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의 정치상식]권력은 비주류가 잡는다

[the300]-우리가 잘못 아는 정치상식 40가지(1)-김종필·이회창은 주류·다수파

정두언(17·18·19대 국회의원) l 2016.12.19 05:50

편집자주 "권력을 잡는 건 언제나 소수파다"? 돌직구, 전략가, 엔터테이너… 수많은 수식어처럼 존재감을 뽐내는 정두언 전 의원이 흔한 정치상식을 깨는 신선한 관점을 머니투데이 더300을 통해 전합니다.

정두언 전 의원 인터뷰. 머니투데이 DB 2015.8.27/사진 이기범 머니투데이 기자


1. 권력은 사회의 비주류가 잡는다.


우리가 잘 아는 초한지를 보면 강자였던 항우가 약자였던 유방에게 결국 패하고 만다.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항우는 다수파였고 주류인데 반해 유방은 소수파였고 비주류였다. 그런데 유방이 이겼다. 약자인 유방이 이겼기 때문에 초한지가 재미있다. 의외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그런데 과연 그것이 의외의 결과였을까? 

중국 아니 세계의 역사를 보면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 오히려 흔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근현대사에 초한지의 판박이 같은 상황이 또 벌어졌다. 현대판 초한지라고나 할까. 장개석과 모택동의 싸움이다. 늘 도망만 다니던 약자인 모택동이 결국 막강했던 장개석을 이기고 천하를 제패한다. 이것 역시 의외의 결과였다. 

그런데 의외가 되풀이 되면 의외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예상이, 상식이 틀렸던 거지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게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의 상식은 강자가 약자를 이긴다. 그러니 강자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권력의 싸움에서는 오히려 그렇지가 않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자. 

초대 이승만 대통령 다음부터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정치궤적을 보면 전두환·노태우만 빼고는 모두 비주류, 소수파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장면 총리는 4·19덕에 정권을 잡긴 했지만 이승만 치하에서 소수야당에서 정치를 했다. 박정희야말로 사회적으로 전형적인 비주류 소수파 출신이다. 그는 대구사범, 소학교 교사, 만주군관학교, 일본 육사, 남로당, 여순반란사건, 5·16 쿠데타 등 온갖 변신을 다해가며 권력을 향해 일로 매진하다 결국 뜻을 이루었다. 

김영삼(YS) 역시 만년 야당인으로 줄곧 비주류 정치를 해오다가 막판에 3당합당으로 여권에 합류했으나, 나아가 여당 내 소수파의 한계를 극복하고 집권에 성공했다. 김대중이야말로 대한민국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일구어낸 인사로서 줄곧 비주류 소수파의 길만 걸어온 변방의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은 어떠한가. 그 역시 김대중 못지않게 우리 사회의 비주류로서 소수파 중 소수파였으나 주류사회에 대한 도전을 일관되고 과감하게 감행한 결과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이명박(MB)은 YS치하에서 여당 소속으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여권 내에서 줄곧 비주류 소수파의 길을 가다가 결국 대권 후보를 쟁취하고 권력을 잡았다. 박근혜도 이명박 치하에서 여권 내의 비주류 소수파 노선을 고수하며 MB와 각을 세웠기에 대권후보가 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야당 이미지에 힘입어 MB정권에 대한 민심의 반발에서 벗어남으로써 대권을 잡을 수 있었다. 

12·12 쿠데타와 광주항쟁진압이라는 비합법적 폭력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가 없으므로 생략한다. 다만, 노태우는 유일하게 주류 다수파 출신으로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는데, 이것도 6·29라는 대국민항복선언을 연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당시의 엄청난 국권·관권 부정선거도 재집권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김종필이라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풍운아가 결국 권력을 잡지 못했던 것은 그가 박정희 치하에서 주류 및 다수파의 길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YS치하에서 이회창이 소위 9룡들을 물리치고 대권후보를 거머쥔 것은 그들과 달리 이회창만이 YS에 각을 세우며 비주류 소수파의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두 차례나 실패를 한 것은 우리 사회의 주류인 기득권 세력의 대표주자로서 자리매김하며, 선거과정에서 다수파 특유의 몸 사리고 굳히기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때의 일이다. 2002년 대선기간 중에 MB는 이회창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느라 한나라당에 취약한 청년층을 공략한다고 대학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대형 호프집을 들어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웬일인가. 우리는 '학생들의 민심이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많이 다른가 보다' 하며 반색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학생들은 한나라당이 여당이고 이회창을 여권후보로 생각하며 정권교체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이회창은 비록 야당후보였지만, 많은 국민들에게 주류 다수파 후보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어땠었나. 그는 2002년 초에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제왕적 총재라고 비난을 하며 탈당하고 미래연합이라는 신당까지 만들었다. 그때 한나라당에서 박근혜를 따라 나간 의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박근혜는 한나라당내에서 완전히 비주류 소수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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