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진열대에 '그을린 폐'…우리나라도?(종합)

[the300][담뱃갑 위의 전쟁]

김세관 박경담 기자,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 l 2015.02.10 09:50



2012년 어학연수 차 캐나다에 머물렀던 흡연자 A씨는 당시 담배를 구입하면서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1갑에 1만원 육박하는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포장지에 새겨진 경고 그림이 놀라웠다. 


담배 포장지에 깨끗했던 선분홍색의 사람 폐가 흡연으로 인해 검게 변한 사진이 담겨 있었다. '담배는 치명적인 폐 질환을 유발한다'는 경고 문구는 덤이었다. 담배를 피려 꺼낼 때마다 보이는 검은 폐가 자신의 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끽연'의 쾌감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여야, 2월 임시국회서 '흡연경고 그림 도입 의무' 검토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편의점 계산대 뒷면에 위치한 담배 진열대에서 '검게 그을린 폐', '폐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사진', '구강암에 걸려 뒤틀린 사람의 혀', '식도암에 걸린 사람의 얼굴' 등 흡연으로 인한 폐해 경고 그림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회의 해당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가 이달 중 임시국회에서 담배 포장지에 흡연 경고 그림을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복지위는 9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복수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로 회부했다. 회부된 법안은 대부분 세계보건기구(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이 권고하고 있는 대로 담배 포장지와 광고에 경고그림이나 경고사진을 표기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고그림, 사진, 문구가 담뱃갑 넓이의 50%이상을 차지하도록 하고, 담배 포장지 및 광고에 '마일드', '라이트', '저타르', '순' 등 소비자를 오도할 수 있는 문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복지위는 10일부터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흡연 경고그림 도입 관련 법안들에 대한 심의에 나설 방침이다.  

복지위 야당 간사인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날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흡연경고 그림 도입 의무화가 금연에)실효성이 있는지, 흡연자 권리와 관련한 법적인 문제는 없는지 등등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복지위 여당 간사인 이명수 의원도 "김재원 의원이 2013년 이미 발의한 법안 등 여러 건이 법안소위로 회부됐다"며 "앞으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2월 논의는 확실, 통과 여부는 미지수

흡연 경고그림 게시 관련 법안은 2002년 이후 11차례나 발의됐지만 번번이 폐기 처분됐다.

지난해말 정기국회에서는 거의 현실화 단계까지 가기도 했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당시 담뱃값 2500원 중 354원을 차지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841원까지 올리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흡연경고 그림을 담배 포장지에 의무적으로 집어넣는 비가격 정책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세입예산 부수법안으로 본회의에 자동부의됐고 흡연경고 그림 도입도 함께 처리되는 상황이 연출될 뻔 했다. 그러나 정의화 국회의장이 예산과 관련 없는 비가격 금연 정책이 상임위의 충분한 검토 없이 예산 부수법안으로 본회의에 올라오는 것은
법적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하면서 이를 제외한 채 담뱃세 인상안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당시 법 개정 과정에서 빠진 담배 포장지에 흡연 경고 그림을 부착하는 방안을 빠른 시간 내에 논의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그러나 아직도 여야 모두 내부 이견이 남아 있어 조율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명수 의원은 "혐오스러운 그림들이 담배를 판매하는 곳에 전시가 됐을 때의 사회분위기도 생각해 봐야 한다든지, 담배 디자인을 조정하면 되는데 꼭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당내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주 의원은 "실효성이 있는지, 흡연자의 기본 권리를 해치지는 않는지 등의 내부 반론도 있어 들어봐야 한다"며 "법안을 감정에 따라서 할 수는 없고 손해를 보는 입장에서 다뤄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담배 회사의 로비가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피해 보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사활을 건 문제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담배 성분 표시의무 강화' 법안 봇물
 
 

 
 
담뱃갑에 흡연경고 그림을 부착토록 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이 답보상태인 가운데 발암물질 성분표시등 다른 '비가격 금연 정책'과 관련된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양창영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2일 담배에 포함된 발암물질 성분을 담배 포장지에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물론 현행 담배사업법에도 담배 포장지나 광고에 담배 1개비 연기에 포함되는 '주요 성분'과 함유량을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성분을 규정하지 않고 '주요 성분'이라고만 명시돼 있다. 담배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타르'와 '니코틴'만 표시하는 상황이다. 

'주요 성분'으로 돼 있는 법안 내용을 '국민건강증진법 상 발암물질(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로 바꿔 보다 많은 성분의 함유량을 흡연자들이 알 수 있게끔 한다는 게 법안의 주된 내용이다.

양 의원은 "흡연율 감소와 청소년의 흡연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격정책과 함께 비가격정책을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며 "담배에 포함된 발암 물질을 표시하도록 해 흡연 억제 및 금연을 유도하고자 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한 술 더 떠 담배에 포함된 4000여 종의 유해성분과 그 위험도에 대한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법 제정도 추진되고 있다. 음식이나 화장품,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담배의 안전성도 정부 관리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안철수 의원이 준비 중인 '담배제품안전관리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안'은 △시판전 심사 △성분 정보 공개 △성분 정기검사 등을 의무적으로 받고 공개해야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담배 제조 회사들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9년 6월 '가족흡연예방 및 담배규제법'이 제정돼 식품의약국(FDA)에서 새로운 담배 제품에 대한 시판 전 심사 및 담배 정보 공개를 시행하고 있다.

한편 복지위 소속 신경림 새누리당 의원은 보다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 금연 효과를 노리고 비흡연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지난해 6월 발의했다.

