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여소야대 시대, 핵심 경제정책 해부 (4)탄력받는 최저임금 인상

[the300]종합

김세관 신현식 심재현 기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l 2016.04.28 09:18
與도 野도 '최저임금' 인상…1만원 시대 열리나?



최저임금은 산업혁명 이후 만연했던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 등의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1894년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도입됐다. 1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최저임금제도는 근로자들의 사회 기본권을 보장하는 대표적인 제도로 현재까지 120여개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3년 근로기준법에 최저임금에 근거를 두는 조항이 생기며 첫 선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는 경제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판단돼 운용되지 않다가 1988년(최저임금법 제정은 1986년)이 돼서야 본격 시행됐다. 당시 최저임금은 시간당 600원(1989년 적용). 경제상황과 물가 등의 반영으로 꾸준히 증가해 올해 최저임금은 6030원으로 약 10배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배경을 가진 최저임금제도는 올해 20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야당은 물론이고 그간 최저임금과 관련해 소극적이었던 여당까지 총선 공약으로 최저임금 인상안을 내놓으며 경쟁에 불을 붙였기 때문이다. 

각론은 다르지만 모든 정당들이 9000원~1만원의 가량의 인상안을 공통적으로 제시 중이다. 특히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이 제안한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도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새누리 2020년까지 8000~9000원 '진일보'=최저임금 인상안이 총선 이슈 중심에 선 이유는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그동안의 소극적인 입장에서 진일보한 내용을 총선 공약으로 제안해서다. 

올해 6030원인 최저임금을 20대 국회 임기 중(2020년 5월) 8000~9000원 수준으로 인상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일정한 목표 소득에 모자라면 정부가 근로장려세제(EITC)를 통해 부족분을 채워주는 방안도 공약에 포함돼 있다.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직접 피해를 막기위해 지역별·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그러나 혼선에 의한 비판이 적지 않다. 당초 공약에 없던 방안을 지난 3일 갑작스럽게 발표한 것부터 논란의 대상이 됐다.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9000원 수준의 인상안을 제시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조원동 경제정책본부장은 이틀 후 강 위원장의 말을 뒤집으며 "EITC를 늘려 9000원 인상 효과를 내겠다는 취지"라고 입장을 바꿨다. 

연평균 7.1%인 현재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유지해도 2020년이면 8000~9000원 수준이 가능함에도 굳이 공약으로 발표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찌감치 1만원 시대 주창한 더민주·정의당=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일찌감치 최저임금 1만원 인상안을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두 정당의 이 같은 입장은 2015년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 결정 과정부터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다만 두 정당의 최저임금 1만원 달성 목표 시점은 차이를 보인다. 더민주는 2020년, 정의당은 2019년이다. 여기에 더해 더민주는 자당 소속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 중인 생활임금제의 전국확산도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더민주와 정의당의 최저임금 인상안은 현재를 기준으로 연간 최소 13.5%의 금액을 인상해야 가능한 금액인데 이 같은 인상률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지급여력이 부족한 영세자영업자들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등의 방안들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의당 근로자평균소득 50%까지 인상=국민의당의 최저임금 공약은 당초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다. 그러다 3월부터 근로자평균소득의 50%까지 인상한다는 방안이 공개됐다. 새누리당과 비슷하게 EITC확대 필요성도 이즈음 함께 공약으로 등장했다. 

이후 총선을 일주일여 앞둔 5일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입장이 불쑥 등장했다. 아울러 국민의당은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아르바이트 임금체불과 최저임금 미지급을 인지했을 때 당사자 간 합의를 유도한 후, 그래도 시정되지 않으면 사법처리 절차를 개시하는 공약도 발표했다. 

국민의당의 경우 당초 공약집에는 최저임금 관련 내용을 담지 않았다가 해당 이슈가 총선의 중심에 떠오르자 정리되지 않은 내용들을 각자의 채널을 통해 백가쟁명 식으로 급하게 발표했다. 애초부터 고민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카드수수료만 고쳐도 소상공인 최저임금 인상 부담 줄어"



여야가 모두 최저임금 인상안을 총선 공약으로 내놨다는 건 현재 기준(6030원)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 동안 인상에 소극적이었던 새누리당마저 8000~9000원 수준의 공약을 제시한 만큼 최저임금 1만원 시대의 도래가 멀지 않아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1만원 논의에 앞서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들을 각 정당들이 외면해선 안 된다는 의견들도 제기된다. 최저임금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체제에서 국회가 법으로 어떻게 이를 강제할 수 있을지, 연평균 13%가 넘는 인상률(현재 연평균 7.1%)을 영세자영업자들이 버텨낼 수 있을지에 대한 대책이 인상안과 동시에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저임금을 법으로?…더민주·정의 '가능'VS국민 "독립성 훼손"=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규정된 최저임금을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더불어민주당은 국회가 권고안을 제시하고, 위원회가 이를 존중해 의결하는 방식의 법 개정으로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국회가 13.5%의 인상 권고안을 위원회에 제안하면, 위원회가 권고된 인상률을 따르도록 하는 내용을 명문화하겠다는 것이다. 정길채 더민주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은 "이미 정책위의장인 이목희 의원이 19대 발의한 법안이 있다"며 "19대에서 폐기되면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하겠다"고 말했다. 

