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의 정치상식]당태종의 교과서, 적을 포용하라

[the300][우리가 잘못 아는 정치상식 40가지](4) MB 비서실장이 최경환이었다면

정두언(19대 국회의원) l 2016.12.22 05:41

편집자주 "권력을 잡는 건 언제나 소수파다"? 돌직구, 전략가, 엔터테이너... 수많은 수식어처럼 존재감을 뽐내는 정두언 전 의원이 흔한 정치상식을 깨는 신선한 관점을 머니투데이 the300을 통해 전합니다.

정두언 전 의원 인터뷰/머니투데이

4. 당 태종이 만든 정치 교과서­ 적을 포용하라.

MB가 대통령 후보가 된 직후의 일이다. 대선을 치르려면 선대위를 구성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선대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일단 비서실장을 임명하고, 비서실장이 책임지고 선대위를 꾸려야 했다. 정병국은 내게 최경환이나 김성조를 비서실장으로 추천했다. 경선에서 패한 친박근혜계를 포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원내대표는 김무성이 하고 비서실장을 최경환이나 김성조가 한다면 친이·친박 간 당내 화합이 이루어지고 좋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경선이든 뭐든 권력게임이 끝나면 적군을 끌어들이는 게 정치 세계에서의 교과서이다. 

그 교과서를 처음으로 정리한 이가 당 태종 이세민이다. 당 태종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 이건성의 측근이었던 위징을 데려와서 책사로 삼는다. 그러면서 ‘정관의 치’로 불리는 태평성대를 연다. 이것이 당태종이 중국의 역대 황제 중 최고의 정치가로 불리는 이유이다. 

김영삼도 3당 합당을 해 이종찬, 박태준과 암투를 벌이다가 후보를 쟁취한 뒤 처음으로 임명한 비서실장이 민정계인 최창윤(육사 출신, 전 총무처 장관)이었다. 김대중도 영호남의 화합, 전 정권과의 화합 차원에서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데려다 썼다. 당시 MB가 최경환이나 김성조를 비서실장으로 쓰고, 원내대표를 김무성(김무성은 그때부터 원내대표를 하고 싶어 했다)을 시켰으면 친이·친박 갈등 문제는 일찌감치 정리가 됐을 것이다. 그것이 친이·친박 갈등의 분수령이었다.

MB에게 그런 구상을 얘기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비서실장은 임태희, 원내대표는 안상수로 결정되어 있었다. 이상득과 이재오가 미리 손을 쓴 것 같았다. 임태희는 경선 과정에서 맹형규, 권영세 등과 함께 줄곧 중립을 지켰다. 그러다 경선이 끝나고 MB가 후보가 되자 경동고등학교 후배인 장다사로를 통해 이상득과 연결이 된 것으로 보인다. 장다사로는 당시 이상득 국회 부의장의 비서실장을 하고 있었다. 

임태희가 비서실장으로 발표되자 경선 때부터 일해 왔던 공신들의 사기가 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친박인사를 비서실장으로 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경선 기간 내내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중립을 지킨 사람에게 캠프의 핵심 중책을 맡기는 것은 명분, 실리를 다 잃는 아무 득이 없는 인사였다.

소위 지금까지 캠프를 운영해온 실세들의 힘을 빼고 견제할 수 있다는 게 득이라면 득일 것이다. 이때부터 ‘이상득 플랜’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셈이다. 자기가 캠프에서 힘을 써야 하는데 직접 나서기가 불편하니 자기 사람을 앉혀 놓고 리모트컨트롤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재오는 차기 당대표를 노리고 자신의 친구인 안상수를 원내대표로 만들고자 한 것 같다. 당시 친박계를 적극 포용하는 쪽으로 갔으면 박근혜는 이미 그때부터 힘이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못하게 한 이들이 이상득과 이재오이다. 나라와 당은커녕 MB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들을 위해서 움직인 것이 아닐까. 물론 나도 내 자신을 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MB와 당과 정부를 위해 내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MB 정권은 이후 친이·친박 갈등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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