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前 '불법 배상' 빠진 한일협정…'1965년 체제' 극복 과제

[the300][런치리포트-최악의 한일갈등]① 첫단추 잘못 꿴 일제식민 피해 배상문제...강제징용 판결에 日보복

오상헌 기자, 권다희 기자 l 2019.07.17 18:00
【오사카(일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2019.06.28. pak7130@newsis.com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감싼 역대급 태풍의 진원지는 과거사, 강제징용 문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국제법(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으로 규정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우리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자 수출규제 등 초유의 경제보복 조치를 꺼내 들었다. 

최악의 한일 갈등의 근저에 일본 식민지배의 성격과 역사인식을 둘러싼 뿌리깊은 이견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충돌이 54년 전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관계를 떠받쳐 온 ‘1965년 체제’의 한계를 극명히 노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한일관계의 전면적 재설정과 미래지향적 새 협력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정치 타협, 태생적 한계'

강제징용 개인배상 문제의 근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연합국 48곳)과 패전국(일본)이 1951년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은 영국의 반대로 대만(당시 자유중국)과 함께 전승국에서 배제돼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대신 한일 간 재산 및 청구권을 ‘특별 조정(special arrangement)’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배상’의 전제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받는 법적 권리 자체를 부여받지 못한 것이다.

후속 조치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은 이런 태생적 한계를 안고 태어났다. 14년에 걸친 협상 끝에 일본은 한국에 ‘경제협력자금으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지급’(협정 제1조 1항)하기로 했다. 협정문에는 ‘양국간,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제2조 1항)는 내용도 담겼다.

식민지배로 이어진 1910년 강제병합조약 등에 대해선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모호한 표현이 반영됐다.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합의도 없었다. 부실하고 모호하게 정치적으로 타협한 셈이다. 수교 당시의 국내 정치적 상황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961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반대 여론에도 한일회담을 적극 추진했다. 경제 성장을 위해 일본 자금이 절실하다는 명분이었다. 국민적 합의없이 체결한 만큼 한일 협정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다.

◇2005년 민관 공동위 "강제징용 배상 해결됐다고 봐야" 

한일 청구권 협정의 세목이 공개된 건 40년 만인 2005년 노무현 정부 때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일 국교정상화 문서를 전면 공개하면서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와 이용훈 변호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한일 수교회담 문서공개대책 민관 공동위원회’(21명)를 구성해 교섭 과정을 검토했다. 일제 식민지배 피해 보상 문제 등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정부 위원 자격으로 공동위에 참여했다.

공동위 논의 과정에선 강제징용을 둘러싼 한일 갈등의 핵심인 국가간 조약(협정)이 개인청구권에 미치는 효력 논란이 이어졌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당시 ‘개인 청구권을 어떤 법리로 소멸시킬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공동위는 같은해 8월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 국가 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은 존재한다고 봤다. 하지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협정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달러는 개인 재산권, 조선총독부 대일채권 등 한국 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징용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됐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이런 입장을 사실상 유지해 왔다. 한일 사법부 판결도 비슷했다. 


◇2018년 대법원 "日식민지배 불법, 개인배상 소멸안돼"

대법원은 그러나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가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요지는 일본 식민지배가 불법이므로 강제징용도 불법이어서 피해자들의 위자료(손해배상) 청구권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바 없으므로 ‘불법성’을 전제로 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협정 대상에 포함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청구권도 모두 소멸됐다”는 일본 정부와 피고(신일철주금)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양국 간 합의(협정)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자 개인이 상대 회사에 가지는 민사적 권리는 남아 있다는 것이 한국 대법원의 판례”라며 “양국간 합의가 개개인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확정 판결 후 “사법부의 판단에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며 일본 정부가 주장한 “국제법 위반 시정”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1965년 체제'의 종언…한일관계 '새로운 전환기'

강제징용 문제로 파생한 한일 갈등이 외교적 마찰을 넘어 경제·안보 등 전방위적으로 확전하면서 ‘1965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한일관계의 구조적·질적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리적 인접성과 경제·안보 협력에 기초한 우호적 양국관계가 뿌리까지 흔들렸다는 점에서다. 정치와 경제, 과거와 미래를 분리해 갈등과 마찰을 완충해 온 전통적 한일관계도 일본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한일 문제를 과거사 갈등 차원에서 접근하던 정부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일관계의 전면 재설정 검토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여당은 지난 16알 당청 연석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공세 배경에 대해 “한일 과거사 문제와 한국 경제발전에 대한 견제, 남북관계 진전과 동북아 질서 전환과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고 결론내렸다. 외교부 당국자도 “표면에 나타나는 것(강제징용·경제보복)만 수습할 게 아니라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기조를 생각하고 한일관계를 더 잘 관리하는 방안에 대해 준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최은미 일본연구센터 교수는 “식민지배와 냉전을 거쳐 구축된 한일 관계가 국제사회 환경 변화와 강대국 세력 전이, 양국 국력 변화와 경제력 상승 등으로 관계 설정의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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