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vs나경원의 '냉정과 열정사이'

[the300]원내대표선거 D-1, '김·나'가 걸어온 길

우경희 기자 l 2018.12.10 15:59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후보인 김학용 의원(왼쪽)과 나경원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국가재조포럼 토론회 '인공지능(AI)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2018.12.1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초의원vs법조인

#28살 청년 김학용(현 3선 의원, 경기안성)은 늦깎이로 중앙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고향 지역구(안성) 의원인 이해구 의원(13, 14, 15대 국회의원) 비서관이 그의 첫 명함이었다. 낭중지추였다. 서민적 면모와 성실함을 인정받은 그는 4,5,6대 경기도의회 의원을 지냈다. 마당발과 친화력은 여기서 키워졌다.

#나경원 의원(4선, 서울동작을)은 유명한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사법고시 24기로 판사의 길을 걸었다. 나 의원은 정계입문 계기로 장애를 가진 딸아이의 얘기를 한다. 초등학교 입학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엄마가 '판사'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교육청이 반응했다. 이를 보며 "편견과 차별을 없애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경기 안성vs서울 동작

#도의원 3선으로 입지를 다진 김 의원은 2008년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 안성시에서 18대 총선에 출마해 승리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2012년 19대, 2016년 20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김무성 의원이 당대표일땐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장형 당직을 주로 맡으며 내공을 다졌다. 

#나 의원은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여성특보로 정계 입문했다. 2004년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들어 이후 서울서 내리 4선(중구, 동작을)에 성공했다. 화려한 외모와 이력으로 초반부터 화제였다. 본인은 '무수리과'를 언급하지만 늘 부각되는 길을 걸은 '보수의 아이콘'이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6년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낙선하며 시련을 겪기도 했다.

◇탈당vs잔류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김 의원은 탈당을 결의했다. 미국에서 출마를 결심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염두에 둔 행보였다. 바른정당을 창당하고 보수혁신을 외쳤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힘없이 낙마했고, 김 의원은 다시 당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보수혁신의 방법론을 고민하기 시작한것도 이 때다. 이 고민은 첫 선출직 당직 선거 출마로 이어졌다. 

#나 의원도 탈당을 고민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끝까지 탈당 대오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신중함이 있었다. 반 전 총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도 결국 탈당 대오에 합류하진 않았다. 결국 반 전 총장이 낙마하면서 신중함은 득이 됐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중도를 표방하면서도 구 친박(친박근혜)계의 지지를 얻게 된 배경이다.

◇열정vs냉정

#김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 기간 동안 '어디에도 있는 김학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본인 표현대로 "가스처럼 스며드는 매력"이 최고의 장점이다. 정부여당과 각을 세울땐 세우면서 당내 의원들, 내지는 보수진영 전체를 아울러야 하는 한국당 원내대표 후보로 나서는 상황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이다. 탈당으로 대변되는 보수혁신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도 세일즈 포인트다.

#나 의원의 최대 강점은 이지적인 판단력이다. 지지율은 회복 국면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자유한국당과 보수진영의 앞날은 안갯속이다. 원내지도부의 키를 쥐고 헤쳐나가야 할 길이 거칠고 험하다. 중도와 친박을 아우르는 지지 진영 구성도 나 의원의 장점이다. 특정 계파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도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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