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선봉장 김현종-야심가 폼페이오-메신저 최선희

[the300][남북미 협상가 사용설명서]

김성휘 기자,권다희 기자,최태범 기자 l 2019.09.05 04:01

편집자주 북미 교착·대치와 한일 갈등, 한미 관계의 이상기류 속에서 남북미를 대표해 전면에 나선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주목받고 있다. ‘카운터파트’ 관계는 아니지만 세 나라 정상의 ‘복심’을 자처하며 ‘강경론’을 주도하는 인물이란 공통점이 있다. 최 제1부상과 폼페이오 장관은 협상 재개를 모색하는 북미간 기싸움과 설전을 주도하고 있다. 김 차장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과정에서 대일·대미 강경 메시지를 사실상 전담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치열한 외교전의 중심에 서 있는 셈이다.

(왼쪽부터)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사진=뉴시스


①'극일·국익'으로 日공세-美설득…김현종의 종횡무진

‘국익’을 기초로 한 최근의 대일 공세와 수위 높은 대미 메시지의 중심에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종료 등 한일 갈등의 주요 변곡점마다 총대를 멘 게 김 차장이다. 지난달 22일 지소미아 종료 발표는 김유근 안보실 1차장(NSC 사무처장)이 했지만 다음날 상세한 의미 부여는 김 차장의 몫이었다.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을 위한 한미 관계도 김 차장의 업무다. 김 차장은 지소미아 종료 후 트럼프 행정부의 비판과 한미동맹 균열론의 대응도 도맡았다. 외교·안보정책의 ‘그립’을 강하게 쥐고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김 차장은 미국 컬럼비아대(정치학·법학)를 나와 세계무역기구(WTO) 소속 변호사를 거친 통상 전문가다. 참여정부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이끌면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강한 신임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초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다시 발탁된 이유다.
김현종 국가안보2차장/사진=뉴시스


지난 2월에는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안보실 2차장으로 이동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증된 김 차장의 대미 협상 경험과 능력, 네트워크를 높이 샀다고 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가장 중요한 대미외교 강화를 위해 미국을 속속들이 아는 김 차장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김 차장이 대일 공세의 선봉에 선 데에는 밀고당기기에 능한 협상가로서의 능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 행정부가 김 차장을 적잖이 까다롭게 여겼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극일 성향을 김 차장이 전면에 나선 배경으로 꼽는 분석도 있다. 김 차장은 노르웨이대사를 지낸 외교관 부친을 따라 일본에서도 생활한 적이 있다. 김 차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분석 결과) ‘한일 FTA’가 ‘제2의 한일 경제 병합’이 될 것이라고 보고 (협상을) 깼다”고 했다.

김 차장의 종횡무진 광폭 행보에 대한 우려섞인 시선도 있다. 청와대의 외교안보 정책이 지나친 낙관과 ‘감상적 민족주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국익을 명분으로 한 대등한 ‘한미동맹론’은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미국의 비판과 한미관계 파열음으로 암초를 만났다.

외교가에서도 “지소미아 파기는 미 조야에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킬 것으로 우려된다”(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는 말이 나왔다. 김 차장은 최근 스티브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만난 뒤 “(북미대화가) 곧, 잘 전개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지만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될 기미는 현재로선 감지되지 않는다.


②'대북 매파' 본색?…백악관 노리는 폼페이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차기 대권을 노리는 야심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따라 다니는 수식어다. 북미 대화를 앞두고 북한의 비난 세례가 폼페이오를 향해 온전히 집중되고 있다. 폼페이오는 북미 비핵화 협상의 지휘자로서 대북 매파가 즐비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대화파’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협상 재개 국면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 발 물러선 사이 ‘대북 강경파’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불량국가, 제재, 인권 등 폼페이오의 대북 강경 발언은 끝이 없다.

폼페이오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요직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핵심 참모로 분류된다. 2017년 1월 트럼프 취임 직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임명됐고, 지난해 4월 트럼프와 잦은 불화설에 시달리다 경질된 렉스 틸러슨 전 미 국무장관의 자리를 꿰찼다. 북미 대화를 위해 물밑 정보라인이 활발히 가동되던 때다. ‘전 CIA 국장’이자 ‘현 국무장관’으로서 자연스럽게 대북협상의 선봉에 섰다. 서훈 국정원장, 김영철 전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남북미 3각 정보라인을 구축해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이끌었다. 지난해 방북 횟수만도 네 차례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폼페이오가 차지하는 역할과 위상은 독특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유화정책을 실행하는 협상가지만, 대권을 꿈꾸는 야심가로서 국내 강경 여론을 다독여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 사실 전력으로 볼 때 폼페이오는 북한에 비판적인 미국 보수세력의 주류에 속한다.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졸업 후 장교로 복무하다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공화당 4선 하원의원을 지낸 이력에서 드러난다. 장관 취임 당시에도 ‘대북 강경파’로 꼽혔다. ’대화파‘로 분류된 것은 외교 수장으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치적‘을 쌓는 참모역에 충실했던 결과로 볼 수 있다.

