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냐? 은폐냐?…'스캔들'에 대처하는 정치인의 자세

[the300][웨스트윙으로 읽는 한국 정치 ④]

박경담 기자 l 2015.08.15 12:05

편집자주 웨스트윙은 지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방영된 미국 정치 드라마다. 가상의 민주당 대통령 제드 바틀렛 집권기 8년과 정권 재창출까지 다룬다. 생생한 정치 현장, 가치 논쟁을 다루는 이 드라마를 통해 한국 정치를 엿보고자 한다.


바틀렛 정부 존 호인즈 부통령/웨스트윙 화면 캡쳐


정치인에게 '책임'은 일반인들에 비해 더 큰 무게감을 갖는 단어다. 정치인은 더 많은 권한 만큼 더 큰 책임을 떠안게 된다. 지도자가 요구받은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데 따른 영향은 일반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과오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지느냐에 유권자들이 민감해 하는 이유다. 

미국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에서 바틀렛 행정부의 '넘버2' 존 호인스 부통령은 '스캔들' 한 방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사정은 이렇다. 백악관 법률 보좌관으로 첫 출근한 조 퀸시는 워싱턴포스트에 2건의 국가 기밀이 동시 유출된 사실을 발견한다. 정보를 빼돌린 자를 찾던 중 부통령이 연계된 사실이 밝혀졌다. 부통령이 내연관계였던 워싱턴포스트의 가십기자에게 기밀을 얘기했던 게 화근이었다.

불륜과 기밀 유출이 뒤섞인 희대의 스캔들 앞에 호인즈는 바틀렛 행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지고 부통령직에서 내려온다. 자신의 정치인생을 종결짓더라도 정권에 정치적 부담을 줄 수 없고 개인적으로 가족을 볼 낯이 없다는 이유였다.

스캔들에 스스로 책임을 진 호인즈와 달리 바틀렛 대통령은 자신의 병을 은폐해 훗날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다발성경화증을 앓던 바틀렛은 병력을 숨긴 사실이 드러나며 정권 유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세계적 명성의 의사이자 영부인인 애비 여사는 대통령에게 약을 주려면 주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법을 어기고 본인의 처방약을 줘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스캔들에 대처하는 방법만 본다면 유권자들은 바틀렛보다는 호인즈에 신뢰를 보낼 것이다. '새옹지마'라고, 바틀렛의 은폐가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면 호인즈가 사퇴 국면에서 쌓은 신뢰는 이후 차기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정치에 복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호인즈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선 중 또 다른 ‘섹스 스캔들’로 낙선했다.)

새누리당 여성 의원 모임 '새누리20'의 간사인 이자스민 의원을 비롯한 모임 소속 의원들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심학봉 의원 사태 대응을 위한 회동 결과와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새누리당 여성 의원들은 이 자리에서 검찰의 철조한 수사와 윤리특위 차원의 징계논의, 의원총회 소집과 재발방지책 논의, 공천·윤리준칙 강화 등을 국회와 당에 요구했다 .2015.8.7/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호인즈와 바틀렛의 사례를 보면 성추문 스캔들과 비리 스캔들에 각각 연루된 심학봉 무소속 의원(새누리당 탈당), 박기춘 무소속 의원(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이 연상된다.

국회는 윤리특별위원회를 열고 한 여성 보험설계사에 대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심 의원에 대해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이런 가운데 피해 여성은 경찰의 2차 조사에서 '성폭행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했다. 그럼에도 심 의원은 책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같은 당 동료조차 그에 대한 의원직 제명을 요구한 것은 혐의가 무겁기도 하지만 정치인에겐 그만큼 높은 수준의 책임 의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금품수수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박 의원은 13일 국회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기 전 국회 단상에 올라 "시대흐름에 둔감한 실수를 했다. 국회가 저로 인해 비판 받지 않기를 바란다"며 30년의 정치 여정을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죄질과는 별개로 책임지는 방식 만큼은 공감할 만한 대목이다.   

박기춘 무소속 의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36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자신의 체포동의안에 대한 신상발언을 마친 후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여야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처리한다. 2015.8.1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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