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메시지 고심한 文대통령, 김정은에 "만나서 머리 맞대자"

[the300]철도·개성공단·금강산관광 앞서 접경지역 협력 등 4가지 우선 제안

최경민 기자 l 2020.01.07 15:21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 본관에서 올해 첫 국무회의에 앞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2020.01.07. dahora83@newsis.com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신년사를 발표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사실상 '일단 만나서 남북협력 분야를 논의하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했다. 적극적인 경협을 바라는 북한과, 비핵화 합의 전 제재준수를 요구하는 미국 사이에서 '남북이 먼저 할 일을 찾자'고 중재안을 내놓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를 구상하며 대북 메시지와 관련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간 협상에 진전이 없는 상황 속에서, 김 위원장이 지난 1일 육성 신년사를 하지 않고, 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과로 신년사를 대신하며 협상의 문을 열어놓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북측에 '답신'을 보내야 하는데, 그 수위 조절과 관련한 고민을 했다는 얘기다.

큰 맥락에서 '남북관계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미대화가 본격화되면서 남과 북 모두 북미대화를 앞세웠던 것이 사실이다. 북미대화의 동력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면서도 "북미 대화의 교착속에서 남북 관계의 후퇴까지 염려되는 지금,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을 향해 △남북 접경지역 협력 △2020 도쿄올림픽 단일팀 및 2032년 남북 올림픽 공동 추진 △비무장지대(DMZ) 세계유산 공동등재 추진 △김 위원장의 답방을 위한 남북 공동의 여건 조성 등 4가지를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문 대통령의 4가지 제안은 모두 남북이 마음만 먹으면 즉시 추진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국제사회나 미국의 제재와 상관없이 남북이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들을 추려 김 위원장에게 제시했다. 

북측에 있어서도 당면한 자연재해 문제를 해결하고, 향후 관광단지 조성 등을 위해 미리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사업들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생명공동체'적 관점에서의 남북 접경지역 협력을 거론하며 "김 위원장도 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1일 북한 중앙위 전원회의를 통해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인 위기관리체계를 정연하게 세우라"고 지시한 것을 염두에 둔 제안인 셈이다.

반면 북측이 강력하게 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남북 철도 및 도로 사업과 관련해선 "현실적인 방안을 남북이 함께 찾자"고, 개성공단·금강산관광에 대해선 "재개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제안이 아닌, 원론적인 입장 확인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대화의 여지를 남긴 것으로 풀이된다. 

경협을 바라는 북한과, 비핵화를 바라는 미국, 그리고 북미협상을 지켜봐 온 국내 여론까지 모두 고려해온 문 대통령의 고심이 읽히는 대목이다. 

당장 남북경협을 실시할 수는 없지만, 일단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협력사업부터 진행하면서, 이를 지렛대로 삼아 북미협상 타결 및 남북경협 추진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신중한 구상이 담겼다.

문제는 김 위원장의 호응 여부다. 북측은 최근 최근 우리 정부를 향해 '무시와 폄하'를 골자로 한 반응을 내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제재가 있는 한 우리 정부와 독자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경협 사업이 없다고 판단내렸다. 

문 대통령의 4가지 제안은 즉각적인 경협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것이어서 김 위원장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여지도 충분하다.

북측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문 대통령이 힘을 준 메시지가 "일단 만나자"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측을 향해 "거듭 만나고 끊임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함께 논의하자"고 말했다. 

자주 만나서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길이 보인다는 게 문 대통령의 지론에 가깝다. 대대적인 방북-답방이 아니더라도 판문점 등을 활용한 셔틀 정상회담이라도 가지면서 관계 진전의 모멘텀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철도·도로·개성공단·금강산관광과 관련해 완전히 문을 닫지 않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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