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의 정치상식]책임총리가 가능하려면①

[the300][우리가 잘못 아는 정치상식 40가지](8)국무총리라는 자리의 허구성

정두언(17·18·19대 국회의원) l 2016.12.28 11:27

편집자주 "권력을 잡는 건 언제나 소수파다"? 돌직구, 전략가, 엔터테이너... 수많은 수식어처럼 존재감을 뽐내는 정두언 전 의원이 흔한 정치상식을 깨는 신선한 관점을 머니투데이 the300을 통해 전합니다.

정두언 전 의원/머니투데이

8. 국무총리라는 자리의 허구성.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위시해서 국무위원을 임명하는 일에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지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국무총리에 대한 과도한 관심에 대해선 다소 냉소적이다.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권한을 행사하는 국무총리라면 관심의 초점이 되어야 마땅할 터이지만, 어차피 실질적으로는 그만한 정치적 의미가 없는 상징적인 총리에 대해서 무슨 그리 큰 기대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은 이렇게 사안의 본질은 안 보고 그냥 과거의 타성대로 사안의 껍질 또는 그림자만 봄으로써 오히려 국민들의 시야를 흐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선임된 총리후보들의 일성이 대체로‘대통령을 정확하고 바르게 보필하는 게 책임총리 아니겠느냐’를 보면 혹시나 했던 책임총리(언론에서 얘기하는 책임총리라는 개념이 내가 주장하는 '주어진 법적권한을 실제로 행사하는' 총리와 유사하다)의 출현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역시나 였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권한과 책임을 제대로 행사하려고 노력했던 ‘최고의 총리’는 김영삼정부 때의 이회창과 노무현정부 때의 이해찬 정도뿐일 것이다. 대통령중심제하에서 총리가 말 그대로 제 밥그릇을 챙겨먹으려면 그만큼 기가 센 사람이어야 할 것이며, 또 대통령 자체도 그런 사람을 등용할 정도의 그릇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방금 언급한 이회창, 이해찬 이외의 역대 총리들은 본인들의 생각이야 어떻든 의전총리, 대독총리, 방탄총리 이상의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국무총리가 법적인 권한이 보장된 책임총리가 되지 못하면 총리실 자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총리는, 다시 말해서 총리실은 대통령을 보좌하여 각 부서를 통할해야 하는데 각 부서를 통할할 권위와 수단이 없는 총리실이 무슨 수로 내각을 통할하겠는가. 권력의 핵심은 인사권과 예산권이다. 총리가 인사권과 예산권이 없는데 이름만 국무총리라 불러주고 의전만 갖추어준다고 내각이 통할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물론 대학과 언론기관 등에는 이런 분들이 부지기수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총리실은 누가 뭐라 해도 옥상옥이라 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있고 총리실이 있는데 누가 총리실 눈치를 보겠는가. 그런데 거쳐는 가야 한다. 옥상옥이란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국정질의에 대한 답변은 총리가 한다. 대부분의 주요 국정현안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하는 곳은 청와대인데, 책임은 총리가 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대통령에게 크게 정치적 부담이 가는 일이 발생하면 국무총리를 경질하는 걸로 국면전환을 하곤 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보장되어 있고, 총리는 형식적인 책임총리(책임만 지는)이다 보니 우리나라의 국정은 기본적으로 책임정치가 이루어지기 힘든 구조가 되어 버린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책임총리가 아닌 지금까지와 같은 통상적인 총리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국정운영의 비효율성, 무책임성은 결코 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국무총리제는 국정운영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많은, 반드시 개선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하고 싶다. 이런 나의 주장에 대해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행정부는 내각의 각 부처가 소관업무를 맡아 국정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거의 모든 사회문제는 복잡다기화 되어 있으며, 서로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다.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서 각 부처의 입장과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부처 간의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따라서 이를 통합 조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긴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을 어디에서 하겠는가. 총리실이나 청와대가 이런 일을 하는 곳이다. 총리실만 해도 내가 있을 때와 비교해보아도 조직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고, 인력요원도 무척 많아졌다. 그런데 총리실이 각 부처의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를 종합적인 관점에서 총괄·조정하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노(No)이다. 제도상의 인력과 기능은 있는데 앞서 주장한 바와 같이 인사권과 예산권 등 실질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국회에서, 학회에서, 언론에서 열리는 각종 국정현안에 대한 토론회를 가보면 주제 발표하는 사람이 내리는 결론 중에 ‘그 문제를 종합조정하는 기능이 필요하며, 그 기능을 수행할 기구를 신설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꼭 들어있다. 아니 그러면 총리실은 왜 있고, 청와대는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총리실과 청와대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면 그런 주장이 왜 거의 모든 토론회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하겠는가? 


더욱 문제는 총괄조정기능을 하라고 존재하는 총리실과 청와대가 버젓이 있는데도, 그와 별개로 각종 국정현안에 대해 총괄 조정하는 정부조직이 수시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모든 정부 때마다 예외 없이 각종 위원회가 신설되고, 테스크포스 기구가 신설되지 않았는가? 이런 사실이야말로 총리실과 청와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웅변해주고 있다. 총리실과 청와대가 제 역할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무총리가 책임총리로서의 역할을 못하면서 대통령을 대신하여 책임만 지는 그런 기만적이고 모순된 권력의 조직구조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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