금연 건물 주변 10m 이내에서는 건물 밖이라도 담배를 피울 수 없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신 의원은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방지와 금연환경을 조성해 국민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자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경고그림 붙이면 흡연율 하락?…정부 vs 업계 '갑론을박'
 
 
담뱃갑 경고그림은 가장 강력한 흡연 정책 중 하나로 여겨진다. '검게 그을린 폐' 등 흡연에 따른 질환을 담은 그림이 흡연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경고그림 도입을 추진 중인 정부는 담뱃갑 디자인이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어 관련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경고그림 도입 시 흡연율이 4% 하락할 것으로 내다본다. 흡연자의 금연을 유도하고 청소년 등의 흡연 시작을 억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경고그림이 담뱃갑에 적힌 경고문구의 이해도를 높일 것으로 예측했다. 복지부는 이미 경고그림을 시행하고 있는 해외 국가의 흡연율 하락을 근거로 들었다. 

2001년 경고그림을 담뱃갑에 넣은 캐나다가 대표적인 사례다. 복지부에 따르면 캐나다는 경고그림 도입 직후 흡연율이 떨어졌다. 2000년 24%였던 캐나다 흡연율은 경고그림을 도입한 2001년 22%로 하락했다. 하락 추세는 이후 6년 동안 계속돼 2006년 흡연율은 18%까지 내려갔다.

경고그림은 캐나다 청소년(15~19세)에게 더 효과적이었다. 경고그림 도입 직전 캐나다 청소년의 흡연율은 25%로 전체 흡연율보다 높았다. 이 수치는 경고그림 제도를 실시한 2001년 22.5%로 하락했다. 2006년에 캐나다 청소년의 흡연율은 총 흡연율보다 더 낮은 16%까지 낮아졌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담뱃갑 경고그림은 담배소비량 감소, 금연 유도, 금연 동기 유발 효과가 입증됐다"며 "캐나다의 경우 청소년 90% 이상이 흡연의 폐해를 담뱃갑을 통해 알았고 비흡연 청소년의 20%가 경고그림이 흡연을 시작하지 않게끔 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담배업계는 경고그림에 따른 흡연율 하락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캐나다의 경우 흡연율 하락이 반드시 경고그림 도입에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다.

업계에 따르면 캐나다의 경우 경고그림 도입 후 연평균 흡연율 하락폭이 오히려 줄었다. 경고그림 도입 전 캐나다의 연평균 흡연율 하락폭은 1.0%포인트(p)수준이었다. 그러나 경고그림을 도입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흡연율의 연평균 하락폭은 0.8%p에 그쳤다.

업계는 또 같은 기간 경고그림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의 흡연율 하락폭이 캐나다보다 컸다는 데 주목한다. 2001년~2006년 기간 중 우리나라의 흡연율은 30%에서 23%까지 하락해 캐나다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업계는 경고그림이 정서적 반감을 살 수 있다고도 지적한다. 자극적인 그림을 사용하면 비흡연자의 감정적 피해를 유발한다는 것. 기업의 표현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업계의 주된 반대 논리다. 
 
 

담뱃갑 디자인 단순 통일했더니 흡연율이…

 

 

"모든 담배제품의 포장에는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메시지를 부착해야 하고, 경고메시지의 크기는 담뱃갑 전체 면적의 5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제11조의 한 조항이다. '담배제품의 포장 및 라벨'에 관한 규정을 담은 이 조항은 전세계적으로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만들어졌다. 담뱃갑 경고그림은 비가격 정책임에도 담뱃값 인상과 같은 가격 정책과 함께 강력한 흡연 정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세계 180개국(2014년 말 기준)이 FCTC 비준국으로 가입한 가운데 실제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삽입한 국가는 77개다. 비준국으로 가입하면 협약 채택 3년 내에 준수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담배회사들과 흡연자들의 반대로 전면 실시되고 있지는 못하다. 우리나라 역시 2005년 비준국으로 가입했지만 경고그림 도입은 국회 문턱에서 번번이 가로막혔다. 

담뱃갑 경고그림을 도입한 국가들은 대부분 흡연율이 떨어졌다. 경고그림은 △건강정보 습득 후 흡연자의 금연 결정 △청소년의 흡연 시작 예방 △금연상담전화 이용 증가 등의 효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는 금연 정책이 가장 활발한 국가 가운데 하나다. 2006년 경고그림을 담뱃갑 앞면에 30%, 뒷면에 90% 수준으로 넣은 호주는 금연상담전화가 한해 8만통(2005년)에서 16만5000통(2006년)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비흡연청소년의 3분의 2 이상이 경고그림을 통해 흡연을 예방한 효과가 있다는 학계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호주는 경고그림에 더해 2012년 '단순 담뱃갑 포장법(Plain Packaging)' 을 실시했다. 담뱃갑 디자인의 크기, 모양, 색깔, 글씨체를 회사 구분 없이 같게 했다. 흡연율은 15.1%(2010년)에서 12.8%(2013년)까지 크게 하락했다. 소비자 구매욕을 자극하는 담뱃갑의 디자인을 통일시켰더니 금연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단순 담뱃갑 포장법'은 지난해 프랑스에서도 도입돼 시행 중이다.

2002년 경고그림을 도입한 브라질은 31%에 달했던 흡연율(2000년)이 2003년 22.4%로 떨어졌다. 브라질은 특히 여성 흡연율이 26.9%(2000년)에서 18.4%(2003년)로 크게 낮아졌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태국이 대표적인 경고그림 도입 국가다. 태국은 2006년 세계에서 가장 큰 경고그림 사이즈(85%)를 담뱃갑에 적용했다. 그 결과 53%가 건강 위험을 더 인지하고 흡연자의 44%는 금연 의지가 강해졌다는 게 국제금연정책 평가프로젝트(ITC Project)의 조사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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