폼페이오는 최근 자신의 ’매파 본색‘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비핵화 불이행시 역사상 가장 강한 제재 유지(8월21일)”, “북한의 불량행동을 간과할 수 없다(8월 27일)”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북미 정상의 ’6.30 판문점 회동‘에서 북미 실무협상 재개에 합의한 이후 오히려 더 날이 서 있다. 북한의 맹공을 받는 이유다. “미 외교의 독초’(리용호 외무상), “북미 대화 기대가 사라져가고 있다”(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의 반발을 불렀다.

폼페이오의 ‘악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도우려는 측면도 있다. ’굿캅‘인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한 ’배드캅‘의 역할이다.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유도하려는 ’압박‘이기도 하다. 동시에 미국내에서 대북 유화정책에 대한 비난 여론을 완화하는 임무로도 해석된다.

폼페이오의 강경 발언에 대한 다른 분석도 있다. 폼페이오는 2024년 예정된 미 대선에서 ’차차기 주자‘로 꼽힌다. 내년 상원의원 선거나 2022년 고향인 캔자스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대권 행보를 준비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트럼프의 신임과 공화당 내 우호적인 평가가 대권 도전설을 떠받치는 배경이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장관‘ 폼페이오를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시키고 싶어하는 공화당이 줄다리기 중“이라고 보도했다.

스스로도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폼페이오는 7월 말 대선출마 의향을 묻자 ”미국을 위해 하지 않을 일이 없을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지난달 말엔 공화당 큰손들이 대거 참석한 행사에도 참석했다. 거취 질문이 나오자 ”여기 남아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지만 대선 출마설은 끊이지 않는다.


③김정은의 '메신저'…北권력 핵심부 진입한 최선희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사진=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심중을 꿰뚫고 전폭적인 신임을 받으면서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다. 

남성 일색인 북한 외교가에서 비교적 젊은 여성이 협상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최 부상이 내놓는 거침없는 표현들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 영전을 거듭한 그가 북한 권력구조에서 갖고 있는 위상을 실감케 한다.

최 부상은 지난달 31일 자신 명의 담화에서 '북한의 불량행동'을 거론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향한 비난과 함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의 인내심을 더 이상 시험하지 말라”며 대미(對美) 비난의 최전선에 섰다.

특히 최 부상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떠밀고 있다”고 있다. 2017년 말 이후 중단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대형 도발을 재개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대미 파트에서는 최 부상이 상관인 리용호 외무상 보다 실권을 쥐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리 외무상의 지난달 23일 담화가 ‘미국 외교의 독초’ 등 폼페이오를 향한 맹비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최 부상의 담화는 북미협상에 대한 김 위원장의 뜻이 담겼다는 평가다.

외교가에선 최 부상을 두고 ‘김정은의 입’,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비핵화 문제와 대미 관계에 있어서는 최 부상이 그 누구보다 김 위원장의 의중을 꿰뚫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 부상은 지난 2월 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당일 밤 기자회견에서 “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조미(북미) 거래에 대해 좀 의욕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자신의 입을 통해 전한 것이다.

최 부상은 지난해 6.12 북미정상회담 취소의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별다른 질책은 받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최 부상이 지난해 5월 23일 개인명의 담화에서 ‘정상회담 재검토’라는 으름장을 놓자 이튿날 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하며 맞대응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통한 담화와 김영철 당시 통일전선부장의 워싱턴 방문을 통해 첫 정상회담을 다시 본 궤도로 올려놨다. 이후 2차 북미정상회담 때는 김혁철이 실무협상을 주도하며 최 부상은 한발 물러났다.

최 부상은 2차 북미회담 결렬 이후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지난 3월 평양에서 긴급회견을 열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대화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핵·미사일 시험 중단(모라토리엄)’의 종료를 언급하며 본격적인 등장을 알렸다.

1964년 태어난 최 부상은 엘리트 가문인 최용림 북한 내각 총리 집안의 양녀로 입양됐다. 중국과 오스트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공부해 수준급의 영어·중국어 실력을 쌓았고 1980년대부터 외무성에서 근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말부터 북미회담 및 6자회담에서 통역을 담당한 이후 주목받기 시작해 2003~2008년 진행된 북핵 6자 회담에서 북측 수석대표의 통역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대미 협상에 뛰어들었다. 김 위원장의 영어 통역 담당으로도 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외무성 북미국장에 발탁돼 북미 물밑접촉을 도맡아 왔으며 2018년 부상 자리에 올랐다.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제1부상으로 승진한 것은 물론 국무위원회 위원, 외교위원회 위원으로도 선임되며 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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