꺼리는 이유가 체류 지위의 불안정함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결혼 이주여성의 혼인이 단절될 경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체류기간의 연장이나 자격 변경, 국적취득의 기회를 박탈 당하기 때문이란 게 조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체류기간 연장 및 간이귀화 신청 시 귀책사유를 없애고 결혼이주민의 체류불안정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남수경 변호사는 현재 미국에서 시행 중인 젠더폭력 피해 이주여성을 위한 구제 제도를 소개했다. 남 변호사는 "현재 미국 정부는 성폭력을 겪는 이주여성이 체류신분을 확보할 수 있도록 'VAWA 셀프 퍼티션', 'U비자', 'T비자' 제도를 운영중이다"며 "우리나라도 다양한 구제책이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VAWA 셀프 퍼티션은 배우자에게 학대당하는 이주여성을 보호하고 스스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임시영주권을 지닌 이주여성도 배우자에게 학대와 폭력을 당했고 결혼이 영주권을 위한 위장결혼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면 가해 배우자의 도움 없이 영구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U비자는 성폭력 가해자가 결혼관계인 배후자가 아닌 친족, 직장상사 등 제3자인 경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제방안이다. U비자를 받은 여성은 4년간의 합법 체류자격을 얻고 노동허가증을 발부받는다. 일정 조건을 갖추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고 영주권 취득 후 5년이 지나면 국적 취득도 가능하다.

정 의원은 "이주여성 인권보호를 위한 종합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여전히 이주여성 성폭력 피해와 체류권 문제의 깊이 있는 개선방안이 마련되고 있지 못하다"며 "성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법제도 정비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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