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에 패거리, 법안심사는 3분…밥값 못하는 국회

[the300][the300][대한민국4.0, '대변혁'으로 가자][2회]‘한국정치4.0’- 최악의 20대 국회

유효송 기자, 강주헌 기자 l 2020.04.28 05:30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 국민들은 코로나19(COVID19)로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생존을 걱정한다. 더 이상 예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비롯해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다가오는 미지의 세계를 준비해야한다.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한다. 머니투데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대한민국4.0, 대변혁으로 가자고 제언한다.

(서울=뉴스1) 성동훈 기자 = 지난3월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6회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부결되자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항의하며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0.3.5/뉴스1




법안 심사 한 건당 3.5분…숫자가 말하는 '일 안하는 국회'



‘법률안을 심사하는 소위원회는 매월 2회 이상 개회한다’(국회법 제57조 6항)

20대 국회의원들이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앞다퉈 법을 발의했지만 생색만 냈을 뿐이다. 앞으로 한달동안 열릴 임시국회에서 우리 삶을 바꿀 꼭 필요한 법안이 얼마나 처리될 지 미지수다. 현재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법안은 총 1만5000여 개다. 다음달 29일까지 처리가 안되면 자동 폐기된다.

◇4년 동안 ‘5번’ 문 연 법안소위…일 안 하는 국회

지난 4년 국회는 법안소위원회(발의 법안을 검토하는 첫 단계)를 몇 번이나 열었을까. 머니투데이 더300이 20대 국회(2016년 5월30일~2020년4월19일)의 법안 심사 현황을 파악한 결과 19개 상임위(특별위원회 포함) 내 법안소위는 총 702회 열었다. 상임위 한곳 당 1년에 10번 정도 소위원회가 열린 셈이다.

상정된 법안 숫자를 보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지난 4년 동안 19개 상임위에 제출된 법안만 2만 건이 훌쩍 넘는다. 이 중 소위에 상정된 법안은 1만2381건으로 총 1847시간16분(11만836분)의 시간이 걸렸다. 처리한 건수는 7106개다. 법안 하나당 심사 시간이 8.95분에 불과했다.

상임위 중에선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가 법안소위 개최 횟수 꼴찌를 기록했다. 지난 4년 동안 문체위는 법안소위를 5번 열었다. 올 4월까지 문체위가 상정한 283건의 법안은 한 건당 약 3.5분의 심사 시간을 거쳤다. 정보위원회가 총 6번의 법안심사 소위를 개최해 뒤를 이었다.

상대적으로 ‘열일’ 한 상임위는 기획재정위와 환경노동위였다. 각각 20대 국회에서 86번, 72번 열렸다. 기재위는 1764건의 법안을 상정해 법안 하나당 8.6분의 시간을 할애해 심사했다. 환노위 고용노동소위는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등 쟁점 법안을 논의하기 위해 다소 많이 열렸지만 법안 하나당 심사 시간이 10여 분에 불과했다. ‘날림 심사’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태업 국회에 볼모 잡힌 법안

법안소위는 발의된 법안의 부족한 점을 찾는 첫 단계다. 수석전문위원이 쟁점을 설명하고 의원들이 토론을 통해 조금씩 수정한다. 정부부처 실무자들도 참석해 정부 입장을 설명한다. 법안소위의 횟수가 적다는 것은 쟁점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고 개선할 기회가 없었다는 말과 같다.

국회 법안소위가 ‘태업’을 일삼은 원인은 여야 정쟁에 있다. 법안소위 개최 ‘꼴찌’를 기록한 문체위는 지난해 11월에 법안소위를 열기로 했지만 여야 간 대립으로 파행됐다. e스포츠 표준계약서법, 예술인권리보장법 등 비쟁점 법안들은 제대로 심사조차 받지 못 하고 폐기될 위험에 처했다.

국회는 대통령 탄핵,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등을 거치며 여야 간 대립이 극심해졌다. 미래통합당이 장외 투쟁을 시작하고 논의는 국회 밖으로 옮겨갔다. 법안 심사 대신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본회의 법안 처리율 34.8%의 낯부끄러운 성적표가 20대 국회의 꼬리표가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회의, 상임위와 소위 회의를 정기적으로 열도록하는 ‘일하는 국회법’이 앞다퉈 발의됐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불출마 의원은 △국회 임시회 상시화 △국회의원 윤리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패키지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첫 과제로 일하는 국회를 꼽았다.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헌법이 국회에 부과한 책무는 열린 국회의 실현”이라며 “일하는 국회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정치의 본질은 생산”이라며 “정치를 해야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항상 충실히 새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타락'으로 물든 20대 국회 마비가 일상, 최악 그 이상



‘파행, 공전, 빈손’

20대 국회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여야 대치로 지난 4년 정국은 마비가 일상이었다. 민생법안을 심사하고 처리하는 본연의 업무는 뒷전이었다. 일을 안하는 ‘식물국회’에 더해 패스트트랙 정국,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막말과 몸싸움 등이 벌어지는 ‘동물국회’도 연출됐다. 여야 모두 정쟁만 일삼으며 ‘꼴불견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타락한 진영의식에 편승한 의원들의 행태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치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자기 합리화가 국회를 점령했다. 강성 지지층에 기대 진영 내 건강한 목소리를 ‘음소거’하는 패거리 정치는 덤이었다.

