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햄버거와 최저임금

[the300]2013 알바생→2018 편의점주, 논쟁 주역·무대 달라져

김성휘 기자 l 2018.07.18 17:43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회원들이 월 1회 동맹휴업을 추진하는 등 반발에 나섰다. 15일 오후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알바생이 근무를 하고 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16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최저임금 방안 등 공동 대응책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2018.07.15. scchoo@newsis.com


"햄버거집에서 한 시간 일해도 그곳 햄버거 하나 살 돈을 못 받는다."

4~5년 전 자주 오르내린 명제다. 어떤 주장보다 선명하게, 특히 청년 알바(시간제 근로, 아르바이트)의 저임금 현실을 보여줬다. 설득력도 있었다. 박근혜정부 첫해인 2013년 최저임금은 4860원, 당시 롯데리아·맥도날드 등 어지간한 햄버거 세트메뉴가 5000~6000원선이었다.

최저임금이 그때까지도 꾸준히 오른 결과였는데도 그랬다. 최저임금은 이후로도 느리지만, 올랐다. 2104년 5210원으로 5000원을 넘어섰고 2016년 6030원으로 6000원도 넘겼다. 지난해 대비 올해는 16.4% 올라 시간당 7530원이다. 

이제 햄버거 세트 하나는 충분하다. 할인행사 등으로 들쭉날쭉하지만 18일 현재 맥도날드 빅맥세트 정가는 5500원이다. 식생활과 외식시장 변화, 가격경쟁 등 햄버거값 측면도 봐야겠지만 명백히 최저임금을 올린 효과다. 

내년 최저임금은 더 오른다. 8350원으로 올해와 800원 차이지만 "너무 올렸다. 다 죽는다"는 아우성이 가볍지 않다. 2013년과 큰 차이는 논쟁의 당사자와 무대가 확 바뀐 것이다. KFC나 버거킹이 아니다. 편의점, PC방, 중소 제조업체, 재래시장이다. 등장인물 또한 임금을 받는 알바생이 아니라 그 돈을 줘야 하는 편의점주와 상공인, 영세 자영업자들이 부각된다.

과거엔 알바생 입장에서 '그 정도는 너무 낮다'는 공감이 컸다면 이젠 그 임금을 줘야 하는 사용자들이 더이상은 부담스럽다고 외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의 구조가 달라진 걸 보여준다. 그사이 자영업자는 늘어났고 생존경쟁은 팍팍해졌다. 돈이 도는 속도도 아쉽다. 올라간 최저임금이 소비로 이어져 장사가 잘 돼야 하는데 그 효과를 못 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당위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 자체로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안전판 측면이 있다. 보다 큰 그림도 있다. 사람중심 경제, 소득주도 성장, 일자리 창출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손가락이라면 그게 가리키는 달은 따로 있는 셈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논의의 조건이 달라졌다면 접근도 달라야 한다. 우리 경제가 '800원'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는 낙관론, 지난 수 년간 너무 적게 올렸기 때문이란 기저효과론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 머물러선 안 된다. 

입장에 따라 이 800원은 그냥 800원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1시간 8350원이고 주 40시간, 월 209시간을 꽉 채워 근무(만근)할 경우 주휴수당을 포함해 174만5150원이다. 또 있다. 정부는 소득이 적은 근로소득자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근로장려금(EITC)을 내년 3조8000억원으로 잡았다. 올해의 3배 이상 규모다. 

800원 인상은 그 파장을 상쇄할 예산이 수 조원 필요할 만큼 강력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물가상승도 자극한다. 어떤 '손가락'을 따라가느냐는 국민이 체감하는 달의 가치와 크기를 확 바꾼다. 편의점, PC방만 해도 24시간 영업, 출점 조건 등 인건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점주, 본사, 정부가 함께 달라붙어야 풀린다. 국회도 호응해야 한다. 입법이 안 된 정책은 껍데기일 뿐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7일 국무회의에서 '이게 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프레임에 반박했다. 이 총리는 "경제의 모든 잘못이 마치 최저임금 인상이나 임차인 보호 때문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며 "우리 경제는 노동자의 저임금과 혹사, 소상공인의 희생에 의지해 지탱하는 체제를 더는 지속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은 이해당사자들을 만나러 현장으로 들어갔다. 시동이 늦게 걸린 면은 있지만 갈등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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