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소정이]'정치 기득권'이 '의료 기득권'에게

[the300][소소한 정치 이야기]

이원광 기자 l 2020.09.04 08:01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정부의 4대 의료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집단 휴진을 이어가고 있는 3일 오전 서울 구로구 고려대학교구로병원에서 의사가 의료정책 철회 촉구 피케팅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여권의 ‘반(反) 기득권’ 정치가 거세다. 의사들은 스스로 코로나19(COVID-19) 시국에 현장을 떠나면서 반 기득권 정치의 토양을 제공했다. 기득권에 분노하는 민심은 이런 정치의 자양분이 됐다. 간호사를 격려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진의와 달리 반 기득권 정치의 성공 공식인 ‘편 가르기’로 읽혔다.

의사들을 기득권으로 규정하는 여권 내 목소리는 일찌감치 나왔다. 3선 중진의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의사 증권·공공의대 반대를 외치며 집단 휴진에 들어간 의사들을 "자신들의 호화 철밥통을 지키겠다"는 파렴치한 이익 집단으로 규정했다.  

유사한 취지의 날선 발언들이 쏟아졌다. “정책 추진을 백지화하라는 것은 이해집단의 몽니 부리기”(27일 홍익표 의원 KBS라디오 인터뷰), “악성 전염병 비상상황에서 국민을 볼모로 진료거부를 하는 것은 국가적 재난을 이용해 자신들 밥그릇 챙기는 것”(같은날 노웅래 의원 페이스북) 등 이다.

특정 계층을 기득권으로 보는 여권의 관점은 위기 때마다 고개를 든다. 부동산 이슈가 대표적이다. 정부·여당은 ‘6·17 부동산 대책’과 ‘7·10 대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종부세’(종합부동산세)를 둘러싼 논란에 유독 강하게 반응했다.

종부세 납부 인원이 ‘전체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일관된 메시지였다. 더 나아가 이번 종부세율 중과세 적용을 받는 인원은 0.4%에 불과하다며 ‘타깃’을 좁혔다. ‘종부세 인상이 세금 폭탄’이라는 철 지난 주장에 가짜 뉴스라며 각종 통계로 반박했다.

이 과정에 부동산 대책으로 집값 하락을 걱정한다는 실거주자 목소리는 묻힌다. 장기간 관망세로 ‘전세 대란’을 우려하는 무주택자 목소리도 사라진다. 그 자리를 ‘집도 없으면서’ 집주인을 걱정한다는 조롱이 메운다.

목적은 갈등의 극대화다. 의사 직군을 기득권화하는 시각은 파업에 거리를 뒀던 의사들까지 전선으로 내모는 결과로 이어졌다. 전공의에 대한 형사 고발은 관망하던 의대 교수들을 자극했다. 여당이 뒤늦게 중재자를 자임하며 팔을 걷어붙였지만, 내부에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폐지 권고하는 것은 어떤가. 어차피 안 지킨다"며 불난 집에 기름 붓는 독설이 나온다.

이 때 여권의 주류인 586세대가 민주화 시대를 거쳐 오늘날 기득권이 됐다는 주장을 돌아본다. 실제 이들 다수가 청와대와 정당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며 정치 기득권으로 거듭났다. 떠밀리듯 강남 아파트를 팔고도 8억여원의 차익을 남기는 등 ‘부’도 축적했다. 여권의 반 기득권 정치는 구조적으로 강한 반발 가능성을 내재한다. 스스로 부동산으로 수억원을 벌고도 ‘불로소득’을 죄악시하는 세력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남긴다. 

교육 개혁을 추진하면 학교 교사가, 산업구조 개편 때는 대기업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 때는 정규직이, 행정수도 이전 추진에는 서울이 기득권이 된다. 반 기득권 정치가 계속되면 국민 다수가 뜻하지 않게 ‘기득권 반열’에 등극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국민 건강을 뒤로 하고 집단휴진에 나선 의사들은 지탄을 받기 충분하다. 그러나 특정 집단에 분노를 유도하며 정책을 관철하는 방식의 반 기득권 정치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폭발력 있는 뇌관을 건드리며 공청회 한 번 없었다. 관련 단체와 소통이 부족했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교하고 세련된 대안 정치를 하는 정부와 여당. 난망일까. 

서울대병원이 외래진료를 축소하고, 전공의 등에 이어 교수도 집단 휴진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진 지난달 31일 서울대병원에서 한 의사가 병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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