더민주와 함께 최저임금 인상을 주도해 온 정의당도 목표치를 일시적으로 법으로 정하고, 특정시기까지 위원회가 이를 지키도록하는 법 개정안을 고려 중이다. 아울러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을 변경하는 방안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야당인 국민의당은 더민주·정의당과는 최저임금 법제화와 관련해 생각이 다르다. 최저임금 결정 메커니즘을 정치권이 결정하면 위원회의 독립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3년간의 평균 인상률 7.45%만 유지해도 2020년 1만원 가까이 된다는 점에 주목,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새누리당도 기본적으로 최저임금 결정은 국회가 아닌 위원회의 결정이라는 점에 국민의당과 뜻을 함께 한다. 조재정 새누리당 노동수석전문위원은 "최저임금은 위원회 결정에 따르되, 부족한 소득은 근로장려세제(EITC)로 보완한다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며 "법으로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야당에서 그러는데 법 개정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소상공인 대책…"가맹점 수수료만 제한해도 부담 크게 줄어"=최저임금 인상에 있어 인상률 강제 가능성 여부와 함께 논란이 되는 것이 영세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인상되면 직격탄을 맞는 것은 대기업보다 소상공인들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경영계의 의견을 반영해 지역별·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안을 총선 공약으로 제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야3당은 모두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소상공인들에게 더 큰 피해를 안기는 과도한 가맹점 수수료, 상가 임대차 보호 등의 대책을 주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의당은 상인들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하는 개선안까지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용신 정의당 정책위의장은 "근로자들 입장에서 임금도 올라야 하지만 상인들 소득이 오르는 것도 중요하다"며 "사회안전망 보완이 병행돼 종합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길채 위원은 "가맹점 수수료 제한하고 임대료 함부로 못 올리게 하면 최저임금 인상은 문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새누리당이 공약으로 제시한 지역별·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지급에 대해서는 야3당 모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이태흥 국민의당 정책국장은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중앙집권적 행정체제 전통이 강해서 국민 정서상 가능하지 않다"며 "도심은 물가 비싸다고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을 더 주고, 변두리는 낮춰 준다는 것에 대한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도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지급하긴 하지만 모두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임금 기준 이상을 주고 있다"며 "경영계와 여당의 공약은 특정 지역이나 업종에는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 이하로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이다. 미국과 반대여서 논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글로벌 최저임금 인상 바람 한국 상륙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적인 화두다. 영국은 의회에서 '생활임금'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해 최저임금을 지난 1일부터 시간당 6.5파운드(약 1만700원)에서 7.2파운드(약 1만1900원)로 올렸다. 5년 안에 이를 9파운드(약 1만5000원)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일본도 시급 1000엔(약 1만600원)을 목표로 올해부터 최저임금을 매년 3%씩 인상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오는 7월부터 최저임금을 20%가량 인상한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거세다. 미국 대선 자체가 최저임금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7.25달러(약 8500원)인 연방 최저임금을 12달러(약 1만3600원)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15달러(약 1만7000원)로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뉴욕주는 주 의회 결의로 지난달 10인 이상 대도시 사업장에 대해 2019년까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기로 법제화했다. 캘리포니아주도 최저임금을 2022년까지 15달러로 올리기로 했다.

자본주의의 파수꾼 IMF(국제통화기금)가 지난 2월 G20(주요 20개국) 회의에서 내놓은 보고서는 의미심장하다. 이 보고서는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감소 영향은 다소 과장됐다는 내용을 담았다. 거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생존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긍정적인 고용창출효과가 망하는 기업의 고용감소분을 채우고도 남는다는 분석이다.

일부 유럽 국가는 '기본소득제도'(국민배당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소득·재산·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이 음식비·주거비·교통비 등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도록 국가가 동일한 금액을 매달 지급해 하는 제도다. 스위스·핀란드·네덜란드가 보편적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는 6월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결정되면 성인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이 지급된다.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한 저소득층의 생활안정과 소비진작 시도가 이어지는 추세다. 이런 배경에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각국 의회의 권한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최저임금 결정에 국회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순 없다. 미국의 연방최저임금법처럼 상하원 심의를 통해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매년 최저임금위원회가 경영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해 심의한 뒤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최저임금에 직접 손을 대려면 3~4년 일몰기한을 정한 '최저임금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여야 합의로 최저임금 인상 로드맵을 작성하고 내용을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안에 반영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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