2019년 4월 29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안 등 사법제도 개혁안 패스트트랙(안건 신속처리제도)으로 지정한 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복도에 누워 시위를 하고 있다.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은 재적의원 18인의 5분의 3 이상인 11표를 얻어 가결됐다.

2019년 4월 29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안 등 사법제도 개혁안 패스트트랙(안건 신속처리제도)으로 지정한 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복도에 누워 시위를 하고 있다.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은 재적의원 18인의 5분의 3 이상인 11표를 얻어 가결됐다.

◇파행, 파행, 파행…정쟁 블랙홀이 초래한 ‘태업 국회’

지난해 초부터 올해 초까지 국회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법안을 두고 정치권은 ‘동상이몽’이었다.

여야는 네 탓만 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범여권은 밀어붙였다. 여당을 중심으로 4+1(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구성됐다. 군소정당은 선거법 통과를, 민주당은 공수처법과 검찰개혁 관련 법 통과를 원하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규모에 밀린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국회 밖으로 돌았다. 투쟁을 외치며 여론전에 나섰다.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앞 규탄 집회를 주재하고 지난해 9월 삭발, 같은해 11월엔 단식을 감행했다. 지지층을 총력 동원한 광화문 집회도 진행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의 법안 제출과 회의를 저지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국회 곳곳에서 농성을 펼쳤다. 회의장은 점거·봉쇄됐다. 모든 현안이 정쟁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상황에서 건설적·생산적 민생법안 논의는 이뤄지기 어려웠다. 실제 법안이 정밀하게 심사되는 상임위원회 소위원회는 개최가 예정됐다가 파행되기를 반복했다.


◇선거법·국회법 ‘꼼수’에서 나타난 ‘내로남불’

여야 모두 상대 진영을 비판해놓고 자기 진영에서 답습했다. 국민과 언론이 지켜보고 있지만 몰염치를 감수했다. ‘현실적 선택’이라며 합리화했다. 위성정당이 대표적인 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이 통과되자 자유한국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었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향해 대표성을 왜곡하는 행위로 선거법의 취지를 무색케한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그 비판은 그대로 화살이 돼 돌아왔다. 민주당도 비례정당연합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드는 편법을 택했다. 민주당 내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았지만 당 지도부는 선거를 앞두고 ‘현실적 선택’을 택했다. 최고위원인 설훈·김해영 의원이 일찌감치 반대 의견을 밝힌 가운데 영남 권역 선대위원장인 김부겸·김두관·김영춘 의원 모두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박용진 의원은 “아무리 좋은 명분을 세우더라도 결국에는 내로남불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 내 협상의 부재는 ’꼼수‘가 판치게 만들었다. 올해 초 민주당은 회기를 쪼개는 ’살라미 국회‘를 선보였다. 소수파에 보장된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에 맞서 필리버스터로 대응하자 국회법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다.

◇선거 앞두고 폭발한 막말 공격력

20대 국회 회기 내내 막말 몸살을 앓던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막말 공격력을 증폭시켰다. 대표적 예가 차명진 미래통합당(경기 부천병) 후보의 ‘세월호 텐트’ 발언이다. 차 후보는 여론의 비판에도 막말을 멈추지 않았다. 세월호 막말 논란은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으로 번졌다.

민심이 싸늘하게 돌아섰다. 통합당은 여권에 180석을 내주는 기록적인 패배를 했다. 주동식 미래통합당(광주 서구갑) 후보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광주의 역사를 모독하는 말을 했다. 지난해 한국당에서 벌어진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을 향한 망언을 연상시키는 발언이었다.

막말로 분열 정치에 편승하는 건 여권도 마찬가지다.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통합당을 ‘쓰레기’라고 표현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야당을 ‘조폭’에 비유했다. 이 대표는 “옛날에 조폭들이 팔에 ‘착하게 살자’라고 문신을 했듯 미래당은 무슨 미래당이냐”라며 “지금까지 해온 게 전부 다 발목잡기에 토착 왜구, 그런 것”이라고 비난했다.

여권 중진인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야당의 상징색(핑크)에 대해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당색인 핑크색을 ‘포르노처럼 색정을 자극하는 색’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저 ‘도색당’이 총선에서 이겨서 감성과 가짜뉴스로 국민을 자극하는 ‘도색 정치’를 펼치게 된다면 21대 국회는 그 시작부터 협치가 사치이고 정치개혁은 희망고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정봉주 열린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비롯한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2020.4.15/뉴스1


◇타락한 진영의식이 낳은 괴물…패거리 정치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았다. 정봉주 전 의원은 점퍼 색을 운운하며 진영 내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정 전 의원은 ’빨간 점퍼 민주당‘이라는 제목으로 금 의원을 겨냥해 “내부의 적이 가장 위험한 법”, “민주당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최소한 파란 점퍼를 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 의원이 ’조국 사태‘에서 당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표결 당시 당론과 달리 기권표를 던진 것을 향한 저격이었다.

강성 지지자들은 연일 금 의원을 향해 문자폭탄 등을 보냈다. 금 의원은 “이번 총선을 조국수호 선거로 치를 수는 없다”고 맞섰지만 결국 경선에서 패해 공천을 받지 못했다. 금 의원뿐 아니라 이종걸·이석현·신경민 등 비문성향의 의원들이 대거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친문성향의 의원과 86세대는 거의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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